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담

사랑은 미루면 안돼요

신호등 앞에 젊은 엄마와 서너 살 먹은 사내아이가 앞에 서있다. 엄마 손에 잡힌 아이는 가로수나 전봇대에 한 팔을 뻗고 엄마는 아이 다른 팔을 잡아 당긴다. 아이는 두리번 두리번 보고 싶은 게 많다. 궁금한 게 많을 나이의 아이를 손잡고 동네를 산책하던 때 생각이 난다. 

큰 애가 두 세살 쯤이었을 때 눈이 많이 왔던 어느 날, 아이를 두껍게 입히고 내리는 눈을 맞으며 손을 잡고 골목 골목 눈 길을 걸었다. 눈 위를 처음 걸어보는 아이는 즐거워 하며 어디 가는 거야? 라고 물었다. 우리는 산책가는 거야 라고 했다. 미끄러 질 듯 중심 잡으며 아이는 저 앞으로 뛰어 가다가 다시 되돌아 오곤 했다.

그 날이 좋았는지 아이는 나가자, 우리. 어디 가자 한다. 어디를? 하고 물으면 이름을 생각하려 애쓰다가 책산가자고~ 한다. 산책이 공원이나 학교처럼 목적지인 줄 알았던 거다. 그 이후 한동안 우리는 골목 나들이 나가는 걸를 책산가자~고 했다. 목련에 라일락 피는 봄날 골목길 책산이나 여름날 동네 구멍가게 앞 평상에 앉아 음료수 마시며 책산 마감하던 행복한 시간. 책산 나갈 때는 내복 바지에 털실로 쫄쫄하게 짠 바지, 내복에 스웨터 한장, 그 위에 쟘바. 그게 충분했는지 모르겠다. 한창 젊은 나이이니 내복이 필요없던 부모는 그렇게만 입히면 되는 줄 알았는데, 혹시 추운 날 바람이 어린 살 속까지 파고 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강아지 같이 눈 빛을 띄울 뿐 제 속을 말하지 못하던 아이들 마음을 얼마나 헤아려 주었을까.  

일주일 출장 다녀온 엄마가 반가워 목에 팔 감으며 매달리던 아이를 엄마 피곤하구나 하며 팔 걷어 내었던 때. 그리도 반갑던 엄마에게 받은 새 레고를 동네 형아에게 뭔 가와 교환(?)당하고 새 자전거는 늘 동네 형아가 타고 아이는 빈 손으로 놀던 때, 동갑내기들, 형아들 엄마들 모여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담 밖으로 들리는데 우리 아이 엄마는 낮에는 집에 없고 어떤 때는 며칠동안 밤에도 없고....어린 마음이 어땠을까. 그 때 아이를 많이 안아주었는지. 아들이라고 맘대로 안을 수 없는 나이가 되니 그 때 많이 안아주지 않았던 게 아쉽다. 

골목 동갑내기들이 가게에서 100원 내고 척척 사먹을 때 아이는 혼자 가게를 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나 이제 혼자서 사탕 사먹을 수 있다~ 하고 자랑했다. 혼자 가게에 가서 사탕을 사 먹을 수 있기 되기 전까지 아이에게는 떨리고 긴장하고 부러운 여러 감정의 덩어리가 가슴에 있었을 거다. 크게 많이 안아 주었어야 했는데.....마음에 사랑이 가득해도 곁을 지켜주어야하는 시기가 있다. 

우리 아이들을 키워주었던 할머니는 늘 동네아이들은 놓아 먹인 닭 같은데 우리 애들은 응달에 난 풀포기 같다고, 음마가 음써서 그려~하곤 했다. 유치원 첫 소풍날, 할머니 두 분에 엄마까지 따라 나섰다. 병풍처럼 어른들이 둘러 섰어도, 응달에 난 풀포기, 기를 세우지 못했다. 풀이 매일 조금씩이라도 햇빛을 쬐어야 하듯 아이는 매일 사랑을 껴안고 뺨 부비며 확인하는 게 필요했던 때였다.

나이들어 엄마 손 찾을 일 없어진 아이에게 지금은 어떤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시간이 더 지나고 뒤 돌아보면 그 때 가서야 아, 그때 그렇게 할 걸 하고 뒤늦게 깨달을런지.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들의 관계  (0) 2011.02.25
지나가버린 시간  (0) 2011.02.17
그 남자의 가족  (0) 2011.02.10
오래된 사진  (0) 2011.02.08
가족 모임  (0) 2011.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