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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어떻게 일본 과학은 노벨상을 탔는가

2010/05/09 12:49


김 범성 지음. 살림지식총서.

어떻게 일본일본 과학은 노벨상을 탔는가

 

한 해를 마감할 때면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려온다. 가끔 일본의 과학자가 수상자에 포함된다. 과학의 폭과 깊이가 앞서는 서구에서 노벨 과학상을 타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창조에 약하고 모방에 강하다'고 알려진 일본이 과학상을 탄다고 하면 경이롭기도 하고 괜시리 우리도 근접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13명의 일본인이 과학분야 노벨상을 탔다. 2차대전의 재를 치우고 있던 1949년 첫 수상 이전 1901년에 이미 일본인 과학자가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20세기에는 수상자와 후보로 추천되었던 많은 과학자들이 일본의 토꾜대, 교토대등 유명대학출신 엘리트로 미국, 독일등에서 연구의 깊이를 더했던 사람들이었는데  21세기에는 일본 토종 수상자도 있으며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았던 주변부 과학자들도 있다. 근 백년동안 연구 거점과 인력 양성이 토꾜와 교토에 한하지 않고않고 나고야, 고베등 일본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연구 육성 지원 또한 중심 지역, 대학에 한하지 않고 기업과 연구소등으로 저변이 넓고 다양해진 결과이다.

 

1907년생인 유카와 히데키는 1949년에 수상했는데 수상 대상 연구는 1935년에 이미 발표되었다.  최초로 양자핵의 존재 모델을 발표한 나가오까 한타로는 유카와보다 선배 과학자로 일본의 과학이 기초연구를 소홀히 하고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린다고 지적하였다. 그들 세대는 1차대전을 겪으면서 일본과학이 서구과학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과학연구의 자립을 위해 일본 이화학 (물리, 화학)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서구에서 앞선 연구를 하던 과학자들이 귀국하여 젊은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과 공간을 제공한다. 물리학이 아니지만 연구의 역사가 오랜된 예로 1905년에 이미 연구 잡지 癌이 있었고 1908년에 일본 癌연구소가 설립되었다. 1922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아인슈타인은 그 해 한 달 반 일본에 머믈면서 일본 각지를 돌며 강연을 했다. 또한 이화학연구소를 설립한 선배 과학자들은 서구의 뛰어난 연구 실적을 보인 젊은 과학자들을 초청하여 일본내의 연구인력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그러한 환경이 유카와 히데키를 일본토종으로 해외 유학하지 않고도 독립적인 연구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며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감과 동력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2008년에 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수상소감을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라는 말 이외에는 일본어로 발표하였다. 그는 수상하기 위하여 70가까운 나이에 여권을 처음 발급 받았다. 뛰어난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여행이 첫 해외나들이라는 것이 특별한 이야기거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일본의 물리학 연구 환경이 서구로 부터 자립적이며 이론서적, 설비,설비, 연구인력등이 그 땅 안에서 그들의 언어로 연구를 할 수 있을 만큼 구축되어있다는 점이 더 주목할 점이다.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니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인데, 2002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는 일반 회사의 연구원이다. 그가 작업복 차림으로 수상 인터뷰를 하던 사진이 우리나라 신문에도 나왔었다. 시마즈 제작소라는 기업이 사업으로 연결될 지 미지수인 연구를 지원하는 것, 그가 연구자이기 보다 상품을 개발하는 기술자이고 개발자라면 흔히 '응용'을 궁리할 것인데 기초연구를 꾸준히 해왔다는 점 등이 참 인상 깊었다.   

 

수상으로 드러난 과학자 이외에 많은 과학자가 일본과 구미 과학 선진국에서 뿌리와 줄기를 형성하며 영향과 도움을 주고 받고 기초과학 연구에 충실한 환경과 전통을 이어간다. 연구 과제는 전쟁, 냉전, 환경에 따른 病등 시대(의 요구와 전개)를 반영하며 일본이 시대적으로 유리하게 경험하였던 자료에 따라 결과를 낸다. 수상하지는 못하였지만 1900년대 전반부에 생리의학상 분야에서- 파상풍, 티푸스, 콜레라등 세균학, 전염병, 각기병 등- 많은 후보자를 냈던 것은 무서운 기억(일본이 아시아인들을 상대로 한 생체실험)을 떠오르게 한다.

