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담

시금치 때문에

요즘 정신을 어디다 놓았다 들었다 하고 있다.
시금치 나물도 있고 우거지도 무쳤고 콩나물도 무쳐놓았기에 비빔밥을 준비했다. 계란후라이가 다 되어갈 무렵 참기름 좀 넣어야지 하면서 병을 쭈욱 따랐다. 계란 후라이를 밥 위에 놓으면서 병을 보니 참기름 병이 아니라 꿀 담긴 병이었다. 병이 다른데 어째 꿀 병을 따랐을까. 애들 말로 이거 뭥미...

저녁에 난데없이 삐삐삐삐 소리가 났다. 전화기 소리도 집 밖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다. 이 방 저 방 보니 침대 옆 자명종이 울리고 있었다. 저녁 7시 45분에 자명종 울리게 해 놓은 적이 없는데....하다가 생각났다. 아침에 일어나려고 엊그제 맞춰놓은 건데 오전 오후 구분에 무심했던 거였다.

하루에 몇 가지 일을 밖에서 보고 들어오면 피곤이 밀려온다. 지난 금요일, 낮에 수영 한 시간. 강사는 한시간 내내 팽이 돌리듯 돌린다. 숨이 차도 몸이 상쾌하니 죽어라고 따라한다. 오후, 간식거리를 들고 어머니 병원으로 갔다. 다섯시 저녁시간을 기다려 식사를 돕고 간식드리기를 마쳐도 해가 남았다. 병원을 나서다 전에 살던 동네를 들러 볼까 싶어 역촌동으로 차를 몰았다. 역촌 오거리, 신탁은행, 예일여고, 그 사이 사이의 골목과 아이 안고 뛰어 갔던 소아과 병원은 그대로다. 

80년대에 10년을 살던 집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조용하고 단정했던 80년대의 주택가는 간판들로 번잡해졌고 정원이 아름다웠던 주택들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볼품없는 시멘트 기둥 위로  3층 4층 건물이 벽과 벽을 마주하고 있다. 골목은 의구하되 모습은 간데 없네... 어두워 지니 시멘트 기둥은 허연 이빨을 벌리고 검은 입 속으로 차들을 물고있다. 이 집 저 집 거기 있던 흐릿한 모습 떠올리며 걷다가 돌아왔다. 퇴근 시간과 겹쳐 길에 묶여있었다.

고단해서 잠깐 누웠는데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열 두시. 내일 아침에 산에 가기로 했으니 일찍 자고 일어나야 할텐데...좀 잤으니 괜찮겠지...내일 지고 갈 배낭을 챙겼다. 인절미를 도시락에 담고 오렌지 넣고 커피담을 보온병을 씻어 엎어 놓고 병에 물을 채워 가방 옆구리에 넣고 티샤쓰와 바지를 꺼내 놓았다. 아직 잠이 안온다.

둘러 보니 엊그제 사다 놓은 시금치와 브로컬리가 있었다. 물러지는 듯 싶어 삶아 놓아야겠다... 다듬어 씻어 삶고 물 빼서 식도록 놔두었다. 하는 김에 콩나물도 삶아 무쳤다. 손이 느린 내가 일을 마치니 세시다. 눈이 따갑다. 알람을 일곱시 45분에 맞추고....깨니 아홉시. 이런 곰탱이! 알람을 못듣다니! 지금 뛰어나가도 일행은 나를 기다리게 된다. 기다리게 하기 싫다...망서리며 떡을 데우고 커피를 내리다 못 간다고 전화했다. 옷 갈아입고 배낭 싸면서 못간다고 전화하는 소리에 작은 애가 딱하다는 얼굴로 엄마, 밤 새고 준비하고 정작 아침에 못 일어나는 건 뭥미? 한다.

참기름 대신 꿀로 비빈 비빔밥 나물은 그날 밤에 삶은 거다. 내가 산에 못 간건 시금치 탓이다. 거기 시금치 봉투가 놓여있지 않았으면 한 밤중에 나물 삶을 일 없었을 거다. 그거 안 삶았으면 브로컬리도 콩나물도 안 삶았다. 꿀 비빔밥은 그날 아침 쪽팔렸던 충격 탓이다....필시 시금치에 뭐가 있다. 확증은 없지만 심증은 간다.

꿀 넣은 비빔밥 맛은? 꿀 맛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꿀 넣을 생각은 없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릉 나들이  (0) 2011.03.31
춘천 나들이  (1) 2011.03.27
터키 쉬린제 와인 쥬스  (0) 2011.03.08
그녀들의 관계  (0) 2011.02.25
지나가버린 시간  (0) 201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