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리하면서 빼낼 거 빼내고 접힌 것 펴고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오래된 메모도 본다.
누렇게 바랜 종이 하나가 툭 떨어진다.
반 독 재 구 국 선 언 문 - 고려 대학교 총 학생회
유신시절. 아마도 1973년 인듯 하다. 날짜는 없다. 모이자! 오는 월요일!
아마도 이 선전지를 받고 급히 읽어내리며 재빨리 접어서 품속 어딘가에 또는 책갈피 사이에 접어넣었으리라. 머리에는 열이 오르고 가슴은 떨리고 주먹은 꽉 쥐어졌으리라.
가빠진 숨이 내린 다음, 머리는 냉정을 찿고 가슴이 뜨겁게 뛰는 걸 느꼈으리라.
국민이 불행했던 시절, 학교문은 굳게 닫히고 학교안에 경찰, 형사가 구석구석 박혀있고 군인까지 들어와 운동장 한켠에 있었다. 정권에 위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어떤 행동도 허용되지 않았다.
총든 군인이 길거리 가로수, 전봇대처럼 일상이었던 시절. 국회는 해산되었고 법원도 대통령 발아래에 있었다.
국민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외치던 선배들과 친구들이 쫓기고 사라져 갔다. 최전방 군부대에서 시간과 싸우다가 언손으로 돌아왔다. 말을 제한 받고 글을 제한 받고 통행을 제한받던 시절. 길거리서 가방을 열어야 했고 가진 것을 검열받아야 했다.
그 시절을 견디었다.
그러나 아픈 점은, 이 시절을 국민의 항거로 막을 내리지 못하였다는 것.
반 독 재 구 국 선 언 문
피와 젊음과 정의의 대변자로 끊임없는 순수성을 추구해 온 우리 학생은 이제 다시
피압박자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자 한다.
4.19의 민족혼이 하나에 지고 둘에 가리워 지더니 드디어는 유신헌법에 이르러, 말하려하는 자는 입을 잃고, 선언하려 하는 자는 스러지고, 행동하려 하는 자는 사지를 잃으니 조용한 민족에게 그 두터운 침묵을 찢어질 듯 터지는 무서운 함성으로 변질 시키고 있어 그 독재정권의 어리석은 가면은 가련한 퇴장의 역사적 탈면을 스스로 강요하고 있다.
이에 자유, 정의, 진리를 사랑하는 팔천 고대인은 4.18의거의 숭고하고 장엄한 함성을 가슴 뜨겁게 새기며, 손을 끊어 글을 쓰고 옷을 벗어 그 선언문을 적고 가슴을 열어 전대학인의
외침을 안으며, 유신이라는 초독재정권의 미답적 횡폭에 이제 조용히 종지부를 찍을 것을
요구하며 전국민의 냉가슴을 대변코자 한다.
격렬한 정열과 순수한 의식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을 내 민족의 위대한 전도와 도도한 흐름을 위해 떨리는 손과 손을 잡고 흐르는 피와 피를 융합하여 고귀한 고대의 선열을 뒤로
안고 이제 전대학인과 국민들의 뜨거운 함성을 앞으로 들으며, 머리를 맞대 엄숙히
선언하노니 유신독재체재는 영광스러운 퇴진의 시기을 스스로 인지하라.
(결의문)
- 유신헌법 철폐하고 독재정권 물러나라.
- 고문정치 원흉을 죽각 처단하라.
- 무자비한 학원및 언론의 탄압을 중지하라.
- 세칭 "야생화" "민우"지 관계 고대인을 죽각 사면하라.
- 북괴는 우리의 신성한 학원운동을 악용하지 말라.
고 려 대 학 교 총 학 생 회
!! 월요일 10시 모두 강당으로 !!
지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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