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요양병원에 도착하니 점심 시간이다. 엄마도 다른 할머니들 처럼 비닐 턱받이를 두르고 침대위 받침대에 식판을 놓고 숟가락을 들고 계셨다. 턱받이 하고 식사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이제는 흘리시는 모양이다. 기력이 점점 쇠해가는 게 보인다. 얼굴은 기름기도 물기도 없고 작아젔다.
오늘은 나를 금방 알아본다. 이름이 뭐지 하고 물으니 이름도 맞춘다. 엄마, 아들이 몇? 하고 물으니 몰라...하고 만다. 당신이 모른다고 대답할 경우 스스로 실망이다 하는 표정이 스친다.
토막낸 잡채, 조각 조각 발라낸 생선, 채친 김치, 조그많게 썰은 시금치, 물김치 그리고 죽. 엄마는 토막낸 당면을 젓가락으로 잡는다. 몇 가닥 잡히지 않고 다 떨어진다. 죽에는 숟가락 자국이 없다. 죽과 잡채를 조금씩 떠 드린다. 입 속에 물고 한참, 그런데 넘기지를 못한다. 물로 국물로 간신히 넘긴다. 조금씩 조금씩 떠 드렸다. 식사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누군가 거들지 않으면 드시는 게 없겠다. 도우미들은 전혀 식사할 수 없는 할머니들을 건사하고 있다. 엄마는 그 중 양호한 편이다.
가져간 티라미슈와 카스테라들 드렸다. 부드럽워 목넘기기 편하고 단 것이 필요했던지 떠 드리는대로 받으신다. 내 얼굴을 알아보고 잡채 속의 당근을 골라내시니 눈이 어둡지는 않다. 처음 그곳으로 가시던 3년 전에는 신문을 넣어달라고 했다. 신문을 받아보는 거는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요양원에서 세상 돌아가는 거 관심 유지하고 있다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거다. 막내가 나 몰래 조선일보를 한달 넣어드렸다. 엄마는 평생 그 신문만 있는 줄 안다. 그 노인네가 조선일보만 본다고 굳이 다른 신문으로 바꾸라 했던 나도 참...그렇다. (그래도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조선일보를 넣을 수 없다.)
초코렛을 봉투 째 드렸다. 이리 저리 만져보지만 봉투를 뜯지 못한다. 봉투를 뜯어 초코렛을 드렸다. 이리 저리 뒤집고 꼬아놓은 껍데기를 벗기지 못한다. 이제는 손도 머리도 써지지 않는다. 살면서 쓰라고 내려 받은 기량을 하나 하나 반납하고 계시다. 초코렛을 까서 입에 넣어 드렸다. 몇 개고 드리는대로 드신다. 과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나마라도 드시는 게 나을 듯하다. 껍데기도 못까시니 내가 가면 이것도 못드시리라. 다음에는 초코칩쿠키에 섞는 허쉬스 알갱이 초코렛을 가져가야겠다.
간호사에게 링겔을 부탁했다. 정신이 왔다 갔다 하지만 육신이 너무 앞서 기력을 잃어서는 않된다. 맞고 나면 조금 기운 나시겠지. 올케에게 전화로 보고하고 엄마 뺨을 쓰다듬고 나왔다. 이제는 뭐를 해드릴 수도 없다. 내가 이제 무언가 해드린다 해도 엄마가 기쁘고 행복해 할 수 없으니 갚는 게 아니다. 바보처럼 아무 것도 모르게 된 엄마. 그러니 갚을 수가 없다. 봄에 나들이 삼아 집에 모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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