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30 03:37
머리도 몸도 번잡한 열흘이었다.
제주도에서 그날 낚은 검은돔으로 매운탕 끊였다는 후배 집에 일요일 저녁에 모였다. 여러 지방産 막걸리 맛을 즐기다 자정을 넘겼다. 이야기거리는 다 떨어졌는데 청춘인듯 헤어지기 싫어한다. 다른 후배 사무실로 옮겨 나는 졸고 후배들은 새벽까지 마셨다. 비 온후 나무잎 뒹구는 사람 없는 밤 길에 바람 맞으며 택시 잡으려니 기분은 젊은 듯 했지만 집에 와서 시체가 되었다.
화요일 저녁 약속을 위해 몸이 깨어날 때 쯤, 연평도 포격. 목숨을 잃고 집은 부서졌고 사람들은 섬을 떠났다. 포 몇 문, 레이다는 먹통이었다. 도발 이전의 사실에 대한 기사나 분석 없이 모든 기사는 똑같은 소리와 장면을 반복했다. 친구들은 연변식 양고기 꼬치구이 집에서 중국산 쎈 술를 마시고 테레비로 연평도 포격 장면을 본다. 청와대의 대포폰과 불법 사찰도 몇 조 짜리 은행의 급한 거래도 현대차가 "법대로"하지 않아 비정규직은 단전 단수 허기 속 고통의 농성을 벌이고 매질에 살이 터져 나가는 어지러운 뉴스를 덮는 포격. 친구 하나는 참 타이밍 죽이다....고 했고 다른 친구 하나는 하필이면 이런 때에... 쩝 한숨을 쉰다. 그러나 더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한꺼풀 더 들어가면 메이져 매체가 배포한 기사를 믿는 친구와 진실을 의심하는 친구는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것을 확인할 뿐이다. 뷰스엔뉴스가 북 포격 전 우리군이 3600여발 사격훈련을 하였다는 국방부 내부 보고서를 확인하여 기사를 올렸으나 묻히고 말았다. 이미 확인된 사고의 확률만큼 저쪽에 의도하지 않았던 가격이 있었을까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의심의 소리는 낼 수 없다.
청와대는 대응 기조를 오전, 오후마다 바꿨다. 국방부 장관은 그 와중에 잘렸다. 파주에서 사정거리 20KM 포가 오발하였고 다행히14KM 거리의 DMZ에 떨어졌다. 제대로 작동하였다면....등골이 오싹한다. 전쟁 날까봐 불안한가? 그보다는 시스템 오류가 불안하고 명령체계가 불안하고 청와대의 전략 없음이 불안하고 사인(sign)이 혼란한 게 불안하다. 대화가 막히고 채널이 없는 것이 불안하다. 적대적 강력 대응, 응징만이 방법이라니 상황이 확대되면 어떻게 당해낼 것인가. 終戰이 그랬듯이 국지전과 확전이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불가해한 북측과 미국 경제의 돌파구로 전쟁터를 찾는 미국의 의중에 달려있는 상황이 불안하다.
전날 배추 쌈을 먹어댄 속이 부대끼는데 목요일 후배들과 함께 걱정하려고 모였다. 벽걸이 테레비는 포격 장면을 보여주다가 아시안게임에서 이연경이 아름답고 날랜 모습으로 100메타 허들을 뛰어넘어 간발의 차이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식당 안에 우려가 기쁨으로 몇 번이고 바뀐다. 몇은 가고 몇은 한 때 잘 나가던 나이 든 가수가 기타치며 노래하는 곳으로 갔다. 손님은 우리 너댓 뿐. 오래 된 유행가 몇 곡 따라 부르고 노래 잘하는 후배 노래 한곡 듣고 나는 먼저 나왔다. 포격, 금메달, 환호, 구태의연한, 거꾸로 가는 이것 저것. 다 섞였다. 밤이 깊어 서교동 주택가는 조용하고 날은 손이 시리게 춥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집까지 걷기로 했다. 엉킨 속이 조금 가라앉는다.
그래도 김장을 했다. 늘 올케가 뭘 주는데, 나도 이번에는 내가 만든 거 줄 수 있다. 더덕 장아찌 항아리, 포도 두 상자, 이것 저것 나눌 거 담고 은행에서 봉투 준비했다. 그녀는 내 작은 김치통을 보고 택도 없다고 웃는다. 60키로 절인 배추를 버무려 놓으니 아닌게 아니라 그 집 김치냉장고도 넘친다. 김치속과 굴 머무려 절인 배추에 쌈! 내게는 이거 이상 가는 귀한 음식이 없다. 일년에 한 번, 날 춥고 꽁무니 시리고 손 얼어가며 김장 버무리는 날! 그날만 먹을 수 있는 거다. 내년에는 우리 집에서 준비해 볼까.
결국 김치 냉장고를 샀다. 음식이 몰리는 명절 때나 김치통이 자리 차지하고 냉장고에 빈 자리 없을 때마다 김치 냉장고를 살까 했지만 냉장고에 뭐 남은 줄 모르다가 오래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았고 많이 쟁이고 전기 돌리고 하는게 편리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양문 냉장고 하나로 살았는데, 이번에는 별 방법이 없다. 아침에 그녀가 전화를 했다. 몸살나지 않았는지, 어제 밤에 냉장고 주문했는지. 샀어요. 탈수세탁되는 대걸레도 샀고요, 뜨거운 물 담는 유담뿌도 샀어요. 몇 개 샀으니 곧 가지고 갈게요.
포탄 떨어지고 서해에 항공모함 그득하고 서로 으르렁 견주는데 나는 김냉들이고 살림살이 산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계절은 오니 일상 머스트 고 온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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