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03 22:15
아이들 나이가 차니 결혼 시켰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부모로서 자식 인생의 중요 전환점을 챙기고 마무리하는 책임을 마쳤냐 묻는 거다. 그런데 당사자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요즘 세상에 결혼 "시키다"라는 말이 적당한가? 부모끼리 사돈 하자고 아이들 짝을 맺어주던 시대에 쓰던 말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결혼 시키는 것은 청소 "시키는" 것과 달리 대학까지 공부 "시켰다"할 때의 재정적 지원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어느 교수가 자기 아들 결혼 시킨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주 웃겼다.
아들이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기에 여러 말 묻지않고 허락하면서, 결혼식은 아버지가 준비하겠다 했더니, 아들, 며느리가 그러시라고 했다. 아버지가 학자로 이름 난 사람이니 권위에 눌렸는지 사돈 측에서도 그러시라고...이견이 없었다.
그는 총장이 손님 접대를 할 때 쓰는 총장실 옆 소규모 식당을 예약했다. 최대 수용 인원 20명.
부를 사람을 정했다. 주례는 있어야 하고 사회도 있어야 하고 사진을 찍어야 하니 사진사. 아들 부부, 양가 부부. 그리고 나니 11 좌석이 남았다. 신부 측에 6 자리, 신랑 측에 5자리를 배정했다. 그는 작은 아들, 형네 부부, 처가 쪽에서 두 사람 초청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부 측에서 연락이 왔다. 아무리 그래도 숙부도 오겠다 하고, 외삼촌도 오겠다하니 두 자리 더 있어야 겠다고. 처가를 한 명으로 줄이고, 형수나 형만 오게 해서 신부측에 두자리를 넘겼다. 다시 신부측에서 한 자리 더 달라고 연락이 왔다. 줄일 수가 없어서 중국에 있던 작은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너 형 결혼식에 올 거 없다. 비행기표 취소해라."
"왜요? 아버지?"
"네 자리가 없다."
암튼 식대 일인당 이 삼만원에 꽃 등 해서 총 비용 70만원 남짓. 주례사 할 만큼 했고,했고, 축하 해 줄 사람들 덕담 해줄 만큼 해주었고 사진 찍을 만큼 찍었다고 만족했다고 한다.
아들 결혼식을 나중에 알게된 친구,동료들이 왜 안알렸냐고 섭섭하다고 했지만, 그는 친구들도 속으로는 부조금 굳었네하고 좋아라 했을 거라고, 자기도 이렇게 치뤘으면 쉬웠을 것을... 하며 부러워 했을 거라고 했다.
선배 하나는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지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둘 거라고 했다.
"나는 하객으로 간다고 했어. 가장 부조금 많이 내는 하객. 그건 부모의 마지막 책임이니까. 부조금은 식 올리기 전에 먼저 줘야지. 애들도 그게 좋대. 아, 옷은 잘 입고 가겠다고 했어. "
선배는 사적 관계 유지에 서툴러(까다로워) 남편의 공적 관계 속에서 사적 관계 맺는 걸 즐기지 않았다. 대개 그렇듯이 아이들은 장성하면서 부모와 다른 사고, 생활 궤도를 간다. 걔들 인생은 걔들이 사는 거고 나는 내 인생 사는 거고 이 선배가 늘 하는 말이다.
나는 그 아버지가 꾸린 결혼식이 통쾌하다 싶은데 다른 사람들은 유난하다, 섭섭하겠다, 남 하는대로 하지 할런지 모르겠다. 잔치이고 그런 때에 서로 모여 축하하고 얼굴보고 소식 나누고 그러는 게 아니냐고. 그것도 맞다. 그런데, 가족으로 얼굴 익히고 살 사람들 끼리 오붓하게 결혼식을 치루는 것도 좋겠다. 1번 하객으로 참석할 테니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 선배의 생각도 이해한다. 상대가 있어 형식이 늘어나고 남이 있어 비교하고 관객(?)이 있어 눈을 의식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쉽고 간단하게 치루고자하는 마음 알겠다.
가끔 아이들 결혼식을 이렇게 하면하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계절은 꽃이 많이 피는 5월 쯤. 장소는 숲 또는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잔디밭. 내 별장의 너른 마당이면 제일 좋겠지만 그건 테레비 연속극에서 보는 거고. 꽃이 아름다운 있는 근교의 정원이 좋겠다. 가까운 가족, 당사자 친구, 당사자가 감사를 표하고 싶은 사람들을 초청한다. 이쪽에서는 부르고 싶지만 저쪽에서는 부담스러워 할 지 모르겠으면 부르지 않는다. 결혼식은 경건하게, 피로연은 품위있고 정중하고 즐겁게 한다. 폐백이라든지 집안 어른에게 드리는 인사는 양가 공히 한다. 부조금은 받지 않는다. 아들의 경우, 불평등의 상징인 예단은 받지 않는다. 딸의 경우, 글쎄. 우리 나라에서 딸가진 부모는 죄인이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은 어떤지.
당사자들이 그렇게 할런지 모르겠고 상대측도 동의해야 하고 가족들의 이해도 구해야 한다. 막상 일을 치룰 때가때가 되면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다. 그저 지금 나 혼자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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