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저녁 먹고 돌아서니 오빠 생일이다.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다섯시 저녁 시간이 좀 이르다 싶었지만 식당에 도착하니 나이 많은 순으로(?) 도착한 듯 룸은 안쪽부터 채워져 있었다. 내가 온 뒤로 동생 내외가 왔고 그 뒤 조카들이 왔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온다. 이거슨 진리다. 젊어 활동이 왕성하던 때, 친구들 모임 시간이 7시면, 시간에 맞추는 친구들 반, 늦겠다거나 2차에 합류하겠다거나 하는 친구들 반이었다. 그 친구들이 이제는 6시로 시간을 당겼다.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동생은 형들과 술마시는 테이블에 가 앉았고 나는 안쪽으로 들어오라는 걸 마다하고 룸 입구 조카들 사이에 앉았다. 취업하고 입학하는 조카들 이야기에 덕담과 코치(?)를 하며 여자 동서들은 아이들 진급, 결혼, 취업이야기를 하였다. 주제가 같아도 해마다 주인공도 사연도 바뀌니 이야기는 계속된다. 듣고 있으니 인생은 선택과 선택됨, 선택을 충실한 것으로 만드는 작업의 연속인 것 같다. 남자 형제들의 레파토리는 건강 이야기, 공치는 이야기, 언제가 한 번 이상 들은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 멀리 앉은 조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식사가 끝나가고 이야기가 느슨해 지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자리를 바꿔가며 멀리 앉아있던 가족과 대화를 나눈다. 저녁 자리에 오지 않은 조카들 안부를 묻고 케익을 잘라 돌리고 어제 오늘 일상 이야기 하고 농담 나누고 조카들은 둘이 셋이 얼굴을 모으고 셀카를 찍는다.
안쪽 테이블의 형제들은 자리를 지키며 마셨다. 술 오른 형제들의 목소리는 커져갔고 화제는 가족사 한국사를 넘어 지구를 돌고 퍼졌다. 625때 한국군 병력 이야기에서 대동아전쟁(태평양 전쟁을 이렇게 부르다니...)으로 세계 대전으로 쳐칠, 후르시쵸프, 미국놈들, 일본놈들, 중국놈들이 불려나왔다. 오늘과 미래의 한국 정치 경제와 우리들의 삶...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하루 하루를 채우기 바쁜 조카들의 관심 레이다에 잡히지 않는 지난 이야기. 일년에 한 번 정초에 모인 식구들을 겉도는 이야기. 사내애들 모이면 빗자루 옆으로 잡고 두두두두 총놀이 하듯 남자들에게는 군대, 전쟁이야기 즐기는 DNA가 있는지. 나이들면 옛날 이야기 즐기는 DNA가 왕성해 지는지. 전쟁을 겪었고 군사정권 아래 군대식 사회를 살았기 때문인지.
형제들 화제에 일상은 생략되었고 시각은 과거 언젠가 형성된 방향과 각도에 머믈러 있다. 역사 펼치고 큰 지도 펼쳐 중심 잡고 좌표 읽는 것이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까운 관계에 잔손길 보내는 것은 아내 몫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앞으로 나란히!!! 서서 추상적이고 권위적인 훈화 받던 교육이 몸에 밴 세대이기 때문인가.
독서실에서 잠깐 나와 급히 저녁만 먹고 먼저 간 막내, 再修끝에 취업한 조카, 간신히 취업돼 백수를 면하게 된 조카, 신혼 집 값을 걱정하는 조카들이 걸어 들어 가는 미래, 그 윗세대가 보고있는 과거, 그 사이에 낀 나, 세대 사이 뭔가 막연히 막힌 듯, 먼 듯, 끊어진 듯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