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1 21:32
권 진규(1922-1973)는 나에게 특별한 기억이다.
조각도 작가 이름도 모르던 대학 초년 어느 날, 친구가 어느 조각가의 작업실에 가자고 했다. 아마도 73년이나 74년 초 여름, 방학이 시작하기 전 쯤이었을거다. 방문 전에 작업실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흘렸다. 삼선교 부근에서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60-70 년대 서울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가옥의 한 켠이었다.
작업실에 들어서면서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 이전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고독감과 정적을 느꼈다. 직사각의 작업실은 넓지 않았고, 넓기보다 높아 보였다. 茶褐색의 나무 기둥, 나무 선반 ,
그 위에 붉은 흙으로 빚어진 크지 않은 작품들이 올려 있었던 듯 하다. 선반 위로 높이 열린 창에서 햇빛이 들어왔다.. 방문객들을 위해 먼지와 흙이 치워지고 물건들이 나란히 놓여서 작업실은 단정하고 조용했다. 아니, 그보다 실내에 아무 장식 없이 작업을 위한 도구와 구조물만이 있었던 탓일 게다. 표현과 장식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곳에 사실과 본질을 흐리게 할 어떤 장식물도 없는 것이 작업실 주인의 집중성과 내향성을 드러내는 듯 했고 그것이 실내를 고독과 정적으로 채웠다. 방에 머무는 동안 빛은 점점 약해져서 해가 질 때 쯤엔 방안의 정적이 짙어졌다.
권 진규의 작업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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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언제쯤인가 친구와 권진규 조각전을 함께 보러 가기로 약속을 하다가, 친구가
"너하고 그 아트리에 갔던 거 맞지?"
하고 물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곳, 공기 중에 떠돌던 어떤 것, 냄새, 먼지가 기억나는데, 그 진한 시간을 함께한 친구는 기억에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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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는 1948년 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 조각과에서 조각을 공부.. 1959년 귀국 후, 테라코타와 건칠을 주재료로 한 조각작품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하였다. 이번 덕수궁 전시물은 남녀인물,, 동물, 추상 등 다양하였고 환조, 부조뿐 아니라 회화, 드로잉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글, 한자, 일본글자가 섞여 쓰인 스케치북과 수첩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특별한 감상을 가지게 하였다.
그는 시미즈 다카시 (淸水多嘉示)에게 사사하였다 . 시미즈 다카시는 로뎅의 제자 부르델의 파리 작업실에서 조각을 공부하였다. (시미즈 다카시는 예술가 이름으로는 기막히게 잘 지었다.)
로뎅, 브르델,, 다카시는 대상의 사실적표현과 조형의 구축성을 중요시한다. 로뎅과 브르델이 신화와 현실 속의 인물들을 사실적이며 (근육과 골격의 구체성과 섬세한 구현) 인간적으로 표현한 예술성을 권 진규는 스승 다카시를다카시를 통하여 배운다. 일본 체류시 브르델 조각전을 보고 더욱 대상의 사실적이며 본질적인 내면의 표현을 추구한다. 이후 그는 두상의 경우 상체를 단순화시키고 얼굴의 볼륨을 깍아내면서 대상의 구체성을 (그의 스승의 작품보다)생략하여 권 진규의 스타일의 독창성을 확립한다. 비구니, 춘엽니, 곤스케 두상 등의 정적인 표정과 흔들림 없는 눈빛은 대상의 내면적 에너지가 삶의 출렁임을 건너뛰어 본질을 향하는 영원성을 보여준다. 그의 삶을 건너 뛰는 영원성에 대한 추구는 그가 테라코타를 주 재료로 쓰는 이유를 미렇게 밝히는데서 느껴진다.
「돌도 썩고, 브론즈도 썩으나
고대의 부장품이었던 테라코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잘 썩지않습니다.
세계최고의 테라코타는 1만년전의 것이 있지요.
작가로서 재미있다면 불장난에서 오는
우연성을 작품에서 기대할 수 있다는 점과
브론즈 같이 결정적인 순간에
딴사람 (끝손질하는 기술자)에게로
가는게 없다는 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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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기를 잘했다. 표를 내고 전시관으로 들어가는데, 가슴이 뛰었다. 젊디젊은 시절에 보았던 건조하도록 내부를 향한 조각들,, 고독하기도 하고 우아하기도 한 두상들, 그때의 감성이 나이 든 지금은 어떨런지....오랜 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랑을 다시 만나면 이렇게 가슴이 떨리려는지.
전시실의 한 켠에 브르델의 부조와 시미즈 다카시의 작품 (10여점?)이 전시되어있었다. 나는 이 것이 특별히 좋았다. 그가 어떻게 배웠으며 스승을 극복했으며 독자적 스타일을 형성하였는지, 권 진규의 작품 속에 스승, 스승의 스승이 드리운 특질과 기술적 전통이 어떠한지 볼 수 있었으니. 그의 작품에서 그리스, 로마의 고전에서 풍기는 품격이 느껴지는 이유, 그것을 아주 독창적으로 권진규답게 전개해 낸 궤적들을 볼 수 있었으므로.
관람을 마치고, 기억에 쌓인 먼지를 털어보려고 일부러 한적한 커피집에 앉았다.
키보다 높은 선반 위에 있어서 사선으로 올려다 보아야 했던 덩어리들. 잘 볼 수 없었다. 그의 작품보다 작업실을 먼저 만났지만, 생각해보면 그 작업실이 그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곳에 갔을 때가 그가 자살하기 전인가 후인가 한참 헤아려 보았다. 초여름, 해 지면서 어둑해지던 기억이 살아난다. 그 때 어스름히 퍼지던 정적을 생각하니, 그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생을 마감한 후인 듯하다.
그가 흙을 빚던 작업실에서 그는 흙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의 마지막 테라코타가 되었다.
오랜 시간을 견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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