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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딸네 아파트 짐 정리 아이가 출근한 월요일. 12월 11일. 서울에서나 여기서나 아이가 방 바닥, 책상 위에 물건을 흩뿌리고 사는 건 똑같네. 6인용 식탁 넓이의 책상 위에 화장품, 책, 노트북, 잡동사니 한가득. 회사가 제공하는 거실 하나 방 두개짜리 아파트에 방 하나는 안쓰고 있다. 그 방에 대형 트렁크 세개 다 펼쳐진 체 당장 안입는 옷, 쟁여 온 화장품 등이 섞여 있다. 서울로 돌아오고 싶을만큼 우울한 한달이었으니 짐을 가지런히 정리할 생각이 없었겠지. 책, 노트 등은 꽂아놓고 짐은 종류별로 빈 서랍 등에 옮겨 놓고 트렁크는 비우고 세워 놓는다. 빈 내 트렁크도 나란히 세워 놓는다. 무기력하면 질서가 무너진다. 새로운 환경, 공간에서 우울해 지면 스스로 질서를 세울 수 없다. 역으로 사소한 일상이라도 순서를 정하고 사.. 더보기
하노버에서 지난 주 아니 지지난 주 토요일 12월 9일 밤에 하노버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하노버 역까지 오는 차편은 고달펐다. 몇 번이고 기차 도착이 지연되거나 운행이 취소되었다. 공항에서 여섯시간 후 연결 비행기 타고 오는 거나 늦은 밤 도착하기는 마찬가지. 정원이랄 수도 없이 나무 몇 그루 듬성듬성한 마당을 남쪽으로 내려다 보는 아이의 아파트는 넓고 기능적으로 나무랄 데 없으나 스탈린 시절의 모스크바 아파트처럼 거리따라 기다랗다. 회색 외벽에 흰색 내벽의 상자 아파트는 아무 맛대가리 없는 정도가 아니라 기분을 좀 쳐지게 만든다. 기능만 있고 아름다움이 없는 건물은 그곳에 깃들어 사는 인생이 스스로를 마치 쓸모 여부로만 재단되는, 기능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존재인양 여기게 만드는듯 하다. 도시는 일찍 .. 더보기
겨울밤 깊은데 잠이 불규칙. 와인 한 잔을 따라놓고 바흐 평균율. 리히터. 한 잔 더 따른다. 리히터는 아무 ornament 없이 흑백으로 친다. 그런데 그의 흑백은 모든 색을 다 펼친다. 이게 어찌. 가능하냐고. 나이 들어 고독한 신이 세상을 위해 고른 음율이 바흐와 리히터의 정수리와 손끝으로 퍼져 나오는 것 같다. 따스함과 단정함과 기대와 엄격함과 고상함과 거룩함과 애절함과 무엇인가에 승복함과 균형과 기쁨 속에 스스로를 경계하는듯한 말로 담을 수 없는 사람 가슴에 담긴 모든 것을 펼쳐 낸다. 내 가슴에 감사가 넘친다. 행복의 눈물이 흐른다. 더보기
김홍도의 풍속화와 박수근 70년대 초에 어느 화가의 그림 전시회에 갔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미술 교과서에 나온 그림이외에는 인쇄 조악한 화첩이나 보았을 뿐 화랑에서 그림을 본 기억이 없다. 친구 손에 이끌려 갔던지라 나는 무심하게 그림을 보고 있었다. 한 점 한 점 보고 있자니 물감을 칠하고 말리고 덧칠했을 시간이 우툴두툴 흙처럼 굳은 화면이 눈에 들어 왔다. 아기 업고 엄마 기다리는 소녀, 함지 이고 장사 오가는 여인네, 좌판을 펼치고 쭈그려 앉아 아마도 소리없이 손님 기다리는 장터의 사내들. 보고 있자니 가슴에 물기가 돋았다. 그들은 모두 얼굴이 없고 고개 숙이고 있고 등을 보이고 있고 아무 소리 없는 회색의 공기 속에 흙바닥에 앉아 있었다. 쪼그리고 앉은 차가운 흙바닥. 얇은 고무신. 내가 찬 공기 속을 걷는 듯 했다.. 더보기
이젠 햇볓이 좋아요 마당에 잠자리가 놀러 왔다. 햇빛에 날개가 반짝인다. 철수는 가을빛에 배깔고 엄지 손가락 빨며 졸고 있다. 카메라를 가까이 대니 샛눈을 뜬다. 아웅, 눈이 부셔요. 더보기
