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B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오래된 친구이다.
세 딸의 엄마인 A는 30년 동안 매일 시부모 세끼를 챙겼다. 젊어서는 남편이 벗는 양말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두 손으로 받았고 남편이 밥 시간에 누릉지 먹겠다고 하면 밥을 눌여서 끓여냈다. 아이들 건사하고 어른들 식사 챙기는 일로 몇 친구와 통화할 뿐 동창, 친구 모임에는 나가 볼 흥미도 여유도 없었다. 친구들과 만나려면 시부모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 끼니를 마련해 놓아야 했다. 친구들 얼굴 보는 빈도가 줄고 통화할 친구들도 줄었다. 30년 가까이 A의 화제는 가족이다. 큰애가 졸업했어, 둘째가 입학했어, 셋째가 감기야, 둘째가 시험을 망쳤다고 화 내... A는 자신이 아픈지, 기쁜지, 슬픈지, 뭐를 먹고 싶은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그런 말 없다. 친구가 뭐 먹을까 하면 "니들이 정해" 하거나 "난 다 잘 먹어"한다. 의견을 내지 않으니 친구들이 그녀의 속에 대해 이해랄 게 없다. 그녀는 가족 밖의 세상 일에 대해 전혀 이야기가 없다. 가족 위해 사는 시간 그녀의 속이 비어가면서 세상을 감각하는 더듬이도 닳아 버린 듯 하다.
B는 남편에게서 하루에 두 번 이상 전화를 받았다. 오전, 오후, 또는 오후에 두 어 번 하는 전화가 안 오면 그녀는 화를 냈다. 자기 남편은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 중에 자기에게 전화하는 걸로 숨쉰다고 했다. 프로야구가 한창이던 80년대, 남편이 중계방송을 들으며 퇴근해서 라디오 들고 화장실로 볼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큰 일을 마치고도 중계에 빠져 화장실에 앉아있었다고 B는 방문 닫고 울었고 그녀 남편은 사과했다. 아들 포함 세 식구는 외식하거나 배달음식을 자주 시켰다. 몸이 찌뿌등하다고 그녀가 설거지를 쌓아놓으면 남편이 치웠다. 그 집은 누구보다 일찍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았다. 그녀는 "남편 직장 후배들이 우리 남편을 목숨을 걸고 섬겨"라고 했다. 어떻게 알아? 물으니 "난 남편 직장 부부 모임에서 가까이 하는 사람 없어"라고 했다.
A는 B의 가족의 안부를 묻는다. B는 남의 안부를 묻는 경우가 없다. A가 "자주 안 나오니 마땅히 들 것도 입을 것도 없네" 하자 B는 "난 모임도 귀찮고, 헬스크럽도 끊어놓고 귀찮아 못 갔어" "남편이 그 바쁜 출장 중에 핸드백을 사왔네" 한다. A는 뭐 사왔는데? 어디서 사왔는데? 어느 헬스장인데 하며? 변두리 내용을 묻는다. A가 작은 애가 고열로 밤새 고생했다고 하면 B는 나도 어젯밤 불면증으로 잠 못 잤어 한다. A가 "큰 애가 애인하고 헤어져서 우울해" 하면 B는 "우리 아들도 사귀던 애랑 헤어졌어. 우리 남편이 그 놈은 나 안 닮은 모양이야 하더라. 그는 나 밖에 모르잖아" 한다. 작은 애가 시험을 망치고 성질 내더라는 A에게 B는 아들이 성적은 높은데 자기 목표에는 못 미친다고 답한다. 요즘 애들이 어디서 그리 밤 늦게 노는지 말도 안하고 전화도 없다고 A가 걱정하면 B는 "남편이 내게 전화를 하는 걸 봐서 그런지 우리 애도 밖에서 놀다가도 내게 전화해" 한다.
A는 통화한지 오래 되었으니 B에게 전화 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A는 B가 사는 요령이 궁금하지만 자신은 몸 건강하지 않은 친구를 챙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A가 전화하면 B는 "왜 이렇게 오랜만에 전화했어?" 라고 묻는다. B는 A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A는 어제 김치 담근 이야기, 좀 줄까 그런 이야기 하고 B는 "여기저기서 얼굴 보자고 전화 왔지만 몸이 무거워서 나가지 않았다"고 답한다. A가 " 너 걔네 들도 만나니?" 하고 물으면 B는 "걔들이 나 궁금하다고 전화하더라"고 답한다. 한참 수다 중에 B는 갑자기 "나 지금 나가야 돼" 또는 "집에 누구 오기로 했어" 또는 "애 왔어, 끊어 또 전화해" 하고 끊는다. 반드시 B가 끊고 또 전화하라고 한다.
B가 상을 당해 A는 문상을 갔다. 그 자리서 동창, 친구들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상주인 B에게 절을 마치고 테이블에 앉았다. 둘러보았으나 아는 얼굴이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 사이에 혼자 앉았기 뭐했다. A는 독상을 받고 국밥을 말았다. 국밥 그릇을 걷어가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B는 모르는 얼굴 여럿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옆 얼굴을 보이며 앉아있었다. 얼굴 마주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던 A는 저 테이블에 인사할 게 많은가 보다, 인사 끝나면 이리로 오겠지... 생각하며 기다렸다. A는 그 테이블 사람을 배웅하는 B에게 시선을 보냈다. B는 그러나 다른 테이블로 갔다. A는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기분으로 한 시간을 더 앉아있다가 조용히 일어나 나왔다.
B에게서는 아무 연락 없었고 A는 B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이년 쯤 지난 어느 날 A는 B의 전화를 받았다. 어리광 부리는 듯한 B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응, 오래간만이야아. 알려 주려고. 우리 아들 결혼 해.
A는 아무 생각 없이 색시는 누구야 하고 물었다.
B가 뭐라고 말했지만 A는 흘려 들었다. 맨 나중 한마디만 들렸다.
우리는 여섯 살 차이인데, 얘네들은 세 살 차이네. 우리의 딱 반이야.
다음 주 토요일이야. 내 결혼 기념일하고 딱 열흘 차이 나는 거지.
A는 그 전화를 B의 목소리를 듣는 마지막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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