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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카페 전쟁 빵집 전쟁

2010/11/18 14:01

서교동, 동교동, 상수동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오래된 나무가 무성한 정원 넓은 아름다운 주택이 많았다. 휴일 오전에 한적한 골목을 걸으면 나무에 깃든 새의 명랑한 노래에 저절로 행복해지는 동네였다. 몇 년 사이 주택이 헐린 자리에 키작은 빌딩이 서고 정원은 시멘트 바닥의 주차장으로 바뀌었고 새소리는 귀해졌다. 시간이 가면 변하게 마련이나,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속도면 좋겠다.

몇 년 사이 많은 주택이 카페,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예쁜 카페 옆에 별벅스, 그 옆에 무명 카페, 돌아서면 홀리스커피...유동인구보다 빨리 늘어난 카페는 몇 달 만에 주인, 간판, 인테리어가 바뀌었다. 들여다 보면 주인 혼자 노트북과 놀고 있다.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카페장사가 내가 보기에는 카페 전쟁이다. 취업 힘들고 직장에 메인 삶이 싫은 젊은이들이 카페 전쟁터로 몰린 건가.

홍대에서 산울림 극장 쪽으로 가는 길에 있던 단골 타르트 집이 없어졌다. 친구들과 들르곤 했는데 모두들 맛있다고 했다. 그 집에서 구운 예쁜 과일 타르트나 케익에 커피 한 잔이 오천원이니 다른 카페보다 값도 싼데, 손님은 그다지 없었다. 이름 없어 안오나? 어느 날 가보니 그 자리에 영철 버거가 들어온다는 프랭카드가 걸렸고 뒤늦은 우편물들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아쉽다. 정말 없어진 건가 하는 마음에 몇 번 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다른 집을 기웃거렸다. 찍어낸 듯 같은 분위기의 커피 케익 체인점 투썸뭐시기는 뭐보다 재벌이 골목까지 들어와 빵장사 하는 뻔뻔함이 싫다. 페인트로 유럽 낡은 시골집 흉내를 내고 프라스틱 아이비를 늘어놓은 카페뭐네의 취미는 저렴하다. 그런 곳을 지나 오래되어 마당이 멋진 주택을 개조한 케익집을 골라 앉았다. 이 집도 직접 케익을 만든다. 맛있다. 그런데 가격이 컥!이다. 왜 이리 비싸지...

큰 애가 몇 년 단골로 다니던 동네 밥 집이 없어졌다. 헬쓰클럽에서 운동하고 혼자 밥 먹기 딱 좋다고 했다. 초등학생 상대 문방구, 헌 책방에서 부동산으로 바뀐 점포가 나란히 있는 조그만 이층 건물에 아주머니 혼자하던 분식집 수준의 식당이니 특별할 아무것도 없다. 동네 학생들을 상대로 했는데, 값을 올리지도 못하고 학생들도 안왔던가 보다. 그 자리는 고기집으로 바뀌었다. 그런 말 하지 않던 녀석이 거기 없어져서 괜히 맘이 쓸쓸해.... 한다.

그 자리에서 몇 분 걸으면 되는 사거리에 있던 고기집이 문 닫고 며칠 지났는데, 밖에 뚜레뭐시기 카밍 순이라고 광고막이 둘러쳐 있다. 맞은편에 있는 슈퍼마켓 안에 냉장 진열대 하나에 3층 선반 뿐인 초라한 빵집이 있다. 남편이 굽고 아내가 포장, 계산하는데, 맛도 모양도 센스도 좀 아쉽다. 손님이 고르고 빵 들고 카운터로 가도록 손님은 쳐다보지 않고 비닐 봉투 빼들고 빵만 본다. 늘 봉투 필요없다고 시장 가방에 빵 담아온지 일년 넘었으니 나를 알아 볼 만 한데 인사없이 얼맙니다 소리만 한다. 빵 몇 개 담고 슈크림 (천원에 3개) 삼천원어치 주세요 하며 만원 내면 일 이천원 거슬러 받는 거래인데 슈크림 딱 9개만 담는다. 빤한 살림이라 개평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저 인심으로 동네서 어쩔라나 싶긴 했다. 엊그제 빵 값을 건네는데 아내가 납작한 쿠키를 준다. 맛 좀 보시라고요... 처음 있는 일이다. 어제는 빵 값 내면서 슈크림 사천원어치 담아달라 했는데 봉투에 몇 개 더보인다. 슈크림 많이 담았네요....했더니 아내가 저녁이라 몇개 더 드렸어요 한다. 그 부부의 긴장이 느껴진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동네 빵집 몇이 문 닫았다. 신석초등학교 근처, 시식하라고 여러가지 빵 잘라놓고 곰보빵 덤으로 주던 부부가 하던 오래된 빵집은 맛도 인심도 좋았는데 진작에 문 닫았고, 아파트 상가에서 총각 혼자 굽고 팔던 조그만 빵집은 오래 하지도 못했다. 알바도 쓸 수 없이 작은 사업이라 총각은 밀가루 묻은 손으로 빵을 싸주었고 자리를 비우면 빵값 모르는 어머니가 잠깐 잠깐 가게를 지켰다. 아파트와 가까운 지하철역 사거리에 빠리바께스가 생기면서 총각베이커리는 문을 닫았다. 아이싱 솜씨는 어설펐지만 케익속은 부드럽기가 최고였는데. 뚜레뭐시기나 빠리바께스는 새 점포 낼 때 기존 빵집과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몇 달안에 고사시킬 수 있다고 계산을 하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싶다.

횡단 보도 건너면서 보니 뚜레뭐시기는 가림막 반 쯤 열린 속에 불 켜놓고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슈퍼마켓 한 구석에서 앉지도 못하고 아침부터 밤 열시 반까지 일하던 이름없는 빵집 가족이 어찌 될 지 모르겠다. 모자라는대로 힘껏 일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기 바라는데. 이미 사상자 많이 낸 빵집 전쟁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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