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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회복할 수 있을까?

S

 오랜 만에 그를 보고 놀랐다. 뺨이 패이도록 말라 큰 눈만 보였다. 머리는 벗겨져 몇 가닥만 남았고 덩치는 사라지고 등은 굽었다.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그의 눈은 불안정했다. 악수를 청하니 그는 망설이듯 손을 내밀었다. 굳은 그의 손 끝이 빠져나가듯 내 손을 스쳤다.  

 일류대학 출신인 그는 80년대 초 당시 대기업에 들어갔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거래처였다. 내가 거래 담당들과 밥 먹을 때 그가 동석하기도 했다.  그가 외환과장이었을 때, 와환시장, 환율 동향에 대해 물으면 자기 부서가 네고 서류 처리하는 방법, 절차 등 업무 매뉴얼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시키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 타입이라 다른 화제를 꺼내도 이야기는 짧게 끝났다. 회사에 변화가 생기고 그는 30 중후반에 과장 달고 있다가 나왔다. 동기들은 승진하거나 다른 업체로 직급 올려 가거나 했는데, 이 친구에게는 마땅한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매뉴얼 따라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것 이외에 다른 역량을 키우지 않은 탓인 듯 싶다. 

 이력서 내기를 접고, 그는 몸담고 있던 업계에 특정 소모품 공급하는 사업을 했다. 공장들이 중국, 동남아로 옮겨가기 시작했을 때라 구매업체가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뚫을 수 있는 거래처는 제한되어 있었다. 돈을 못 받기도 했고 재고를 안아야 하는 등 축소되는 시장에서 그는 짧은 자금으로 고전했다. 그는 사업을 접고 주식 홈 트레이딩을 했다. 전업 개미 투자자였던 거다.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판단이 면밀한 편도 아니고 손에 쥔 게 많지 않았던 그는 얼마 후 자신이 가졌던 것은 물론이고 처남들의 돈도 잃었다. 가정이 편할 리 없었다.

 계속되는 실패로 그가 위축되는 만큼 관계도 위축되었다. 서넛이 모여 산에도 가고 한잔하기도 했는데 점점 그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이 사정을 묻기도 어려웠다. 어쩌다 만나면 이야기는 짧고 피상적이었다. 그는 애들이 속을 썩여 했다. 애들하고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 하면 애들이 나하고 말을 안 해 라고 했다. 왜 얘길 안 해? 하고 물으면 그는 고개 숙이며 짧게 모르겠어 했다. 그가 힘든 상황의 뿌리를 파고들지 않고 외면하는 듯 또는 말하기를 피하는 듯 했다. 사람과 전면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안 해버릇하니까 못하게 된 듯싶기도 하다. 이해한다해도 어쩔 수 없기에 망가진 관계를 그대로 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사고도 위축되었다. 오가는 이야기가 상반 되도 파악하지 못했고  독자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듣기만 하는 그가 어쩌다 묻거나 대귀하는 걸 보면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이야기 끝 한 두 마디를 잡을 뿐이었다.   

 그의 아내는 식당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 아내가 조금씩 오래 앓았다. 큰 애는 대학을 마치지 못했고 둘째는 고등학교 때 가출해서 속을 썩였다. 그는 지방으로 숨었다. 앓는 아내의 부탁으로 친구들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섞여 있었다. 죽기보다 숨기로 했다고 하였다. 아내의 병은 암이었다. 수술을 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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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

 20대 때 그는 수재였다. 감수성이 뛰어났고 난다 긴다하는 친구들의 긴 이론과 논리를 단 몇 마디로 본질을 잡아낼 정도로 직관도 뛰어났다. 토론 때마다 그의 공부와 예리함은 빛났다. 경제,사회, 문학에 친구들의 썰이 오갈 때 쉬운 말로 본질을 짚었고 동의할 만한 의견을 풀어냈다. 다양한 화제를 던졌고 유쾌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 그가 처음 선택한 곳은 정치권과 연결된 조직이었다. 당시의 유망 정치인을 도우면서 그 동네에서 바닥을 굳히려고 몇 군데 조직에 발울 담갔다. 젊은 시절 그의 학위는 동창 넷트웍을 타고 불려 다녔다. 실력과 매력의 그가 모임에 안 나오면 친구들은 유명 정치인들을 거명하고 그와 정치인의 이름을 머리 속에서 엮으며 그의 근황을 궁금해 했다. 그의 '한 방'을 미리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함께했던 유력 정치인이 무대에서 사라지면서 그의 바닥 쌓기도 무위로 돌아갔다. 그는 정치하는 무리들이 버린 카드였고 뒤늦게 기업체나 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연고도 뿌리도 없었다. 그는 몇 번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비정규직 삶을 단속적으로 살며 간헐적 백수에서 풀타임 백수를 몇 년째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생각을 표하고 실현할 현실 배경이 없어지면서 그는 친구들과 나눌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친구들 끼리 모이면 저녁을 마치고 한잔 할 장소로 옮기기 전에 그는 일어났다. 친구들을 뒤로 하고 혼자 지하철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아무리 밝은 가로등 아래에서도 어둡고 쓸쓸했다.

