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담

요리 요술 식당 예술

2010/11/16 03:31

작은 애가 저녁을 샀다.

몇년 전부터 한 번 가고 싶었지만 예약 손님이 많고 테이블이 적어 기회가 오지 않던 삼청동의 아따블로에 어떻게 예약이 된 모양이다. 안방 건너방에 조그만 마루가 있었을, 없었다면 옹색한 부엌이 있었을 조그만 한옥 내부를 트고 지붕을 담 끝으로 이어 낸 곳에 주방을 만든 조그만 식당이다. 테이블 대여섯개. 내부는 흰 회칠에 조그만 그림을 건 정도로 간단하다. 하얀 테이블보 위에 실버웨어 셋팅한 것이 코스가 만만찮다고 알려주는 듯하다.

 

 이곳에서는 주문을 할 필요가 없다. 주방장이 그날의 메뉴를 정해놓기 때문이다. 그가 분필로 메뉴를 적어놓은 칠판을 들고와서 첫 접시는 뭐고 중간에 뭐가 나온다고 설명한다. 프랑스 요리라 뭔지 모르지만 메뉴에서는 맛있는 소리가 났고 능숙하게 설명하는 주방장은 자신있어 보인다.

 

 한 쪽이 보이는 조그만 식당에서 무엇이 나올까 기다리며 와인을 한 모금 마시는데, 그거 괜찮네. 라벨을 보여주는데, 이름을 적고 일부러 찾기 전에는 다시 마실 방법이 없다. 한 때 마신 코르크를 모으고 이름을 외우고 했지만 다 접었다. 와인은 이렇게 우연히 만나고 멋지면 즐기고 헤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첫 접시부터 예술이다. 단호박에 크림을 탄듯 부드러운 포타주, 슈크림처럼 부드러운  치즈퍼프에 배 젤리. 그것들을 함께 담은 그릇도 맵시있다. 게살을 붉은색 비트채 사이에 올린 위에 새싹 토핑. 소스는 붉은 포도주를 조린듯하다. 소스가 맛있어 남기기 아까웠다. 달콤하고 크리미한 소스위에 살 진 새우, 샤뱃, 기가 막히게 잘 구운 스테이크와 풍미 가득한 소스, 바삭한 과자를 지붕처럼 올린 과일향 디져트. 맨 나중 커피까지, 접시마다  , , 담은 모습, 그릇의 조화가 예술이다. 좁은 부엌에서 맵시나는 요리가 계속 예쁜 그릇에 담겨 나오는 걸 보니 그 안에서 누가 요술을 부리는 가 싶다.

 

이곳 메뉴는 디너 세트만 있고 예약제이며 테이블당 한 차례 손님을 받는다 한다. 그날의 재료에 따라 또는 계절별로 메뉴는 달라지는 듯하다. 하루 한 차례, 테이블 수 6, 최대 수용인원, 인당 단가....어떻게 이런 장소에 - 삼청동 뒷골목, 좁은 한옥 - 을 털어서 프랑스 식당을 낼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주방장이 정한 디너 세트 한가지만 팔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예약으로만 손님을 받을 생각 했을까. 어떻게 저녁 한 회전만으로 꾸릴 생각을 했을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건조한 생각하는 내가 딱한데, 직업 병이다. 이런 장사 모델은 정밀한 계산을 통해 가능성과 위험을 따졌을 거다그렇다고 해도 모험이다.  정밀한 계산과 손님을 적정선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과 예약을 통한 손님과 신뢰 쌓기. 그리고 무엇보다 음식. 그 주방장의 선택은 언제나 맛있다고 믿는 팬 확보...그걸 다 모아보면 이건 예술에 가깝다.

 

평일에는 늦고 휴일에도 일로 나가는 아이와 오랜 만에 긴 시간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밥 먹으니 더할 나위없이 좋다. 가을 밤에 삼청동 가게 골목을 나와 국군병원 앞 길을 지나 멀리 떨어진 주차장까지 걸어왔다. 아이와 행복한 밤을 기념하는 사진 한 방 찍는 건데, 잊었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난 주  (0) 2011.01.03
카페 전쟁 빵집 전쟁  (0) 2010.12.30
수영 잘한다!  (0) 2010.12.30
무엇이 아침에 눈 뜨게 하는지  (0) 2010.12.29
아이들 결혼식  (0) 2010.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