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이 사람 시집은 없는줄 알았는데 정리하다보니 나왔다.
고은 시선 부활. 민음사. 1975년 발행.
두어 주일 전 그의 강연에 완죤 실망하였고 그의 무례함에 화가 났는데, 그래도 그는 유명한 시인이고 신문에 나고 강연하고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으니 내 이해가 부족한 걸테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나 내 젊은 시절 시 몇편에서 느꼈던 허무 과잉이나 깨우친 척 도사然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서 굳이 찿아서 읽을 생각은 없었다.
시집이 잡힌 김에 다시 읽었다. 몇 몇 시는 읽힌다.
그런데 많은 시가 불편하게나 뭔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문장의 앞과 뒤가 연결이 안되거나 부자연 스러워 사용된 단어들을 통하여 토막난 이미지로 "억지로 이해해 주어야" 한다. 그 중 하나를 옮겨적어본다.
""이 유월의 유동나무 잎새로써
그대 襟度는 넓고 보드라와라.
저믄 들에는 노을이 短命하게 떠나가야 한다.
산을 바라보면 며칠째 바라본 듯하고
나만 저 세상의 일을 알고 있는 양.
벌써 들쥐놈들은 바쁘고
낮은 담 기슭에 상치는 쇠어간다.
제 모가지를 달래면서 소와 말들은 돌아가
차라리 馬珠樹꽃을 싫어하며 빈 새김질을 하리라.
이제 저문 어린애 제 울음을 그친 귓속으로
내 등뒤에 하나인 것이 너무나 많고.
저 九州 下弦달 단 하나만 늦게 떠올라 오리라." "
이게 무슨 의미인가. 이미지->뜻의 형성-> 연결하여 의미 체계.... 이런건 고사하고 쓰이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 쓰이지 않는 사용법 등이 의미를 파악할 수 없게 하고 거부감조차 든다. 작정하고 사전을 찾아보았다.
襟度 금도 : 사전에서 어렵게 찿았음. 다른 사람을 포용할만한 도량. 이런 말 쓰인 경우를 보지 못했음.
마수주 : ???사전에서 못 찿음.
노을이 단명하게 떠나가야한다? 해 저믈었으면 사라지는 노을, 단명하게 떠나가야한다는 건 무리한 말 만들기다.조어가 불편하고 접속사 사용 오류는 문장 연결을 억지스럽게 한다. "차라리"는 미흡한 두가지를 비교하여 선택할 때 쓰는데, 여기서 무엇을 비교하라는 차라리인지 알 수 없다. "제 모가지를 달래는 소와 말"은 무슨 뜻이며 차라리 마수주꽃을 싫어하며 빈 새김질을 하리라"는 건 무슨 뜻인가. 시적 소통, 시적 설득, 동감이 어렵다. 짜장면을 싫어하여 굶었다는 말은 쓰지만 짜장면을 싫어하며 굶었다는 말은 안쓴다. 감정은 진행형으로 안쓴다구.
유동나무로써
그대의 襟度는 넓고 보드라와라
~로써는 무엇을 가지고 하는 도구나 수단을 의미하고 죽음으로써 나라를 구했다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조사인데 ~로써 보드라와라라니.....할 말이 없다. ~로서를 잘못 쓴 것이라면 자격을 의미하는데 (교장으로서, 학생으로서~) 그럼 뭔 뜻인가. '유동나무 잎새처럼 부드러운 그대' 쯤의 의미를 의도했다면 편하게 쓰지 왜 이리 불편하게 쓰는가. "다르게" 쓰는 것이 그에게 중요했던 건 아닐까?
저문 어린애? 해가 저물고 달이 저물기는 해도 자라는 어린애가 저문다는 소린 뭥미? 내 등뒤에 하나인 것이 너무나 많고는 뭔 뜻? 애 귓속과 등뒤에 하나인 것과는 무슨 연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고사하고 읽기에 짜증난다. 세상 인식 방법의 자유이든 시적 자유이든 간에 소통되는 말을 써야 할 건데 독자보고 어렵게 읽고 알아서 의미를 해득하라고 하고 있다. 이 경우는 요령부득이다. 마침 고은의 산문이 한 구절을 읽었다. 이상평전에 나온 글이다.
