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를 신정에 지내니 설이라 해도 특별히 준비할 게 없다. 구정에 하던 식사는 막내네가 여행간다기에 이번에는 모이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는 병원에서 설을 보내게 되었다. 칼 날 같이 날카로웠던 날씨가 그럭 저럭 풀려 어머니를 모셔와 며칠 지낼까 생각하였지만 좀 겁이 났다. 어머니 뒤를 처리하고 씻기는 일은 식구들 힘으로 어찌 하겠지만 식사 때마다 침대에서 일으키고 눕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흘이니까 닷새니까 하고 단거리 달리기 스펏트 하듯 할 수야 있겠지만... 지난 여름 생신때 의자에 앉으시더니 이제는 일어나 앉지 않으려 할 정도로 기력이 빠지고 당신이 누구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이 집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설이 될라나, 그러니 모셔 올까 그런데 모실 수 있을까 궁리하다 시간이 지나갔다.
작은 애가 우리 내일 대치동 가? 하고 묻기에 올해는 안 가 했더니 보통 때 같으면 나 안 가고 집에 있으면 안 돼? 하고 물었을 작은 애가 왜 안 가? 하고 묻는다. 큰 집 갈 일을 챙기던 녀석들이 모두 그믐날 밤 늦도록 밖에 있거나 새벽에 돌아와 시간 모르고 잔다. 설날 아침, 늘 차로 가득하던 창 밖의 길이 텅 비었다. 어제 저녁 설겆이한 그릇들을 소리 나지 않게 조용 조용 정리하고 이런 저런 널린 것들을 치우면서, 그래도 모셨어야 애들이 어제 밤 나가지 않고 설날처럼 하루를 시작했을라나 싶기도 하고, 어른은 존재하는 것으로 중심이 서는 거구나 싶고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어제 불려놓은 고사리는 아직도 딱딱하다. 제주도 고사리다. 작년 4월 제주도 올레길, 할머니 앉아 있던 집, 마당에 펼쳐 놓은 망, 그 위에 손 끝을 오그리고 햇빛에 바람에 마르던 고사리. 부드럽게 습하고 조용히 어둡던 제주 대학 숲이 떠오른다. 습기 찬 낙엽 사이로 드믄 드믄 올라오던 새 순도 떠오른다. 여기까지 오기 전 바람과 햇빛과 그 할머니 손을 얼마나 탔을까. 고사리 불린 물에서 그것이 떠나온 숲 속 습기와 흙의 향기를 맏는다. 고사리 연한 손 끝이 새 봄을 기다리며 흙 사이 여기저기 밀고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을거다. 고사리를 무치고 시금치를 무치고 참기름 냄새를 즐기는데 올케가 전화를 했다. 간단히 저녁이나 먹자기에 편히 쉬라 했다가 가겠다고 했다. 뒤로 철수 데리고 오라고 해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막힌 길을 뚫고 도착하니 저녁 식탁이 이미 차려져 있고 그 집 예비 며느리가 와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밥 푸고 나르기 시작한다. 좀 일찍 왔어야 했는데... 내가 연초에 보낸 와인이 나와 있었다. 이미 끝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마시려고 안 땄구나 싶다. 어려운 일을 겪은 조카에게는 안정을, 봄에 결혼할 조카에게는 행복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발전을 그리고 모두에게 건강을 빌며 새해 건배!
어른들이 조카들에게 길게 물으면 조카는 짧게 답한다. 저녁을 끝내고 아이들은 상에서 물러난다. 와인 한 병을 마저 따고 다시 건배. 어릴 때 함께 놀며 뒹굴었던 사촌들도 머리가 크고 나니 이야기 꺼리가 떨어지는지 한 놈은 들어가 자고 한 놈은 약혼자와 놀고 한 놈은 소파에서 졸고 한 놈은 아이폰과 놀고 있다. 철수와 그 집 강아지가 쫓아 다니며 논다. 시누는 올케의 주름과 혈압을 걱정하고 올케는 시누에게 뭐든 싸주려 한다. 예비 부부가 세배하겠다고 한다. 설날 밤 열시, 조카들의 세배를 받는다. 둘을 앞에 앉혀놓고 보니 참 예쁘다. 아이들도 세배를 했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고맙다고 했을 때 웃던 표정이 내 말이 길어지려는 듯하니 하품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알았어 그만 할 께. 니들 사랑해. 고마워.