 리만브라더스 사태로 세계 경제가 주저앉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쏱아질 때, 프랑스에서 경제학을 한 그의 시선과 해석을 듣고 싶었다. 단 둘이 마주하니 그는 술 몇 잔에 빨리 취했다. 그는 과거의 다양한 관심과 깊은 이해, 지성의 반짝임  어느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오래 지낸 때문인지 시선은 낡고 세상을 향한 촉수가 없어진 듯 했다. 전문가들이 많아, 그들이 알아서 다 해결 해 할 때 막연하고 무관심한 낙관이, 뭔 걱정이야 무슨 상관있어 할 때는 냉소가 느껴졌다. 

 그가 굳이 저녁 값을 내겠다고 해서 우리는 씨름을 하였다. 한 잔만 하기로 한 2차에서 그는 대취했다.  과거에 꿈꾸었던 자신과 오늘의 자신 사이에서 그의 감정이 혼란스럽게 엉킨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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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남의 인생을 판단할 수 없다. 남의 안 알려진 행운, 불운도 숨은 행복, 불행도 알 수 없다. 허나 주어진 시간을 잘 꾸려 원하는 자신이 되고 식솔을 물심으로 책임지며 의미있고 풍요롭게 사는 게 잘 사는 인생이라면 그들이 타고 난 배경과 능력, 선택되어 받은 교육을 생각하면 밑진 인생이다. 그들은 좋게 선택 받았고 빡신 학교 경쟁을 뚫었다. 인생 중반까지 그 덕으로 살다가 독립적으로 긴 미래를 결정해야 했을 때 준비가 부족했거나 마땅한 길보다 빨라보이는 길을 선택했다. 일방적 주입식 교육 때문에 프레임 밖에서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學力아닌 學歷에 갖혀 안이했을 수도 있고 본질 가치를 찾는 대신 연줄을 추구했을 수도 있다.

 S는 준비 없어 밀리면서 다가오는 벽을 번번이 넘지 못했다. 넓게 파악하고 깊이 궁리하고 준비했어야 할 일을 당장 가깝고 손쉬운 선택으로 망쳤다. 조직 밖의 힘 없는 개인이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예상하지 못하였다. 실험도 도전도 없이 매뉴얼에 의지하는 눈 감고 막연한 인생은 삶이 교차로에 설 때 거친 길로 밀려난다. 그는 맞서는 대신 문제를 피하고 덮고 외면했다. Y는 오랜 공부와 관계를 잘 다루는 재능으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가치를 일구는데 기여하기보다 넷트웍을 탔다. 한장 한장 벽돌 쌓기보다 한방을 찾았다. (연줄과 배경이 실력보다 유효한 사회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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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고용-소득 궤도를 이탈한 후 다시 궤도 진입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사실 묻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불가하다는 답이 도처에 있다. 과거에는? 이미 한 20년 전부터 고용 궤도 탈락자는 배타적으로 공고해가는 구조에 재진입이 힘들어졌다. 미래에는? 악화되는 소득 배분과 개인이 부담하는 교육 비용 증가 등으로  더욱 어렵다. 가장의 소득 궤도 이탈은 가계 구성원 전체를 교육 기회, 사회적 접촉 기회 축소 등 "보통사람"으로 못살게 하는 궤도 이탈에 이르게 한다. 그런 가장들은 가족과도 불화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50년대 생은 경제 성장기에 20-40대를 보냈다. 40년대 후반, 60년대 생도 비슷하다. 사회 규모의 성장과 함께 30대 중반까지는 기본 교육과 기본 기능을 갖추면 일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인생 전체에 비해 짧은 사회적 사용연한을 지나고 그들은 밀려났다. 개인으로는 회복의 기회가 없었고 사회적으로는 그들을 활용하지 못하였다. 그 둘은 외롭고 가난하다. 그의 가족은 가난과 원망으로 힘들다. 그보다 힘든 건 그들의 몸도 마음도 망가진 것이다.

 선택한다면 그들에게 허용되는 건 시간당 4000원. 한 친구는 그걸로 살고있다. 느끼고 생각할 여유는 물론 기본도 해결할 수 없어 인간 존엄을 무너져 내리게 만드는 조건이다. 친구의 아이들도 그 삶을 물려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친구들 이후 세대의 사회적 사용 연한이 짧아졌고, 자식 세대는 피고용 조건을 갖추기조차 불가해 졌다. 개인 선택의 실패라고 개인 책임이라고 하기에는 이 사회에서 실패의 결과가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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