가을 밤, 음악회 오랜 만에 음악회에 갔다. 정경화 바이올린 독주회. 대학 초년생이었을 때 이화여대 강당에서 정경화 연주를 처음 들었다. 마음을 흔드는 아름다운 소리, 청중을 압도하는 현란한 연주에 매혹되었다. 정경화의 20대 때 였는데, 무대에는 완벽한 연주를 하기위한 날카로움, 냉정한 몰입의 천재성을 풍기는 특별한 공기가 흐르는 듯 했다. 그녀가 연주하는 멘델스존을 들을 때 나는 그녀가 청중들을 꿈 속으로 구름 속으로 이끌고 가는 듯한 환상을 느꼈다. 긴장 속에 연주의 완성에 진력하던 젊은 연주자는 웃음띤 표정으로 관객과 눈빛을 교환하고 객석의 소음과 실수에 웃고 기다리는 여유로운 노장이 되어있었다. 정경화를 보니 그녀도 나이 먹었구나 싶다.(당연하지). 1부에 슈벨트, 슈만, 2부에 Prokofiev violin s.. 더보기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이웃에 사는 친구가 본격적인 스파게티를 해 주마고 오란다. 와인과 집에서 키운 방울 토마토를 들고 나서려는데 전화가 왔다. 너 혹시 바질 있니? 허브는 안키워서...어. 깻잎은 있는데, 그건 안되겠니? 야, 안어울려 ㅋㅋ 기냥 와... 친구는 가지를 깍둑 썰어 소금 뿌려 놓았고 피망, 토마토, 파프리카를 굽는다. 나는 훈수 둘 일 있으려니 하면서 친구 옆을 왔다리 갔다리 한다. 나도 한스파게티한다고 자부하지만, 가지 스파게티는 첨인데, 게다가 친구는 가지를 굽는다. 훈수둘 건덕지가 없다. 힘들게 왜 구워? 그냥 볶아 하니, 가만있어, 맛이 다르다고~ 한다. 거므스레 껍질이 탄 야채를 수도물에 식혀 껍질을 벗기고 작게 잘라 후라이판에 볶는다. 손이 많이 간다...가지도 물기 짜내어 볶고 이름만 들어 본 허.. 더보기
Midnight in Paris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알렌 감독. 오랜만에 웃으면서 영화 봤다. 앞의 한 10분을 놓쳤다. 영화는 재미있고 빠리 배경 풍광 좋고 연기 맛깔나고 간간히 웃게 만든다. 우디 알렌 영화를 보다 보면 하하하 웃기도하지만 그 보다는 숨긴 거 들킨 기분으로 ㅋㅋㅋ하게 된다. 소설가 지망생 질과 약혼자 이네스는 파리에 여행왔다. 친구 폴 커플을 우연히 파리에서 만난다. 폴은 함께 파리를 구경하자고 청한다. 베르사이유궁에서 폴은 일행에게 베르사이유에 대해 해설. 보고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폴의 썰을 듣는 시간이 되었다. 이네스는 폴의 지식에 감탄하고 폴의 애인은 폴이 자랑스럽다. 끝도 없이 설명을 이어가는 폴이 멋져 폴의 애인은 궁전보다 폴을 사진 찍는다. 관광의 중심이 바뀌었다고 할까. 여기서 웃음. 질은 그가 .. 더보기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졌던 몇가지 생각. 환경(자연)은 인간에게 굴레를 씌운다. 자연을 극복할 수 없으면 인간은 굴레를 내재화 시켜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된다. 삶과 죽음을 자연에 의탁한다. 역사의 굴레는 벗어날 수 있는가. 타자의 지배의 몇백년 간 뼈에 새겨진 굴레는 운명으로 내재화되는가? 실패의 기억은 맞섬을 포기하게 하는가. 포기의 평안함과 두려운 맞섬의 자유 중 어떤 것이 중한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멕시코 출신으로 가브리엘 마르게스, 바르가스 요사와 함께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남미 여러나라에서 살았고 18세에 멕시코로 돌아와 법학을 전공, 변호사로, 고위 공직자로, 프랑스 대사로 활동했고 미국의 여러 유명 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성장기 때 남미 .. 더보기
여름 마당 계절 늦게 주저앉을 듯 약한 모종 몇개 심었는데 이제는 서있는 자세도 당당한 깻잎, 다른 가지에 걸치며 휘어지며 마냥 뻗어나가는 방울 토마토 줄기, 단호박 속을 파내 버리고 잊었는데, 나 여기 있소 하고 호박꽃을 피웠다. 이렇게 잘 자랄 줄 알았다면 자리를 좀 여유있게 잡았을 거구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