작은 애가 우리 내일 대치동 가? 하고 묻기에 올해는 안 가 했더니 보통 때 같으면 나 안 가고 집에 있으면 안 돼? 하고 물었을 작은 애가 왜 안 가? 하고 묻는다. 큰 집 갈 일을 챙기던 녀석들이 모두 그믐날 밤 늦도록 밖에 있거나 새벽에 돌아와 시간 모르고 잔다. 설날 아침, 늘 차로 가득하던 창 밖의 길이 텅 비었다. 어제 저녁 설겆이한 그릇들을 소리 나지 않게 조용 조용 정리하고 이런 저런 널린 것들을 치우면서, 그래도 모셨어야 애들이 어제 밤 나가지 않고 설날처럼 하루를 시작했을라나 싶기도 하고, 어른은 존재하는 것으로 중심이 서는 거구나 싶고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어제 불려놓은 고사리는 아직도 딱딱하다. 제주도 고사리다. 작년 4월 제주도 올레길, 할머니 앉아 있던 집, 마당에 펼쳐 놓은 망, 그 위에 손 끝을 오그리고 햇빛에 바람에 마르던 고사리. 부드럽게 습하고 조용히 어둡던 제주 대학 숲이 떠오른다. 습기 찬 낙엽 사이로 드믄 드믄 올라오던 새 순도 떠오른다. 여기까지 오기 전 바람과 햇빛과 그 할머니 손을 얼마나 탔을까. 고사리 불린 물에서 그것이 떠나온 숲 속 습기와 흙의 향기를 맏는다. 고사리 연한 손 끝이 새 봄을 기다리며 흙 사이 여기저기 밀고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을거다. 고사리를 무치고 시금치를 무치고 참기름 냄새를 즐기는데 올케가 전화를 했다. 간단히 저녁이나 먹자기에 편히 쉬라 했다가 가겠다고 했다. 뒤로 철수 데리고 오라고 해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막힌 길을 뚫고 도착하니 저녁 식탁이 이미 차려져 있고 그 집 예비 며느리가 와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밥 푸고 나르기 시작한다. 좀 일찍 왔어야 했는데... 내가 연초에 보낸 와인이 나와 있었다. 이미 끝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마시려고 안 땄구나 싶다. 어려운 일을 겪은 조카에게는 안정을, 봄에 결혼할 조카에게는 행복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발전을 그리고 모두에게 건강을 빌며 새해 건배!
어른들이 조카들에게 길게 물으면 조카는 짧게 답한다. 저녁을 끝내고 아이들은 상에서 물러난다. 와인 한 병을 마저 따고 다시 건배. 어릴 때 함께 놀며 뒹굴었던 사촌들도 머리가 크고 나니 이야기 꺼리가 떨어지는지 한 놈은 들어가 자고 한 놈은 약혼자와 놀고 한 놈은 소파에서 졸고 한 놈은 아이폰과 놀고 있다. 철수와 그 집 강아지가 쫓아 다니며 논다. 시누는 올케의 주름과 혈압을 걱정하고 올케는 시누에게 뭐든 싸주려 한다. 예비 부부가 세배하겠다고 한다. 설날 밤 열시, 조카들의 세배를 받는다. 둘을 앞에 앉혀놓고 보니 참 예쁘다. 아이들도 세배를 했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고맙다고 했을 때 웃던 표정이 내 말이 길어지려는 듯하니 하품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알았어 그만 할 께. 니들 사랑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