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2 19:15
친구와 삼겹살 먹으러 단골집에 갔더니
처음 보는 포장의 술을 내어준다.
우리가 오면 맛이나 보라고 막걸리 몇 병을 친구가 맡겨놓았다는 거다.
술이 공짜이니 기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친구가 맡겨놓은 술.
첫 잔.
오오, 맛있다. 자연 그대로의 깨끗하고 부드러운 맛, 자연스러운 달콤함.
다시 한 잔. 가공안된, 순수하고 연한 향기가 느껴진다. 밥을 막 지어 첫 주걱을 뜰 때 느끼는 구수하고 편안하고 옅은 단 내랄까.
첫 눈에 반한다고 하는데, 봉하 막걸리에 첫 모금에 반했다.
이런 쌀향기를 언제 맡아 보았더라? 일부러 정종 전문 일식집에 찾아가 매니저에게 물어서 주문한 일본 정종이 농염한 술향기를 풍겼다. 세상에 그렇게 매끈하고 달콤하고 고급한 쌀향기 술은 처음이었다. 양으로 좀 마시려는 우리에게는 너무 비싸서 그걸로 마지막이 되었다.
병의 상표를 자세히 보았다. 라벨 색과 그림이 보통 보는 막걸리 포장지같지 않고 밝고 명랑한데. 라벨 키가 높아 병이 독구리 샤쓰 입은 듯 답답하다. 봉하에서 나온 쌀로 담양 도가에서 빚은 막걸리다. 그곳은 오리농법, 유기농 무농약으로 쌀 농사 짓는다. 경기도 쌀처럼 매끄리하고 윤기나는 귀부인(?) 스타일은 아니다. 동글한 모습의 봉하 쌀로 지은 밥은 경기도나 충청도 쌀보다 쫄깃하고 고소하다.
다 마신 병 바닥이 투명하다. 막걸리는 막 걸렀기에 바닥에 앙금이 깔리고 아랫물만 마실 수 없으니 흔들어 먹는데, 봉하 막걸리는 앙금을 이미 걸러낸 거다. 곱고 부드러운 맛을 위해 20-30%를 로스처리하고 난 막걸리는 막걸리 형님이다. 아니, 막걸리 할아버지인가.
그 맛을 기억하니, 짭짭, 입맛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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