 

책은 작고 얇고 재미있다. 그 안에 한 글자도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알토란같은 지식이 가득하다. 저자는 노벨상이 기초과학 연구의 목표도 성공의 척도도 아니나  오랜 역사의 노벨상 수상史를 통해 우연한 과학적 발견(그러나 필연적인 연구 결과), 일본과 서구의 훌륭한 과학자들간의 교류, 지도와 이끌림, 일본 과학 연구 환경, 연구 인력의 성장과 전통,  동력으로서의 정부, 기업의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이해와 지원등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수상자 몇으로 보여지는 빙산 아래 오랜 시간 넓게 양성된 기초 과학 연구자 집단과 연구 환경이라는 거대한 빙산이 받치고 있는데 그것은 기초 과학 연구에 대한 나라와 기업의 깊은 이해와 오래 된 지원의 결과라는 저자의 시각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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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며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물리학자 이성익교수는 지난 2월 24일 자신의 마지막 논문 발표후 자신의 집에서 자살하였다.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그의 논문은 330회나 인용되는 등 '고전'수준의 업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한다. 그는 20년간 포스텍에서 초전도체를 연구하다가 2008년 서강대로 옮겼다.  기사에 의하면 그는 서강대로 옮기기로 하면서 포스텍으로 부터 연구비 횡령의혹을 받아 조사를 받았으며 무혐의로 종결되었지만 그 과정을 괴로워 했고 스트레스와 연구 환경 미흡으로 논문이 진척되지 않아 괴로워 했다고 한다. 포스텍은 부정하였지만 옮겨 가려는 중요 과학자의 발목잡기라고 보인다. 평생을 연구실에서 지낸 과학자는 대개 사회적, 법적 거칠음을 모른다. 몇 개월을 서울 포항간을 오가며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니 스트레스와 모멸감은 그를 벽으로 몰아붙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런 수준의 훼방이라면 진행중이던 연구를 위한 포스텍의 설비와 인력의 협조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주변을 통하여 들으니 서강대는 그에게 200평의 연구실과 75세 까지 연구, 교수 자리를 약속하였다한다.

그 당시 손병두가 총장이었는데, 그는 홈프러스 수퍼마켓을 입점시키는 조건으로 학교 내에 건물을 지어 받을 계획이었고 그 건물 안에 연구실을 제공할 계획이었다. 대부분의 학생, 동문들이 학내 슈퍼마켓 입점을 반대하였고 건물 건축 계획은 취소되었다. 손병두는 작년 언제인가 총장에서 물러났다.

이성익 교수의 새연구실 계획도 무산되었다. 연구 환경은 공간, 설비에 교육된 연구원도 포함되어야 할 것인데 2년 이상 지연된 연구실의 공백은 그에게 사는 이유를 씹어보게 하였을 듯하다. 15억원이 투입된 그의 설비는 포스텍에 남아있다. 연구원, 설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속에 근거하여 서강대로 가기로한 이유는 짐작컨데, 75세 정년 약속이 아닐까 싶다. 학자가 정년에 밀리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있는 자리를 약속 받는다면 현재의 준비가 미흡하더라도 약속을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옮겨간 대학의 무산된 약속,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사안에 비해 무리한 전 대학의 발목잡기, 그 사이 스트레스와 무력감에 결과을 낼 수 없었던 것이 그가 죽음을 선택하게 하였다고 짐작해 본다.

 

숫자로 실적으로 학자을 계량하는 풍토, 비지니스 마인드의 대학, 무산된 약속때문에  뛰어난 과학자를 잃어 상실감과 충격이 큰데, 위의 책을 통하여 알게 된 일본의 기초 과학과학 연구 환경과 두터운 인력, 그것을 가능케한 일본 사회의 이해와 지원, 그것과 비교되는 우리나라 환경의 격차을 느끼게 되니 우리도 노벨상에 가까울 것이라는 기대가 사그라지는 기분이다. 노벨상이 기초 과학 연구의 목적은 아니지만.

 

국제적으로 뛰어난 과학자가 이런 상황에 던져지는데, 기초 과학의 뿌리를 이루는 그러나 무명의 과학도들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환경이겠는가. 기초과학에 대한 이해와 투자 없이 열매에 대한 기대는 까마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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