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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이제 졸업

큰 애가 한 달 계획잡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지난 주말에 농담처럼 엄마, 어디 좀 갈거야 하기에
어딜? 하고 물었더니
멀리.
뭐하러? 하고 물었더니
자아를 찾으러 ㅋ 하기에
그래 찾아와 ㅋ 했는데, 일요일 짐 꾸리고 떠났다. 잔소리, 간섭, 태클, 질문 아뫃튼 여러 유형의 접근(?)을 방지하려고 티케팅 이틀 전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몇 달동안 진행해 왔던 프로젝트가 3월 초에 끝나면서 조용히 준비했던 모양이다. 


아이가 휴가로 출장으로 여러 나라 다녔으나 늘 동행이 있었다. 행선지와 해야 할 일이 출발 전에 명백했다. 이번에는 혼자인데, 행선지, 어떻게 다닐 건지, 뭘 볼 건지, 계획을 잘 짰을까. 찾겠다는 건 비슷한 거라도 찾아올까. 20대 나홀로 여행객이 천지인데 잘 지내다 오겠지...싶은데, 뭔가 백프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작은 애가 친구 하나와 보름을 돌아다닐 때도 여섯달 동안 혼자 시드니에서 지낼 때도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무슨 차이 때문에?...하고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큰 애의 여행 준비에 대한 사전 이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작은 애는 여행 계획을 알렸고 꼼꼼한 메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그에 비해 큰 애는 이틀 전에 이야기하니 갑작스럽고 의아하게 생각되었고 행선지는 유동적이라고 하니 비행기표만 쥐고 나가는 거 아닌가, 준비가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하기 때문이지 싶다.  

하루 지나 생각해 보니, 그깟 준비가 부족하면 어때 싶다. 기껏해야 불편한 거고 더 해봐야 고생하는 거고, 고생하는 게 뭐가 문젠데 싶다. 준비가 부족해서 불편하거나 고생한다면, 당연한 거다. 일정을 엉성하게 짜서 시간이 낭비되었다면, 당연한 거다. 준비한 만큼 펼쳐지는 거고 아는 만큼 보는 거다. 혼자 있다보면 인생이 원래 그런 거를 알게 되겠지.

나는 훈련소에 큰 애 보내면서 "멋진 장정이 입대하게 된 거 축하한다"고 했고 사복이 돌아왔을 때도 똘똘 말린 양말 보고 웃었다. 고생하고 매맞고 다칠까봐 걱정 하면서도 어차피 거쳐야  할 시스템에 예정대로 합류한다는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큰 애 방에서 옷가지를 거두다 보니 싸가려고 돌돌말은 파자마가 나왔다. 준비 부족하면 고생이 당연한 거지 했던 마음이 잠깐 짜하다. 에이, 무슨~. 아마존도 아니고 히말라야도 아니구만. 
큰 일은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경험을 구하고 알려야 되겠구나 싶다. 사랑하는 가족이 걱정하지 않도록, 모르도록 남겨져서 외롭지 않도록. 여행은 애가 갔는데, 내가 성장한 느낌이다. 오늘 졸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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