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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후마니타스 책다방

사고 싶은 책이 생겼을 때 어디서 살까 하는 호사스런 고민을 한다. 서점에 가서 들추어 보는 재미, 책을 고르고 읽는 사람들 보는 재미, 다른 거 살 때는 못느끼는, 계산할 때 뿌듯한 기분을 택할까, 쫌 싼데, 나가지 말고 인터넷에서 살까...

미국 가면 들르던 반스&노블스, 보더스는 멋졌다. 낮선 책을 구경하고 음악을 골라 듣고 음반을 사오곤 했다. 편한 의자와 카페가 있는 보더스는 출장 기간 중 주말에 시간 때우기도 좋았다. 온두라스의 테구시갈파는 가난한 수도인데, 한복판 금쪽같을 위치에 서점이 있다. 식민지 시절, 지위 높은 사람이 살던 집인가 싶다. 스페인 풍의 단층 건물이 서점이고 연결된 공간과 정원은 카페이다.  그런 서점과 시민들이 있는 도시는 격조(?)를 느끼게 했다. 책방이 상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사업이고 문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마존 등과 경쟁해야 하고  mp3의 시대를 지나 아이폰과  전자책 시대, 오프라인 종이책 장사가 어려운 건 불문가지. 얼마전, 보더스가 이백여개 점포 문을 닫는다는 기사가 있었다. 

홍대 부근에 있던 전통적인(?) 서점들은 몇 년 전에 사라졌다. 디자인 책과 잡지 중고를 파는 서점도 - 반디서점인가 - 매장 크기를 줄인 듯하다.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웠던 미술, 디자인 책 중심 서점 아티누스. 한 켠이 카페였고 윗층은 갤러리였던 그 자리는 몇년 전 나이트 클럽인가...로 바뀌었다. 즐겨 가던 곳인데, 건물째 없어진 걸 보고 상심했다. 서교동, 상수동 골목을 지나다 보면  요즘 책 거래보다 책 나눠읽기에 중심을 둔 북카페들이 드믄 드믄 보인다. 이건 자연적  발생이다. 사람들이 책과 공간을 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합정역 쪽에 후마니타스 출판사가 하는 책다방이 있다. 파는 책도 있고 비치된 책도 있다. 가는 길 꽃집 마당. 꽃이 한창이다. 오늘 내가 운이 좋구나.


카페 입구 벤치에서 젊은 여성 둘이 담배피며 책을 읽고 있다. 분위기가 편안하기 짝이없다. 카페 안에는 혼자 또는 둘이 앉아 책을 보는 사람, 컴터로 작업하는 사람,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사람...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다. 책에 몰입하고 책이 이끄는 세계로 여행을 즐기고 자신을 향하는 눈빛이 아름답다. 나는 서울 한복판에 사니 책을 인터넷 대신 서점에서 사는 걸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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