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03 20:37
지난 주 蘭 하나가 조용히 꽃을 피워올렸다. 다른 분에는 얌전한 봉오리가 올라와 있었다. 카메라에 첫모습을 담았다. 이번 주, 이 소식을 들려주려고 꽃이 먼저 피었나.
친구들과 함께 망년회 중이었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 됐어!!!!! 오늘 발표 났어"
"축하한다. 수고했다, 좋다!!!!!"
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싱긋, 웃었다.
작은 애가 지망한 회사 중 하나는 채용과정이 독특하고 길다. 자기 소개서와 자필 지원서를 본인이 내사하여 접수하여야한다. 서류 심사후, 한자시험을 포함한 필기시험, 프레젼테이션/면접. 과정을 통과한 지원자들을 추려서 새벽(?)에 산에 모아 4시간 산행을 하게한다. 점심 식사후 축구시합. 그 이후 술자리 면접. 산 입구에서 오전 7시 50분에 일정을 시작하여 저녁 9시 30분에 종료하기로 되어있으나 11시 가까이 되어 끝난 듯하다. 25명을 뽑는데, 산행/야외면접자가 4배수다. 15시간 밀착 면접에 투입되는 면접관의 수가 지원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이런 경우 면접관은 함께 일할 고참, 팀장일 경우가 많다.
사람을 공들여 뽑는다 싶었다. 애쓰고 고른 사람은 아끼면서 쓰겠지. 아낀만큼 유대가 생기니 가르치고 키우겠지.... 인터넷으로 회사를 둘러보았다. 보험회사들의 재보험회사다. 나는 이 회사가 마음에 들었다.
아이는 불안하고 위축되어 공연히 나는 등산가고 그러는 회사와 문화가 안맞는다, 일이 고강도라 3년 일하면 10년 늙는대, 작년에 학교 선배, 등산하고 축구하다가 땅바닥도 기었는데 떨어졌어, 하다가 안되면 기분 나뻐... 온갖 신포도같은 이유를 댔다. 상처입지 않으려고 마음에 울타리를 치는거다. (속으로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신입사원 지원자들을 면접 하다보면 그들이 오고 싶어하는지, 다른 곳과 견주는지,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하는지 마음상태가 느껴진다. 마음이 엉거주춤하고 한 발은 딛고 한 발은 뺀 태도의 지원자는 선택하게되지 않는다. 기량보다 적극적인 마음 자세를 보게된다.
아이에게 물었다.
이 회사 가고 싶냐?
되면 좋지....그런데 내가 되겠어?
되면 좋겠으면 될 수 있도록 해라. 기량이 밀리는 건 어쩔수 없다. 그러나 적극적인 마음이 모자라 밀리지는 말아. 회사는 하고싶어하는 놈 뽑아.
이런 대화가 아이의 마음 자세를 바꾸었는지 모르겠다. 여러 회사의 면접사이에 이 회사 과정도 들어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오면 언제나 아 몰라, 못했어....안될거야 하고 방어막을 친다. 고맙게도 단계마다 붙었다.
산행, 축구시합 전 날 밤, 친구 전화에 하는 소리. ..아 무서워. 내일 가고 싶지 않아. 그냥 그만 둘까 봐.... 엉엉.
그럴거다. 엄마도 옛 날, 시험 전날 준비는 늘 부족하고 혼자서 시험을 피할 수는 없으니 내일 전쟁이 나거나, 다리라도 부러져서 학교에 안 가게 되기를 빌었거든. 면접관과 경쟁자들 사이에 생전 처음 산행이니 무섭겠지. 그래도 마주 서야지. 내일 산행하면서 느낀 거, 운동하다가 마음에 떠오르는 거를 기억해라. 이 경험이 네게 어떤어떤 의미를 주는지 헤아리고 기회에 감사해라. 감사와 각오를 표현해라.
아이는 엄마 쟘바에 엄마 등산 배낭에 엄마 등산화를 신고 새벽에 나섰다.
아이는 열두시 다 되어 들어오자 마자 엉엉 운다. 산행도 힘들었고 축구 시합도 힘들었다 한다. 축구시합에서 몸싸움이 너무 많아 위험해서 남녀 분리하여 뛰게 했다한다. (그럼 그 이전까지는 한 운동장에 섞어놓고 뛰게했단 말인가?) 안 갈꺼야 엉엉. 되어도 안 갈꺼야. 빨리, 오래 달리기 선착순하게 하고, 텐트치고 분해 하게하고.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어. 산행 끝나고 씻고 나서 나는 로션,크림만 바르는데 딴 여자애들은 완죤 플메이크업하잖아. 기집애들 지독해. 술자리서 두번 토했어. 토하고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면접관이 와서 괜찮으세요 하는데, 뭐라겠어, 아 예, 괜찮습니다.괜찮습니다. 뭐야, 술먹고 토하고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는 얼굴 했어. 엉엉엉엉
아이는 선택되기 위하여 몸이 지치도록 체력 경쟁을 겪어야 했다는 점, 타율로 술을 마셨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던 게 속상했던 모양이다. (안 마셔도 됐지만 마시니 잔이 자꾸 차더란다.) 생존(?)을 위해 타율에 따라야하는 거, 힘든 거 숨기는 거, 니들에게 처음이지. 교실에서 점수만 잘 내고 발표만 잘하면 세상을 선택할 수 있을 줄 알았니? 몸이 할 수 있는 한 다하고 성의를 다해야 하는 거야. 결과에 관계없이 깨우친게 있겠지. 엄마는 기회가 네게 온 것이 고마워.
나눠 먹으라고 넣은 귤과 과자, 물 두병등에 배낭이 무거웠는데, 산에 올라갈 때 무거우면 배낭을 넘기라고 도움을 권하던 아이가 있었다한다. 낯설고 숨찬 상황에 경쟁자에게 손을 내민 그 아이도 붙었다고 한다. 25명 뽑기로 되어있었는데 회사는 22명으로 마무리했다. 멋진 동료들과 일하게 되었으니 그 또한 행운이다.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