"李 箱은 한말 고종치세 이후 명료한 가계를 통해서 전형적인 서울사람이라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땅의 문학이 모범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말해질 때의 지방사 대상의 작가에 상반되는 특수성을 그가 가지고 있는 사실이다."
문장이 불편하고 난삽하다. 자연스럽지 않고 작위적이다. 의미도 불분명하다. 읽다보니 진짜 짜증 지대로다. 너그럽게 말해 파격이라고, 관습의 타파라고 하자. 그럴려면 파격 이후 格때문에 보여지지 않았던 속살을 드러낸다던지, 관습을 버리고 난 다음의 자유라던지 아름다움이라던지 더 큰 가치가 보여야 할 것인데, 글쎄, 마구 찍은 스냅사진 이미지에 앙상하고 상투적 의미를 붙이는 듯한 거칠음과 엉뚱함이 느껴질 뿐이다. 웃긴는 건, 고은 시집 서문에 "그의 시는 참 읽기 마땅찮고 의미를 알 수 없다"는 평론가의 해설이 실렸다는 것.
혹시 싶어 지난 인터뷰, 강연내용을 찿아 보았다. 참석자의 후기 등을 보니 그는 뻔한 이야기 하며 허세 잡거나 말을 뒤집어 의미있는 양 포장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세상은 세상의 부족입니다, 사랑은 사랑의 부족입니다" 이런 식이다. 고은은 군포 시민의 밤, 천안 시민의 문화의 밤 이런 모임에 자주 불려나가는 모양이다. 천안 시민을 위한 시 낭송회에서 읽은 시를 옮겨본다.
제목 천안 삼거리
하늘의 평안이
하늘아래 평안이라오
하늘아래 평안이
하늘의 평안이라오
천안
사는곳
오가는 곳
서로 손흔드는곳.
이게 詩인가? 아무런 시적 노력이 없다. 의미도 울림도 없다. 고은식으로 쓰면, 전설의 레전드급으로 리피트의 반복이고 시인의 염치는 쉐임이 낫띵이다. 군포시민을 위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문학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그는
"자연, 우주, 사회,사물 등 모든 것은 언어에 의해 존재되며 언어란 사람과 사람이 존재하게 만드는 근원이므로 언어의 사용은 신성해야 한다" 했다 한다. 알맹이 없는 소리 들으면서 모인 사람들 손 발이 오그라 들었을 거다. 생명은 모든것의 근원이니까 신성하게 살아야한다는 식의 뜬 구름 잡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가며 강연 품팔이 장사하고 있는건데, 나도 그가 말장난 하듯이 장난 쳐 보자면, 언어의 랭기지는 선택의 스랙션이 어둠의 닥크니스 속의 게임의 프레이다.
노벨문학상 후보 운운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는 스스로 자기 번역서를 홍보하는데 열심이라고 한다. 내용없고 우리 말로도 소통안되는 시를 어떻게 세계인들에게 읽힐것인가.
그의 이름은 있지만 이름만큼 그의 시는 읽히지 않고 읽어도 소통이 안된다. 시는 없는데 시인의 이름만 포장되어 떠돈다. 허상에 높은 값을 메기고 그 값을 의심하고 점검하지 않고 허상을 유통하는 것이 답답하다. 그 허상 위에 본인이 허상 확대 해나가면, 그건 사기와 다르지 않다.
이 시인을 (이 시인이든 누구든, 어떤 브랜드든) 좋아하고 존경한다면 존경하는 이유만큼은 자기 자신이 확인하면 좋겠다.
읽어보니 취향에 맞고 훌륭하다고 생각되면 그게 확인이라고 하겠다. 남이 존경한다니까 나도 존경해야할 듯해서 무조건 집단 존경하지 말자는 거다. 읽어보다 잘 모르겠으니 좋은 뜻인가 보다 하고 존경해쳐버리지 말자는거다. 많은 사람이 존경하거나 수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이라고 미리 접어주지 말자는 거다. 내 안에 의문이 있으면 뒤집어 보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거다. 속 빈 권위에 따져보지 않고 굴복하지 말자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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