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태리 출신, 주연 영국 출신 틸다 스윈튼. 낮익다 했더니 나니아 연대기의 눈雪의 나라 여왕이었다. 창백한 피부, 마른 몸매, 가늘고 섬세한 이목구비線은 밀라노의 오래 쌓아올린 부와 성공으로 자부심 가득한 집안의 안주인에 어울린다.
영화는 눈 내리는 밤, 밀라노의 격조있는 저택에서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장면부터 관객의 시선을 모은다. 어두운 밖에서 밝은 안으로 들어오면 예술품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실내, 요리사들의 능숙하면서 조심스러운 식사 준비, 화려한 식기와 식탁세트, 우아한 여주인공과 멋진 모습의 가족들로 화면은 화려하고 우아하다.
가족, 재산, 명성 등 부족함이 없는 여주인공은 친구를 위해 소박한 요리를 준비해 눈 속을 뚫고 온 아들의 요리사 친구와 무심하게 대면한다. 아들을 위한 파티에 아들의 친구인 요리사가 왔고, 여주인공은 그의 요리에 매혹되었고 산레모로 그를 찾아 나선다. 설레는 마음에 우연을 가장하여 그와 조우하고 산 속에 있는 그의 거처에 동행하고 육체에 빠진다.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된 아들은 엄마와 대화 중에 사고로 죽는다. 가족은 슬픔과 배반의 충격에 싸인다.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남편에게 남기고 그녀는 집을 떠난다.
영화는 화려하고 고급스런 의상과 악세사리를 걸친 우아한 여주인공, 요리, 고급스럽고 격조있는 저택의 실내, 자유분방한 요리사의 방 등 관능을 일깨우고 자극하는 색과 움직임, 산레모 거리, 산길, 꽃과 나무 등 생동감있는 이태리 풍광을 보여준다. 색은 화려하고 구도는 고전적이다. 포스터를 보아도 원근법 시선의 중심에 가문의 중심이었을 초상화가 있고 인물이 V자를 만들게 배치되어 있다. 배경같은 검은 옷에 붉은 드레스는 여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도 하지만 동떨어져 보이게 하기도 한다. 멋진 구도이다. 카메라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떨림과 속도로 나타내는 듯하다. 영화는 인상적인 이미지로 그득하다.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인데, 이야기에 설득력이 없다. 영화는 그녀의 사랑에 대한 결핍이라든가 누구와의 갈등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가 결핍조차 모르는 無感한 존재였다는 표현도 없다. 그녀가 아들의 친구인 요리사와 사랑에 빠진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이런 이야기 흐름에서 요리가 매개(요리를 먹으면서?)가 되어 새로운 사랑에 끌린다는 설정은 얼마나 많은 동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요리사와의 사랑에서 육체적 기쁨은 진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였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움직인 폭과 깊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무릎 꿇고 신발 벗겨주는 등 여자를 다루는 사소한 테크닉(?)따위뿐 어머니이며 아내인 나이 50대의 그녀를 숱한 사람이 동경하는 환경에서 뛰어 나오게끔 할 만한 요리사의 치명적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
요리사를 사랑한다는 말에 "당신은 존재하지도 않았어"라는 남편의 대사가 남편에게 있어 그녀 존재의 정체성을 일러 주지만 구체적 삶에서 그에 대한 갈등이 있었음을, 새로운 사랑에서 그것이 충족됨을 보였어야 새로운 사랑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품을 수집하러 러시아에 온 남편의 수줍은 청혼을 받아들였고 러시아인임을 포기하고 이태리인으로 살기로 했다는 그녀의 말에서 그녀가 선택된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녀의 선택과 약속이기도 하다. 요리사에 대한 그것이 사랑이려면 지금까지 맺고 이뤄 온 것에 숨어있던 결핍과, 소유와 존재에 대한 고민과 갈등 이후의 선택임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가문의 재산과 운영을 놓고 아버지와 다른 의견을 가진 아들, M&A, 욕망 자본주의, 그런 단어들이 나오지만 메인 스토리와 엮여있지 않고 그것이 비중있는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 자본가 가문이 배경인 영화에 자본 비판적 용어를 막연히 끼워 넣었다는 느낌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화면, 주연 배우의 연기, 영화를 꾸민 스타일이 멋있어도 이야기에 힘이 없으니 영화 전체는 아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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