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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마론 브란도의 영화 BURN!

  2010/06/21 16:09

지난 토요일 밤 EBS에서 보여준 영화 제목이다. BURN!  다 태워버려! 쯤 되겠다.

1969년 공개작, 마론브란도 주연.

처음 들어 본 제목이었지만 몇 장면 -  카리브해의 포르투갈 식민지, 사탕수수 농장의 흑인 노예들, 자유도 희망도 없는 그들에게 구세주처럼 보여진 영국인, 그의 숨은 목적, 섬 밖의 세상의 헤게모니 싸움을 알지 못하는 식민지인들.... 서유럽의 중남미 식민지화의 한 패턴을  보여줄 것 같아 흥미를 느꼈다. 혹시 영화 시간 놓칠까봐 핸폰에 울림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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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경, 폴투갈 식민지 케이마라 (가상의 섬)의 흑인 원주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노예로 살아간다.

사탕수수 밭으로 들고 날 때 원주민들의 목과 다리는 연결된 무거운 쇠사슬에 메어있다. 소수의 백인들에게 항거하는 원주민은 참혹하게 처형된다. 원주민의 삶은 고통과 절망뿐이다.

사탕수수 무역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영국은 해군장교 윌리암 워커(마론브란도)을 보내 원주민 소요를 부채질한다.

저항적인 원주민 호세와 손잡고 그를 중심으로 모인 흑인 원주민 몇에게 윌리엄은 총 쓰는 법을 가르치고, 현지 은행을 털게하고,

피신할 지역과 배를 알려 주는 등 소소한 교육과 승리를 얻게한다. 이를 통해 원주민들은 윌리암을 자기 편으로 생각한다. 호세와 윌리엄은 우정을 나누며 동시에 경계한다.

호세의 무리는 세를 늘려가며 폴투갈 파견정부에 저항하고 윌리암과 호세는 폴투갈 총독을 몰아낸다.

섬 원주민들은 기쁨의 춤을 추고 호세를 대통령으로 추앙하나, 그는 자신이 내부적으로 섬을 이끌

능력도 외부적으로 교역을 다룰 능력도 없음을 알고 자리에 앉지 않는다.

섬 정부 대표가 親영국 인사로 바뀌고 영국은 99년간 섬의 사탕수수 독점 무역권을 갖는다.

원주민들은 형식상 노예신분에서 벗어났으나 노동과 착취의 강도는 이전보다 가혹하다.

권력이 어느 쪽으로 옮겨갔는가에 관계없이 섬 주민들은 지옥 이쪽에서 저쪽으로 밀려났을 뿐이었다.

목적을 이룬 윌리엄은 영국으로 떠났고 호세는 가혹한 지형의 섬 외곽에서 저항 활동을 이어간다.

 

10년이 지나고, 그 사이 설탕 무역업자들은 호황속에 연합, 합병으로 대형화되었다.

영국 무역업자 로얄 슈가가  저항군을 제거하기 위하여 윌리엄을 고용, 섬으로 보낸다.

로얄슈가는 현지인을 고용하여 私兵경찰을 꾸리고  섬 정부를 간섭한다. 윌리엄은 섬 정부와 저항군 제거 작전을 이끌다가 정부 대표를 제거하고 영국군대를 불러들인다.

전에 없던 포병과 보병을 섬 전체에 깔아 저항군을 색출한다. 저항군의 배후 마을을 불사르고, 산으로 숨어들어간 저항군을 찾기 위해 숲을 태우고 사탕수수 밭 사이로 숨어들어간 저항군을 수색하려 밭을 태운다. 마을은 참혹한 죽음으로 사라졌고 숲은 처참하게 뿌리만 남겼고 영국의 수입원인 사탕수수 농장들도 까맣게 타버렸다. 잿더미 마을에서 우연히 발견된 사내아기도 제거한다.

로얄슈가의 간부는 윌리암에게

"당신은 우리의 이익의 원천까지 태웠소. 농장의 회복에는 10년이 걸릴 것이요. 로얄 슈가와 영국은 앞으로 10년 동안 손실을 입을 것이요"것이요" 라고 하자 윌리암은

"아직도 87년이나 소득을 볼 것 아닙니까" 한다.

타버린 마을과 죽은 사람들, 사라진 숲은 그들의 계산에 들어가지 않았다.

 

호세는 퇴각하다가 생포된다. 그는 로얄슈가에 고용된 원주인 병사들에게 영웅이다.

포로인 호세에게 병사들은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농장을 가지고 있지만, 칼을 쥐고 사탕수수를 베는 것은 우리이다. 임금 노동자라 하지만 낮은 임금으로 우리는 노예와 다르지 않다.

나는 외부 문화를 모른다. 그 문화의 내용이 아니라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겠다" (윌리엄이 전에 호세에게 "니들은 어짜피 우리의 문화 속에 있다"고 했음)

 

윌리엄은 저항군의 리더가 자유의 순교자로 전설이 되어 섬 밖으로 나가는 것을 억제하고자 호세를 원주민의 배반자로 연출하려 한다. 호세를 섬 밖으로 도망가게 하고 제거 하는 계획.  처형 전 날 밤, 윌리암은 호세를 풀어주며 후일을 도모하며 도망가라고 한다. 그러나 호세는 처형되기를 선택한다.

