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애가 토요일 회식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왔다가 문상 간다고 나갔다. 내일 가는 게 어떠냐 했더니 직원 본인상이라 오늘가고 내일도 가야한다고 했다. 작은 아이는 신입사원 2년차에 들어가면서 비서실로 발령이 났다. 아이가 비서실 내 처음 인사하는 자리에서 사장이 "어느 교회 다니느냐?"고 묻기에 안 다닙니다 했더니 "우리 교회 다니라고 비서실로 보내 주셨구나" 하더라고 했다.
토요일 늦은 오후, 사장과 직원들 회식을 시작하려는데 직원의 딸로부터 "엄마가 자살하였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사장에게 직원의 자살을 보고하였고 회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한다. 내가 그 사람 딸이 몇 살이니? 하고 물으니 이제 대학에 들어간 듯 하다 했다. 그녀는 40대 후반의 과장인데, 연한이 다 차서 연말에 승진이 되거나 다른 부서에서 그녀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떤 부서도 그녀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은 엄마와 성씨가 같은 딸 뿐이라고 했다. 자정 넘어 들어온 아이가 장례식장에 혼자 남은 어린 딸이 불쌍해 가슴 아파했다.
나는 그녀가 왜 자살했느냐고 물었다. 작은 애는 "우울증이래." 라고 답했다. 우울증이라서 우울증이라고 답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고 사람들이 많은 죽음을 "우울증"이라는 병에 따른 개인적 선택이라고 간단하고 쉽게 돌려버리는 것에 대한 반발처럼 들렸다. 회사 사장은 보고했을 때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작은 애는 " 예수 안 믿어서 죽었대." 라고 답했다. 예수 안 믿어서 죽었나보다고 생각하고 옮기는 말이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죽었다고 말하는 정신에 대한 반발로 들렸다. 오래 한 회사에서 일하다 죽음을 택한 직원의 고통을 생각하면, 충격과 슬픔에 엄마가 다니던 회사에 울면서 전화하는 어린 딸을 생각하면, "예수 안 믿어서 죽었다"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하기야 일본 지진은 예수를 안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 유명 목사도 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예수를 안 믿으면 죽음도 당연하다는 종교는 뭔가....
반포의 어느 여고에서 설문 조사를 하니 65%의 학생이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는 조사가 있었다. 이 학교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어린 학생들이 경쟁에 몰리고 죽음에 가까운 압박감에 고통 받고 죽음을 택하고 젊은이들이, 가장이 막힌 사회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죽음만 남았기에 생을 접는 것이다. 작은 애가 다니는 회사는 실무 층이 일급 역량의 직원들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올라오고 오래 전 입사한 고등학교 졸업 학력의 나이많은 과장은 모든 부서가 배제하는 인물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 앞에는 낭떠러지 밖에 없었는지. 아무리 힘들어도 어린 딸을 남기고 떠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가 헤어날 수 없었던 외로움과 막막함은 가슴 아프다. 몇 년 전에 자살한 거래처 직원이 생각났다. 독신인 그녀는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고 남들보다 먼저 승진했다. 맨 앞자리를 지키느라 매일밤 늦도록 일하던 어느 날, 서른 일곱의 그녀는 너무 힘들어, 미안해 라고 쓴 쪽지 한장 남기고 갔다. 거래처는 우울증 때문이라 했고 동료 몇 사람만 조용히 장례식에 참석했다.
우리 사회에 자살이 늘고 있다. 웬만한 죽음은 알려지지도 않는다.그 중 많은 죽음이 우울증 때문이고 동시에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많은 죽음을 미디어 등 사람들은 우울증이라고 덮어버린다. 우울증은 정신의 허약함이 원인이라고 개인적인 문제로 털고 접는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살고 싶지만 사회적 병으로 죽을 수 밖에 없어서 죽었다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다. 우울증은 타살 당하기 전에 마음이 타협하고 저항하는 병이다. 조직내에 재발 방지 궁리와 안전망이 만들어지고 가족들이 살 이유를 북돋으며 함께 타협과 저항을 도우면 우울증은 환자 혼자 버티다 스러지게 하는 병이 아니다. 사회에 압박과 우울이 퍼지고 환자가 늘고있다.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상식으로 알고있다. 원인을 축소, 제거하려는 사회적 노력과 안전 장치는 그러나 확산 속도에 못 미친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리 (0) | 2011.05.27 |
---|---|
낡은 운동화 (0) | 2011.05.18 |
좋은 일이 생겼어요 (0) | 2011.05.07 |
회복할 수 있을까? (0) | 2011.04.13 |
뭐가 저리 빛날까? (0) | 2011.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