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살아왔던 역사에 비하여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건축물을 많지 않다.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 뭐하지만, 19세기 프랑스 지배하에 프랑스풍으로 지어진 몇 건물들과 미국과의 전쟁 20여년 동안 시민들이 전쟁과 피난 목적으로 구축한 땅굴 등이 있을 뿐이다. 공산당 1당의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한 (미국과의 교역을 시작한) 지난 10여년간 지은 물적 결과가 훨씬 많아 보인다. 볼거리는 아마도 그런 정치와 지배의 결과물보다 오래동안 지켜온 그곳 사람들의 먹고 마시고 아이들 키우고 하는 일상적 삶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경제적 성장은 속도가 붙었고 앞으로 이루어낼 물적 구축도 가속될 것이다. 그런 것들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과거와 다른 물적 욕구와 성취를 몰아갈 것이고 그것은 또 새로운 사고와 행동 방식을 유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씬하고 모던하고 세련된 현대적 빌딩이 척척 올라가는 호치민 골목 골목은 여전히 낮은 탁자에 쌀국수를 먹고 베트남식 연유커피를 즐기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느른한 오후 장기판을 가운데 두고 팽팽한 시간을 보내는 어른들 모습도 여전하고.
호치민에서 나를 픽업하러 나온 후배는 역사적 건물에 묶어보라며 콘티넨탈호텔을 잡았다한다. 시내 한 복판, 오페라 극장 바로 옆. 1880년에 지어진 크래식한 외관. 들어서니 오래된 로비의 가구와 어두운 조명이 십년 전 렉스 호텔의 하룻밤을 떠올리게 한다. 정원(이었을)을 내려보며 북쪽으로 열린 긴 회랑의 남측에 방이 이어진다. 천장이 시원스레 높다. 방 문을 열자 오래 된 방에서 오래 된 냄새가 났다. 어쩔~...에라이, 하루밤이다. 뭐 조금 있으면 코가 마비 될테지...창문틀, 문고리, 잠금 부속은 지어졌을 때의 오리지날로 보인다. 벽장, 욕실은 시간에 닳는대로 교체되고 수리되었다. 남쪽으로 문을 열면 테라스가 나오고 오페라 하우스의 옆면이 보인다. 호텔과 오페라 하우스 사이 작은 정원의 분수대에는 관광객에게 기념품을 파는 초라한 사람들이 걸터 앉아 있다. 식민지 시절 베란다에 나와 난간을 잡고 내려다 보면 어떤 사람들이 있었을까.
통일궁인가 인민위원회 건물인가 앞에 호치민 좌상이 있다.
(웹에서 빌린 사진)
호치민 우측에 렉스호텔이 있다. 세종대왕 우측에 있는 세종문화 회관 자리에 해당한다. 의미로 위치로 최고의 자리다.
십 몇년전 미국이 베트남에게 금수 조치를 해제할 계획이 떴을 때 베트남 상황조사차 첫 출장을 갔다.
이런 저런 경로로 소개 받은 베트남 사업가는 렉스호텔에 방을 잡아 주었다. 그는 이곳이 최고 호텔로 베트남 전통 스타일이고, 전쟁 기간동안 호텔은 서방 기자들과 지식인의 활동 무대였으며 미국이 호치민에서 철수하는 미국인을 태운 마지막 헬리콥터가 이곳에서 떴다고 했다. 내 머리 속에는 영화 장면이 막 떠올랐고 어쩐지 철없이 로맨틱해지는 기분이기도 하고...역사를 겪은 장소에서 묵는 기대가 컸다.
치장 없이 넓은 로비를 걸어 체크인 카운터에 가니 잘 못 들어왔나 싶었다. 카운터 뒤 벽에 커다란 박제된 거북이가 걸려있었다. 학(두루미?) 두 마리를 수 놓은 대형 액자가 쌍으로 걸려있었고 다른 장수생 동물도 박제나 액자로 짝 맞추어 걸려있었던 듯 하다. 카운터 오른 쪽으로 큰 홀을 지나 객실로 가는데 홀을 투숙객 통행로와 나누기 위한 화분이 길게 놓여 있었다. 불은 통행로만 비추고 있었다. 한 사내가 호수물을 뿌려가며 어두운 바닥을 솔로 닦고 있었다. 어둠 속에 식물이 푸르고 건강해 보여 만져보니 프라스틱 트리...잘 못 들어온 게 확실하다. 그러나 어쩌리...
방은 담배 냄새에 찌들어 있었다. 대나무를 엮어 짠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 팔각성냥. 그 옆에 찌든 금속 재떨이. 탁자에는 담배불에 지져진 흔적들. 타일이 떨어져 나간 화장실. 욕조의 타일은 떨어져 나갈 때마다 입수 가능한 타일로 때워서 여러가지 색이 섞여있었다. 실크아닌 폴리에스타 카바가 번쩍이며 침대를 덮고 있었는데, 혹시 목면 시트가 있을까 해서 열어본 벽장에는 붉은 색, 남색의 포리에스타 가운이 한장씩.... 가운의 등에는 용이나 학 무늬가 수놓아 있지 않았던가... 다음 날 건너편 프랑스계 호텔로 옮겼는데, 까다롭지 않다고 생각해 왔던 내가 그제사 후각시각 압박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었다.
최고의 위치에 멋진 외양과 덩치의, 아마도 정부 소유, 운영이었을 호텔이 피폐하였던 것은 그 때까지의 베트남이 처해있던 경제적 궁핍의 증거다. 이번에 보니 그 건물에는 샤넬, 버버리, 클로에 cloe인가 로에베 loewe인가가 들어서 있었다. 호치민 좌측 건물은 리모델링중. 부근이 모두 상업 건물화 되고 있으니 아마도 공사가 끝나면 그곳에도 샤넬 버금가는 상품점이 들어 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자 평생을 반식민 사회주의 운동으로 보낸 호치민이 그가 앉은 자리에서 좌비똥 우샤넬하고 있는 조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19세기 후반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던 베트남이 1945년 호치민의 영도로 프랑스로 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1954년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식민지배를 종결시켰다. 독립과 민족주의 운동의 정신적 정치적 리더였던 호치민은 지금 앉은 자리에서 역사는 되풀이 된다 하고 있을까. 지구상에 자본의 식민지는 피할 수 없고 피폐한 민족주의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민중의 삶을 기름지게 한다고 남북 통일이후의 닫고 살았던 시간을 되짚어 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