 

윌리엄은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려 항구에 나갔다. 처음 도착했을 때 호세가 그에게 말 걸었던 것처럼 흑인 청년이 다가와 가방을 들어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윌리암이 그래라고 대답하기 전에 그는 흑인 청년의 칼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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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그와 비슷한 수탈의 역사를 거친 중미의 여러 섬들, 그들이 먹을 것을 기르던 대지를 빼앗기고 숲을 잃고 그 위에 설탕과 파인애플과 바나나 등 정복자를 위한 수출용 작물만을 길러야 했던 남미 나라들. 영화를 보면서 여러 나라의 식민지 역사가 겹쳐 떠올랐다. 멀리는 스페인에게 패망한 페루의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 가까이는 우리의 딱 100년전 역사가 떠오른다. 외부 세계에 무지했던 아타우알파와 그의 신하들은 외부인을 대접하였고 황제가 생포되었을 때 외부인의 목적과 문화와 음모를 모르는 페루는 황금을 바쳤고 그 순간 아타우알파의 목이 떨어졌다. 동질성으로 구성된, 외부를 경험하지 않은 사회는 이미 헤게모니 싸움 중인 세계의 풍부한 경험과 복잡한 전략을 알 길이 없다.

 처음 접근 명목에서 경제적, 군사적 장악으로 확대해 나가는나가는 것은 영화의 배경인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설탕을 사겠다고 들어와 현지정부의 뿌리를 흔들고 유력자를 갈아치우는 음모를 획책하고 집행하고경제지형을 정복자에게 유리하게 바꾼다. 군대를 끌고 올 명분을 만들고 주둔하며 지역을 정복자의 지도 안으로 편입한다. 가까운 과거, 한국, 일본, 더 가까운 과거, 이라크, 현재 진행중인 아프가니스탄....익숙하지 않은가.

 서구 나라들의 힘겨루기는 자원이 많은 지역에서 그 땅에서 나오는 것을 놓고 싸움을 벌인다. 정치적 권력 간의 대결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금력 간의 싸움으로 변하고 또한 정치 권력의 대리전이 되기도 한다. 영화에서 설탕권력은 주민과 괴리된 소국의 그것을 장악하기 위해 본국의 권력을 지렛대로 이용한다. 그 시대의 설탕권력은 경제 지형에서 지금의 곡물 권력, 석유 권력과 같은 위치일까 더 거대할까.

아름답고 풍부한 섬의 젖줄같은 숲을 태우는 영국군을 보면서 아마존을 태우는 브라질의 곡물 메이져와 곡식권력에 함몰된 정치권력을 떠올렸다. 유럽의 식민지 300년간 중남미에서는 농장주들이 설탕, 카카오, 과일 등 수출용 농작물을 생산할 땅을 확보하기 위해 숲을 태웠고 지금도 브라질에서는 수출용 콩을 경작하기 위해 매년 엄청난 넓이의 아마존 숲을 태운다. 본국, 유럽, 미국에서 유입된 농장주, 자본가의의 경제적 이득에 대한 욕망은 현지인의 삶, 환경을 무릎 꿇린다. 회복될 수 없는 자연의 파괴를 겪은 원주민은 더 깊고 가파른 한계 환경으로 파고 들거나 저가 노동력으로 고용된다.

영화 속에는 호세에게 귀 기울이는 순진하고 슬픈 눈의 로얄슈가 사병도 있고, "호세가 잡히지 않아야 윌리암 당신도 돈을 벌고 나도 임금을 받으니 같은 처지 아니오?"라는 사병도 있으나 완전히 줄 바꾸는 원주민도 없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거는 그들의 모습과 똑같은 이웃에게 총을 쏘고 처형대에 세운다.

섬의 유일한 수입원인 설탕 교역권을 한 외부인이 배타적으로 99년간 갖게하는 계약은 그리고 계약 후에 설탕 가격을 떨어뜨리는 조작은 어쩐지 FTA의 원형이 아닐까 생각된다. 힘과 정보와 협상력의 극심한 불균형속의 계약은 계약이 아닌 강탈이다. 강탈 과정에 많은 연막과 호도와 나누기 로비가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윌리엄형의 인간을 본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약과 목적달성이다. 그는 목적을 위해 우정을 가장할 수 있다. 그에게 우정, 믿음, 의지 그런 것은 계약, 목적, 결과, 효율을 위한 위장이거나 전략의 일부였다. 윌리엄은 '아내는 현지 여자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효율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에게는 사랑의 관계, 결속에 대한 감정이 결핍되어 있다. 사랑의 대상이 아닌 도구로 아내를 규정하는 그에게 사람은 assignment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에 수반되는 요소들의 일부일 뿐이다. 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시간에만 존재한다. 한 프로젝트에서 다음 프로젝트로 움직일 뿐 그 사이는 공허하다. 섬에서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시 새 임무를 받기 전까지 영국으로 돌아가 지내던, 그는 런던의 뒷골목에서 부랑아로 싸움질 하며 지냈다. 섬을  떠나는 길, 항구에서 칼에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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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이 좋고 이야기가 풍부하다. 절망하고 기뻐하는 원주민의 표정, 섬의 환경등이 리얼하다.

마론 브란도의 연기는  주인공의 영민함, 냉소적인 성격, 냉혹함과 호세와의 관계를 풍부하게

표현하려다가  연기가 과잉 된듯하다. 남자 주인공 호세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는데,

그는 실제로 사탕 수수 농장의 일꾼이었다 한다. 원주민 여인들의 절망 속, 돌처럼 굳은 표정은 강렬하다. 그들의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 현재의 아픔을 새기고 있는 듯 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상영되지 않았는데, 이런 영화를 찾아 보여준 EBS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