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애가 Black Swan을 보여주었다.
주인공 니나(나탈리 포트만)만 보면, 강박에서 자유로움으로, 소녀에서 여인으로, 엄마에게 복속된 어떤 것에서 독립으로 가는 시간 속에 거쳐야 하는 고통스런 탈각과정에 대한 이야기.
다른 등장 인물들, 예를 들어 베쓰(위노나 라이더)는 무대 위 1인자가 되겠다는 목표와 성취한 것에 존재 전체를 던지고 무대 위의 role에 자신을 100% 투사한다. (인생에서 몇 번이고 마주하게 되는) 상실과 맞서지 못하고 무대 위 역할의 상실을 존재 전체의 상실로 받아들이고 자학하고 가해한다. 그녀의 비극의 이유이다. 베티에게서 나르시스트의 몇가지 전형성을 본다. 자신이 중심이고, 모든 동경과 찬탄의 시선은 자신에게 향하여야 하며, 그것은 당연하고, 주변 사람들을 경쟁자이거나 가해자로 인식한다. 그녀는 자신을 무의식 깊이 사랑하기에 발레단장 토마스(벵샹 카셀)과의 사랑(또는 관계)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는 권력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토마스와 니나와의 관계를 베티는 자신의 무대 위 1인자 자리를 받쳐주던 벵샹 카셀을 빼앗아 가기 위한 유혹과 거래로 해석한다. 나르시스트인 그녀는 니나와 토마스 사이를 사랑, 성장(사실 여부는 따로 놓고)이 아닌 자신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권력과 배타성으로 해석하는 불구 성향을 안고 있다.
니나의 엄마 경우, 니나는 모정의 대상이면서 자신의 욕구 투사의 대상이다. 니나에 대한 집착은 니나가 자신이 쳐놓은 울타리 밖으로 빠져나갔을 때 집착 대상의 공백으로 엄마를 고통스럽게 한다. 과도한 반응-히스테리를 보인다. 니나의 엄마는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발레리나로서의 성공을 니나에게 투사하고 현재의 자신을 니나에게 몰입한다.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니나에게서 투사와 몰입의 댓가를 바란다. 그것은 니나의 성공이기도 하면서 배타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하는 아기로 존재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대체 존재이며 투사 대상인 니나를 공주님이라며 모녀에게 환상을 조성한다. 굴곡진 모성은 니나의 유아적 의존성을 유지시키며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니나의 리비도를 억제한다. 그것은 니나 존재가 엄마에게 예속됨을 결과하고 엄마를 니나의 미래에 예속 시킨다. 모두 다 강박 속의 현재를 산다.
나탈리 포트만의 니나의 심리에 대한 이해, 내면의 양면성, 파괴성을 보여주는 연기, 춤이 놀랍다. 발레 단장 벵상 카셀은 화면을 멋지게 휘어 잡는다. 그 인물의 매력은 복합적이다. 춤에 대한 예리한 눈, 힘, 실력, 주인공을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권력을 냉정하게 행사한다. 리비도의 해제를 유도하며 탈각을 거친 새로운 탄생을 소멸시키기도 하는, 발레리나 삶의 사이클을 결정하는 무대 위 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니나와 토마스의 대사.
Nina : I wanted to be perfect.
Thomas : Perfection is not just about control. It is also about letting go.
이 대사를 들으니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아센바흐가 추구하던 정신, 순결, 완결성이 떠오른다. 그것에 치우치면서 삶에 중요한 무엇을 缺해 왔는지 깨달으면서 죽음을 맞이하던 것과 니나가 강박을 깨고 性을 열고 벵상이 말하던 Perfection을 이룸과 동시에 죽음을 맞는 점이 겹쳐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