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담

좋은 일이 생겼어요

지난 4월 10일 우연히 강물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좋은 일이 생길 징조인가 보다,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는데, 지난 주, 좋은 결과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강물 위로 빛이 떴다. 지난 주, 지난 한 달, 잘 했다고 축하한다는 표시인가보다.



몇 천만 인구를 놓고 생각해 보면, 인식은 늦고 사고는 천천히 변한다. 경제적 분배 체계가 악화되고 구조가 수직화 되고 많은 수의 중간층이 구조의 하단 말미로 밀려나게 되고 밥 먹던 가정이 밥을 굶게 되어도  자신은 구조에서 예외이고, 하단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을 힘겨워하고, 경쟁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고, 극단적인 경쟁에서 누군가는 죽어 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경쟁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숨 쉴 여유를 줄 가치를 선택하지 않는다. 자신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가. 버티면 강자가 된다고 믿기 때문인가. 강자 takes all 때문인가. 모두 다 강자가 될 수 없는데 세상은 강자가 善인양  예찬하고 강자를  동경하게 하고 강자를 흉내내게 한다. 

미디어를 통한 의식 조작의 대상이 되어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일상생활을 망치지 않으면 상관하지 아니한다. 아니, 일상생활에 함몰되어 자신이 대상화 되어있다는 것을 모른다. 시민의 권리가 침해되어도 내가 침해당하지 않으면 개의치 않는다.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고 지키려다 고통받는 이야기에 대해 그런 일을 뭐하러 하다가 당하냐고 혀를 차고 타인의 권리를 내 권리처럼 지키려는 노력에 대해 오지랍 넓다고 무심한 눈길을 보낸다.

그런데, 거꾸로 가는 3 년을 보내며 사람들은 깨우쳤다. 세대마다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관심과 이해하려는 노력에 따라 지평이 넓기도 좁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안다. 사람들은 느끼고 사고는 변한다. 천천히.
그 사이 희생은 가슴 아프지만 회복을 위한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들이 그들만의 소수를 위하여 룰을 왜곡하고 재화를 낭비하지 않았다면 국민의 시간과 노력과 자산은 한계에 처한 이들의 행복, 안전의 최저선을 끌어올리는 데 쓰일 수 있었을 것을. 이 정권을 통하여 국민은 깨우침을 얻었고 가슴에는 상처가 남았지만 지난 주 작은 성공을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방향은 헷갈리고 갈 길은 까마득하다. 민주당의 리더 두사람은 엉거주춤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사이, 선거에 진 한나라당 그들은 선거 포스타 떼어내기도 전에 한-EU FTA를 통과 처리했다.  구제역에 소, 돼지를 잃은 농민들은 이제 구제역 때문이 아니라 밀려오는 낙농제품에 소, 돼지 키우기를 그만두어야 할거고 동네 소매상들은 문 앞까지 치고 들어올 수 있는 대형 상점때문에 가게 문을 닫아야 할 거다. 빈번한 번역 오류가 있다는 것 뿐, 국민은 협정의 내용을 모른다. 공공 토론도 없었다. 어떤 먹거리가 내 밥상에 오르고 어떤 것이 사라질 지 모른다. 내 직업에 어떤 길이 막히고 열리는지 어떤 시간표로 바뀌는지 모른다. 그들은 이제 금산분리완화법 통과를 노리고 있다. 토의와 입법이 목적이 아니라 소수의 그들을 위한 "통과"가 목적인 국회. 지겹다. 그들이 거기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4/10 사진.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낡은 운동화  (0) 2011.05.18
우울증과 죽음  (0) 2011.05.18
회복할 수 있을까?  (0) 2011.04.13
뭐가 저리 빛날까?  (0) 2011.04.10
이제 졸업  (0) 2011.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