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좋다.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사회 전체보다 거대한 폭력 또는 일상 속의 작은 폭력을 마주한 당신, 약자이니 회피할 것인가, 맞서 응징할 것인가.
한 개인은 안전지대를 찾아 폭력을 회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폭력은 어디선가 계속되어 언젠가 그 칼 끝은 당신을 향할 수 있다. 사회안전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거나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약자가 다른 폭력으로 자기를 방어하려 할 때 그것이 더 큰 보복과 불행을 불러올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폭력을 참을 것인가. 맞설 것인가. 폭력을 끝내기 위해 동원하는 다른 개인적 또는 집단적 폭력은 정당한가. 정당성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야만하고 무지한 폭력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무엇인가. 다른 말로 어떻게 하면 야만, 무지한 폭력배가 폭력을 끝내게 할 수 있는가. 영화는 상투적인 용서, 화해를 제안하지 않는다. 열어놓고 관객이생각하게 만든다.
원 제목은 복수이다. 어찌보면 감독은(작가이기도) 물리적 폭력에서 용서, 화해는 회피와 다르지 않은 약자의 언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주인공 의사가 오가는 아프리카와 덴마크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황량한 자연 속 가난보다 더 무참한 폭력과 덴마크 일상 속에 시스템으로 제지할 수 없는 폭력은 겉모습은 다르지만 본질은 닮아있다. 강한 자의 재미에 약한 자의 고통과 생명이 오가는 비대칭성이다. 개인 폭력에 대한 개인 대응과 집단 폭력에 대한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집단 단죄도 정의justice와 폭력을 구분하기에 흥미로운 부분이다.
교사, 경찰이 아이들, 부모들을 조사하고 대화할 때 보이는 기본 자세가 - 아이의 인권과 어른의 프라이버시 존중, 비권위적, 비억압적 태도 -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현실과 영화 속 경찰은 강철중인데...스웨덴,덴마크 수준은 까마득하다...쩝..
스웨덴 배우들 이름은 발음조차 어렵고 스웨덴 출신 감독 수잔 비에르을 외워야겠다. 멋지다.
http://www.cineart.co.kr/wp/archive/db.view.php?mid=132906&part=txt
폭력과 대응 에피소드 몇 가지.
안톤은 아프리카 캠프에서 의료봉사를 한다.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폭도무리의 대장이 치료를 받으러 안톤에게 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가족을 무참하게 잃어 캠프 사람들은 안톤이 그를 치료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장의 목숨은 안톤에게 달려있다. 안톤은 의사로서의 책임과 주민의 공포 사이에서 갈등한다. 폭력의 뒤끝을 두려워하였을 수도 있다. 안톤은 치료의 조건으로 무장한 부하들을 캠프 밖으로 내보내게 한다. 안톤은 무리에서 홀로 떨어져 치료를 마친 폭도 대장이 무수한 캠프 사람들 발에 밟히는 것을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새로 전학온 크리스티안은 안톤의 아들 엘리아스가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덩치 큰 불량학생들에게 맞는것을 여러 번 목격한다. 불량학생이 엘리아스를 괴롭히려는 순간 크리스티안은 작정하고 불량학생을 칼로 협박하고 다시 주먹질 하지 않을 것을 약속 받는다. 크리스티안과 엘리아스는 친구가 된다.
아이들 놀이터에서 불량배에게 뺨을 맞운 의사 안톤 맞대응하지 않고 자리를 피한다. 아들은 왜 아빠는 그를 상대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아이들과 불량배를 찾아간다. 사과 요구에 다시 안톤의 뺨을 때리는 불량배에게 안톤은 당신은 주먹 밖에 쓸 수 없는 인간이라고 말하고 자리를 뜬다. "아빠가 그와 싸우면 똑같은 사람이 돼. 겁쟁이가 아니라는 걸 그도 알았을 거야"라는 말에 크리스티안은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크리스티안과 엘리아스는 그들의 방법으로 응징을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