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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오래된 일기-비 맞으며 산책

2009.04.25 (2009.04.30 19:19)

다이어리 내용

산책 나가는 오후길에 빗기가 느껴진다 했더니 바람이 분다.

바람이 몰아주어 빗방울이 굵어진다. 상수동 사거리를 지나 극동(極東이라는 서쪽에 중심을 두고 우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extreme east 변두리라 부르는 사고 방식 싫어 해)방송국 앞을 지나 홍대 삼거리로 향한다.

몇 일 사이 비가 온 덕에 맨 얼굴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무섭지 않다. 삼거리 씨디집 (내사랑 레코드 포럼) 라틴 음악을 따라 길을 오르내린다. 이 씨디집의 음악은 언제나 발겁음을 멈추게하고 느리게 하고 흥에 맟추느라 건널목 신호 몇 번을 지나치게 하기도 한다. 내 씨디 중 남미,이태리, 집시 음악은 모두 이 집 앞에서 오락가락 하다가 산 것들이다. 포럼 집 주인은 언제나 이 씨디 음악 좋은 건 내가 보장합니다 한다. 그 사람 보장은 내가 알아 준다.

 

포럼 뒷골목을 오를까, 옆의 큰 길을 걸을까 하는데 동네 분위기보다 나이든 가꾼듯 아닌 듯한 할머니가 레코드 포럼 옆 코너집 대문을 연다. 10년 가까이 이 동네를 지나쳐도 레코드 포럼을 앞가슴 포켓처럼 담고 있는 마당의 대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문 닫고 들어가는 할머니 등에 대고 속으로 꾸벅 인사를 보냈다.

 

그 집은 이 동네에서 가장 마당 넓고 (?) 키 작은 보통 주택이다. 담의 키는 보통이고 들어 앉은 가옥의 지붕이 보이지 않는다. 마당의 나무들은 가로수 보다 키가 큰데, 서교동 주변의 정원수가 계절마다 이발을 하고 여늬 가로수도 가지치기 서비스를 받는데 이 집의 나무들은 샐프 서비스로 가을에 나무잎을 많이 떨굴 뿐 지들 자라고 싶은대로 자라 나무 오리지날 기골을 보인다.

 

포름 삼거리 또는 포차 삼거리의 한 모퉁이를 점하고 있는 이 집에 대해 늘 고마운 마음과 혹시 그 집을 털고 주변 처럼 빌딩이 올라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교차한다. 주변 주택이 하나 둘 술집과 식당으로 바뀌고 주변 소음이 섞이고 꼬이는데 그 집은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나무는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고 있고 같은 뿌리로 레코드 포롬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 하다. 

주변 주택이 바뀌고 헐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데  오래 된 집이 털리고 빌딩이 들어서는 거야 주인 마음이고 돈의 힘이겠지만,

레코드 포럼이 어찌 될까 없어지면 어쩔까 싶은 걱정을 미리 댕겨 한다.

할머니 그 집에 오래 오래 살고 교복 주머니 위 명찰 처럼 뚜렷이 노란 간판 레코드 포럼 오래 오래 볼 수 있기를.

지날 때 마다 기분을 확 위로 돌려올리는 음악을 기대하며.

 

비 굵어지고 바람이 세졌다. 바지 가랑이가 젖는다. 상상 마당에 들어간다. 뭐 살 거 있을까, 영화 시간이 맞으면 한 그거나 볼까. 똥파리가 있고 살기 위하여가 있다. 오늘 날씨때문에 영화대신 비 속을 걷기로 했다.

 

홍대 앞 놀이터로 가보자....골목 길 양쪽으로 카페와 술집, 밥집이 간판을 내렸다. 같은 시간에도 간판 내린 집의 나무는 빨리 썩는다.

 

놀이터가 비었다. 레게(?)음악하던 패거리들도 없고 귀걸이 향초등을 파는 좌판이 모두 걷히고 공터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잡동사니 소리가 사라지고 바람이 나무잎을 흩는 소리가 들린다. 발 밑에 분홍 꽃 잎이 떨어진다. 고개를 드니 우와 ! 겹 벗꽃이 키 크고 굵은 나무 가지에 한가득이다. 나무를 돌며 겹 벗꽃을 즐긴다. 고개를 내리다가 어떤 눈과 마주쳤다.  그도 벗나무 올려다 보고 있었다. 카페와 카페사이의 통가죽 가방등을 파는 집 남자다. 가게안에서는 어른이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릴 수 없을 거다, 아마 한 쪽 팔만 짝 펴도 양 쪽 벽에 닫지 않을까 싶은 좁은 가게에서 그는 가죽을 다듬고 손지갑, 안경집, 도장집 등을 만들어 파는데 사가는 사람이 드믄지... 유리 진열대에는 늘 같은 물건이 고은 먼지 덮인채 있다. 십년 전 이 동네 이사와서 처음 돌아 다닐 때 손으로 만드는 물건이 귀하겨 여겨져서 아이 핸드백을 주문하여 받았는데, 아이는 십년 동안 한 번도 그 가방을 들지 않았다. 그의 눈은 쓸쓸하고 하염없어 보였다. 그의 눈빛을 확인하고 싶으나 마주치는 것은 피하고 싶어 벗 나무 주위를 돌다 남 쪽 홍대 쪽을 바라보게 되었다.....아 나무가 많았네...여태 못 보았네....여기 나무 첨이네....시선을  뺏던 장사 탁자들이 비운 자리위로 빗 속에 푸릇 푸릇 바람에 휘청거리는 나무가 눈 가득이 들어온다. 좀 센 듯한 바람이 낮의 소음 덮는다.

 

오늘 산책은 참 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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