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Alain Robbe-Grillet 알렝 로브그리예 민음사 박이문, 박희원 옮김
소설의 초입에 누구라고 규정할 수 없었던 화자가 집, 가구, 그림자, 빛, 방향등 공간 속의 사물을 세밀하고 집요하게 그려낸다. 촘촘한 모눈 종이안에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없는 잔 그림이 빼꼭히 들어차있는듯해서,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채, 화자가 끌고가는대로 온 신경을 집중하며 따라간다. 무엇인가 이야기할 거라고 기대하며 그의 집요한 시선과 묘사만큼이나 날카로워져 더듬이를 가동하면서 묘사를 쫓아간다. 그러나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집, 가구, 죽은 벌레의 흔적, 아내의 손가락 사이에 구겨진 행커치프, 프랑크 옆에서 바르르 떨리던 아내의 손가락, 아내 A와 이웃 남자 프랑크와의 반복되는 동작과 대화, 집안 창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바나나 농장의 변화없는 모습 등만이 계속된다. 모래알을 헤아리는듯 무의미한 것에 집요한 이 시선이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지점에, 공간 속의 사물, 변화없는 집 밖의 풍경, 아내 A와 프랑크의 대화는 소설의 배경이 아니라 화자의 의식의 배경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는 이야기랄게 없다.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에서 바나나 농장을 하는 화자의 아내 A와 이웃하여 사는 남자 프랑크가 A 부부의 집에 방문하여 차를 마시거나 저녁을 먹거나 시내로 차를 타고 나갔다오는 것이 전부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드러나는 갈등도 없다.
화자는 아내 A의 남편으로 아내 A와 이웃집 남자 프랑크사이의 대화와 행동을 쫓아가는 시선으로만 존재한다. 그의 존재는 식탁 위의 3인용 식기에서 드러날 뿐 그들 사이에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가 없음으로 존재하지 않게되는 존재다. 아내 A와 프랑크의 대화, 움직임에 대해 화자는 감정, 가치, 판단을 메기지 않는다. 판단하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그의 행위도 의식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성격, 배경에 대해 알려진 바도 없다.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 아내도 이름이 없이 A라고만 불린다. 프랑크는 그가 아내A와 대화하거나 시내에 동행할 때만 화자가 인식한다. 의자, 식탁등과 구별되는 식별코드와 다름없다. 아내 A에게 남편이 그렇듯이 그들도 시선의 배후 심리의 어떤 면을(그걸 작가는 질투라고 이름지었다) 제외하면 공간 속 사물과 다를 바 없다.
아내A와 프랑크는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가 밤을 지내고 다음날 돌아오곤 한다. 늘 자동차 문제라고 아내 A와 프랑크는 말을 주고 받는다. 화자는 자신이 감지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외에서 일어나는 것은 인식할 수 없으므로 추측하지않고 분노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아내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쫓으며 화자의 의식은 보이는 것들의 미세한 변화로 가득 차있다. 미세함에 함몰되어 화자는 시간속에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갇힌다. 아내 A가 밤을 비우는 날은 오늘도 차가 사고 난 거라고 아내A의 외박을 스스로 정당화시킨다. 소설 속 처음, 그리고 유일한 판단....그것은 의심, 집착 또는 질투일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외부의 의미를 화자 내부의 변화와 연결시키지 않으려 한다. 그는 시선으로만 존재하고 시선으로만 인식하기에 외부의 의미가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지 않는다.
화자(또는 작가)의 과잉 묘사는 독자를 빨아들이기보다 묘사를 건너뛰게 하여 몰입을 방해한다. 그리하여 독자와 화자와의 동화를 냉각시킨다. 그것은 화자(또는 작가)가 대상으로의 세계를 보는 방식이다. 카메라 렌즈처럼 비인성적 인식이다. 작가는 독자에게도 동일한 시선을 요구한다. 그러나 읽는이는 역으로 화자의 무감정하려는 강박을 느끼게된다.
화자가 지극히 과잉으로 묘사하는 시선의 이유는 그의 심리적 배경에 있다. 화자는 그것이 정서적으로 어떤 것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토록 자세히 대상을 쫓아다니는 이유를 독자가 추측할 뿐이다. 제목이 질투가 아니라면 독자는 질투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해또는 증오라고 하여도 그렇게 읽힐 것이다.
카메라를 통해 보고자하는 대상과 촛점은 어떤 의식에 따른다. 시선의 주체는 바라 볼 대상을 선택하고 인식한다. 특정한 대상에 대한 시선의 집착은 특정한 심리에 기초한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강박일 수 있다. 여기에는 관계가 존재한다. 관계는 미움, 사랑, 집착같은 것으로 해석되고 거기에는 가치가 포함되어있기 마련이다. 이 소설은 카메라 렌즈처럼 비인성적 인식만을 시도하고 가치, 판단, 감정같은 의미를 배제하는 실험을 했다. 그 외에도 이 소설은 어려운 실험들로 가득하다. 등장인물 배경이 없고, 성격이 없고, 관계가 없고, 사건이 없고, 갈등도 해결도 없고 .... 그럼에도 새로운 인식을 열어주는, 놀라운 소설이다. 매우 낮설은 스타일. 읽기 불편한데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독후감 쓰기 어렵다. 한달 이상 생각만 하고 말을 풀어내지 못해 묵혀두었더니, 생생하던 느낌과 이리저리 퍼지던 생각이 다 사라지고 책을 끝냈을 때의 충격과 감동만 뚜렷하다. 20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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