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0 23:23
아버지는 경기도 고양의 선산에 누워계신다.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그 윗분들도
거기 계시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선산은 토지개발공사에 수용되었다. 토지개발공사는 삼송리 지나 고양 원흥 일대에 대규모로 아파트를 짓는단다.
동네에 있었던 집들은 멸실되었고 옛 길만 흐리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건설예정지 도로를 따라 공사터를 알리는 담이 세워지고 그 담에 수많은 건설회사들의 광고가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다.
어머니는 쇠약해져서 모기와 날벌레 많은 산을 다녀오가는게 무리이기도 했지만 치매가 와서 성묘할 수 없었다. 이번 추석은 그곳에서의 마지막 성묘라서 어머니 모시고 형제,며느리, 조카들이 모두 모였다. 어머니는 96세이다.
어머니는 우리 6남매중 첫째, 둘째아들은 뚜렷이 기억하고 알아보지만 그 아래아래 네 자식의 순서는 한참을 생각해야한다. 당신 아들 "셋째가 이름이 뭐지?"라든가 막내보고 "네가 몇째냐"라고 묻는다든가 다섯째인 고명 딸을 한참 뉘신가..... 하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아, 너로구나" 한다. 어머니는 조카들의 결혼 전, 입대 전 시절만을 기억하고 있어서, "아무개는 결혼 했느냐, 아무개는 군대 갔다왔느냐고" 몇 번이고 묻는다. "걔"걔 장가갔어요, 걔는 제대했구요"하고 대답하면 처음 들은듯이 "어이쿠 벌써 제대했구나"한다. 10분 지나면지나면 다시 아무개는 장가갔냐고 처음 묻듯 묻는다. 해가 져 하늘이 어슴프레 어두워지면 "새벽인데 왜 이리 일찍 일어냤냐"고 한다. 조금 전에 숫가락 놓은 식사가 아침 식사인지 저녁식사인지 모르기도 한다. 어머니에게는 시간을 인지하는 감각이 손상되었거나 기능하다 말다 하는 듯하다.
식사 사이클과는 별개로 작동하는 시간감각이 있다. 손녀딸의 귀가 시간에 관해서인데, 해 저물면 애가 언제 오느냐고 묻기 시작하고 깜깜해지면 애 빨리 불러들이라고 재촉한다.
정작 손녀딸이 돌아와 인사하고 제 방에 조용히 있으면 아무개는 아직 안왔니하고 몇번이고 묻는다.
햋빛이 아름다웠던 추석 다음 날, 어머니는 우리 집 거실에 앉아 조용히 밖를 바라보더니,
"이 집이 전에 내가 살던 그 집이지?... 그 집이 해가 좋아...." 한다. 놀러 온 딸네 집인데, 어머니 기억속의 햋빛좋고 조용한 집은 어느 집인지.
어머니의 과거 시간중의 어떤 부분은 큰 뭉텅이로 턱턱 잘려나갔고 오늘 느낌과과 비슷한 과거의 어떤 시간은 갑자기 오늘이 되어 펼쳐지는가 보다.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앞에서 차례를 지내고, 할아버지 산소로 내려왔다. 등 넓은 조카가 어머니를 업었다.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시아버지에게 차도 절도 올리지 않고 앉아있던 어머니가 할머니 (어머니의 시어머니)순서가 되자 뜻밖에 당신이 상에 밥(메)을 올리겠다고 하였다.
이 일은 내가 해야하는 일이라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엊그제 꿈에 니들 할머니가 떡이 딱딱하니 내게는 밥을 올려다구 그랬어" 라고 했다.
맏며느리였던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호된 시집을 살았다. 어머니는 얼굴이 예쁘고 솜씨가 좋았다. 아들 셋을 둔 할머니는 작은 어머니들 보는데서 맏며느리를 구박하고 고생시켰다. 모시옷을 풀을 메겨 잘 다듬어 놓으면 할머니는 사소한 트집을 잡아 모시옷을 물에 던졌다. 제사가 많고 살림이 크고 손님이 많은 집이었는데, 어머니가 많이 당해내야했다. 키작고 체구 작은 어머니가 어찌 해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사람좋은 아랫동서(내게는 작은 엄마)와 남친의 이데올로기따라 월북한, 경기고녀 나온 똑똑하고 따뜻한 시누이(내게는 고모)를 의지하여 살았다고 했다. 힐머니는 세 아들에게 불공평하였고 며느리에게는 더 불공평하였다.
어머니는 이번이 마지막 성묘인 줄 모른다.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가 산소의 마지막 모습 보고, 차례드리면되지 이장건은 몰라도된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치매앓는 어머니에게 이장예정을 알리지않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마지막인걸 느낀걸까.
나와 조카의 부축을 받아 어머니는 상석에 음식을 올렸다. 어머니는 여늬때 하던대로 절을 하는듯 흐느꼈다. " 어머니 저 왔습니다. 저 오라고 하셨지요.... 어머니 떡 싫다해서 잣죽 쒀 왔어요, 맛있는거니 많이 드세요.....으으으" 하더니 눈물이 쏟아진다. 어머니 사시던 때 생각하니 눈물이 나네요....엉엉엉...,나네요....엉엉엉..., 어머니, 많이 드시고 저 괴롭히지 마세요. 어머니 이제 꿈에 오지 마세요, 괴롭습니다. 어머니 제가 엉엉....엉엉...한숨...어머니, 제가 이렇게 가시고 나니 엉엉....어머니 저 괴롭습니다. 고만 오세요....엉엉...."
나는 어머니를 등 뒤에서 안았다. 어머니의 작은 몸에서 나오는 떨림이 그대로 전해왔다. 서러움과 회한과 아쉬움과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과 섞인 감정이 아흔여섯살 조그많게 오그라진 몸을 통해 느껴졌다. 나도 눈물이 났다.
"어머니,저 또 찿아오겠습니다. 어머니 이렇게 가시고 나니 제가 ... 으으으, 엉엉" 아이처럼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어머니는 흐느꼈다.
시어머니의 권위는 쩌렁쩌렁해서 마주보기는 커녕 소심한 표현도 못하던 시절을 산 어머니. 큰 집안의 무거운 일을 감당하고 자식 여섯을 대학까지 다 가르치고 남편을 20년 전에 보내고 이제 치매걸려 기억은 가을 낙엽처럼 부스러져 먼지로 사라지는데, 어머니의 뚤뚤 말려 누렇게 뜬 시간의시간의 구석에 시어머니는 아직도 권력자로 살아있어 괴롭고 서럽게 하고있다.
이제 꿈에 나타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우는 말라빠진 96세 노인네.
할머니 가신지 30년이 넘었는데, 평생을 괴롭힌 시어머니에게 아직도 당신이 상을 차려올려야한다는 어머니. "어머니 사시던 때를 생각하니" 당신이 서러워 울면서 차례를 올리다니.
어머니 살았던 긴 세월의 기억이 뭉텅뭉텅 사라지고 정신의 집도 비어가는데 할머니와의 관계는 화석이 되어 어머니 살속에 배어있다. 어머니가 다음 생으로 옮겨갈 때 이 돌을 안고가지 않기를. 사라지는 다른 기억들처럼 이이 돌이 남긴 상처도 흔적없이 사라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