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30 01:03
10년 전 이 동네로 이사올 때 부터 할머니 야채가게가 있었다. 오래된 조그마한 3층 건물의 일층 점포였다. 가게는 좁고 길어 할머니가 먹고 자는 안쪽의 온돌은 어두웠다. 장사는 한산하고 할머니는 느려서 야채는 파는 것만큼 상해서 버려야 하는 듯했고 그 때문에 가게 안에 들어서면 상해가는 야채 냄새가 할머니 살림살이 냄새와 섞여서 역했다. 장사규모는 할머니 혼자 밥 끓여 먹고 세 내고 하는 정도로 보였다.
동네 주택이 하나 둘씩 신식 빌딩으로 바뀌어 가면서 할머니 점포가 있던 자리도 유리로 마감한 새 건물로 바뀌었다. 할머니는 그 건물로 들어가지 못했고 그 자리에는 카페가 생겼다.
할머니는 새 건물 건너편 주택의 담에 붙어 처마를 이어 내고 타파린 막을 쳐 공간을 만들었다.그 안에 야채 박스를 쌓아놓고 배추, 무우, 오이, 파 , 사과, 감 그런 것들을 팔았다. 용돈 벌이하려는 동네 할머니들이 야채 할머니 자리 옆에서 여름에는 옥수수, 겨울에는 고구마를 구워 팔았다. 공간이 좀 있어서 한가한 할머니들은 의자나 박스를 깔고 앉아 파, 배추도 다듬고, 마늘도 까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시든 과일은 할머니들 끼리 먹었고 팔수 없게 늘어진 야채는 덤으로 주었다. 비가 오거나 아주 추우면 할머니들은 흩어졌고 야채 할머니도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주택도 헐렸다. 미끈하게 유리로 마감한 사무실 건물로 바뀌었다. 야채를 펼쳐놓을 곳이 없어졌다. 다행이 건물주인이 주차칸 표시를 두른 예전 처마밑 공간을 쓰게한 모양이다. 야채 할머니는 그곳에서 다시 야채를팔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가벼운 비를 막아줄 처마도 타파린 벽도 없었다. 하늘아래 땡 볓에, 쌩쌩 찬 바람속에 앉아 있어야 했다. 장사 마친 후 남은 야채를 정리해서 손 타지 않도록 묶어놓는 일도 큰일이었다.
동네는 새 건물들이 들어 서면서 번듯해졌다. 카페도, 호프집도, 멋진 스파게티집도 생겼다. 그러나 할머니는 점점 고단해졌다. 할머니에게 장사터가 없어진 것 보다 어려운 점이 생겼다. 차길 건너 맞은 편쪽으로 붙박이 트럭행상이 둘이나 생긴것이다. 하나는 1톤 트럭에 과일파는 아저씨고 다른 하나는 동일한 품목! 야채 아줌마였다. 과일 아저씨는 점심전에 물건 떼어 밤 늦도록 팔았고 야채 아줌마는 아침이면 장에서 떼어온 새 물건을 아들과 함께 점포용 트럭에 진열했다.
할머니 코뮤니티는 야채 아줌마 트럭쪽으로 옮겨 앉았다. 야채 할머니 자리보다 좋았다. 트럭에 실어놓았던 스티로폼으로 벽도 만들수 있고 트럭 그늘도 있다. 할머니들은 거기 모여서 파도 다듬고 농담도 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대형마트에 가서 일주일치 이상 (과잉구매를 하게 되는듯) 사버릇했는데, 과일 야채는 동네에서 사는 걸 원칙으로 한지 몇년 되었다. 두 집에서 나눠 사곤했는데, 그래봐야 돈으로 멀마나 되었겠는가.
헛탕치는 날이 많아지면서 할머니는 결근이 잦았다. 출근길에 못보고 퇴근길에 지나가다 일부러 확인해 보면 타파린과 로프가 전날 묶였던 모습 그대로였다.
야채 할머니가 보이지 않은지 좀 되었다. 마지막으로 산게 늦은 봄,시금치 였다. 한 단 달라고 하니 부품한 봉투 하나를 더 준다. 시들어서 자기가 먹으려고 다듬었는데, 먹지 않을 거 같아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혼자사는 늙은이가 한 끼 몇젓가락 집지도 않는 나물 먹자고 무치고 있자면 서글플텐데....하는 생각을 했다.
엊그제 동네 산책길에 작은 애가 묻는다.
엄마, 야채 할머니 안보이는 거 알아?
그러게 말이다.
그 할머니 식구있나?
딸이 있단 예기 들었는데 보진 못했어.
그 할머니, 어떻게 살까.... ?
....
얘도 할머니가 거리로 내몰리는 걸 보았구나....
와플집, 김밥집, 카페등 조그만 가게들이 늘었다. 중년의 부부나 젊은이들이 앞치마 두르고 오랜 시간 일한다. 간판이 자주 바뀐다. 점포가 비기도 한다. 돈 벌고 업종 바꾼 경우이기를 바라지만, 그런거 아닌 줄 안다.
그들 보다 영세한 행상도 늘었다. 큰 길따라 치킨집이 몇이나 있는데, 장작구이 통닭차가 고정으로 보이고, 강냉이 밥풀떼기 트럭도 빈번히 보이고 저거 누가 살라나 싶은 그릇장수, 이불장수, 나무빨래판, 나무 밥상,돗자리 장수도 보인다.
안전지대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게 보인다. 중간지대에서 한 발 잘못 디디면 추락은 금방이다. 교육이고 문화고 이전에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걱정해야되는 사람들이 늘고있다.
작년 초만해도 사상 최대의 이익이니 해가며 큰 기업들은 돈 잔치를 벌였고, 이 번달에도 흑자, 상반기는 사상최대의 흑자라고 한다. 극심한 경제 위축 이후이니 최대 증가율이니 흑자니 하는 말에 넘어가지 않지만, 어쨌거나 돈이 도는 곳은 도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싸이클이 중간지대 밖의 없는 국민들의 경제 싸이클과 만나는 지점은 없는 듯하다. 축을 달리하는 두개의 경제싸이클을 연결해야 한다. 시급하다.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진 빚 (0) | 2010.12.19 |
---|---|
집으로 돌아가는 2mb (0) | 2010.12.19 |
일본인이 앵무새인 이유 (0) | 2010.12.18 |
우리 동네 뒷골목 (0) | 2010.12.18 |
물 장사 (0) | 2010.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