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를 몇 년간 놓여있던 자리에서 살짝 옮겼다. 케이블을 뺐다가 다시 꽂았는데 스피커가 윙윙 울린다. 스피커 케이블을 바꿔보고 단자 연결을 다시 해보지만 잡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내 부탁에 큰 애가 조금 만지더니, 너무너무 오래된 거라서....하며 손을 뗀다.
QUAD 405에 JBL4312. 오래되긴 했지만 옮기기 전엔 부드럽고 따뜻하고 힘찬 소리를 내던 거다. 섬세하고 화려한 연주에 침이 꼴깍 넘어가는 연주회의 긴장을 전하기도 하고 부드러운 중음 저음의 출렁임이 재즈바의 담배연기를 풍기기도 하고 감은 눈 위로 스르르 깃털같은 낮잠을 놓아주기도 했다. 적벽돌 한장 크기의 프리앰프와 담장 쌓는 블럭 한 장만한 파워앰프는 생김새도 수수하고 편안하다. 내가 마음 변하지 않는 한 내 옆에 있을 오래된 친구같은 이것은 고급하고 세련되고 번쩍이지만 낯설은 새 오디오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게 소리를 못내고 있으니, 내 속이 아프다. 며칠 째 이러고 있다.
지어 진지 10년 되니 집 여기 저기에 나이든 표시가 보인다. 세멘벽 위 회칠이 떨어지고, 전등은 연결부위가 삭았는지 전구를 바꿔도 불이 들락날락한다. 불편하기는 해도 사는데 지장없으니..... 해서 놔두었다. 화장실 손잡이가 얼마 전부터 신통찮았다. 문을 확실하게 딸깍 당겨 닫으면 밖에서는 열리나 안에서는 열리지 않는다. 사람 불러 고치기 귀찮아 슬쩍 닫고 슬쩍 밀면 열리도록 문 틀의 홈을 휴지로 메우고 지냈다. 엊그제 샤워하려는데 철수가 자꾸 코를 밀어 문을 연다. 찬바람이 싫어 문을 확실하게 닫았다. 나오려는데, 아뿔싸, 문이 열리지 않는다. 큰 애는 출장갔고 작은 애는 밤 늦어야 퇴근. 하이킥의 나문희 여사처럼 핸폰을 목에 걸고 있었다면 누군가 불러들이겠지만 전화기는 화장실 밖에 있다. 경첩을 풀어? 드라이버도 없지만 경첩을 풀어도 소용 없구나....문을 열 방법도 도구도 없다. 창문으로 사람을 불러? 부른다치고 현관문을 어떻게 열게 할 수 있는데?
강지환, 이동규가 나오는 방문자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속 상황은 위험했다. 혼자 사는 주인공 남자가 한 겨울에 알 몸으로 화장실에 갇혀 덜덜 떨다가 타일 바닥에 쓰러져 실신, 우연히 종교 전도하러 돌아다니는 남자에게 구조된다. 이 영화에서 처음 본 이동규라는 배우의 연기는 뛰어나게 리얼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오고갔다. 기다리는 건 방법이 아니다. 다행이 화장실 문은 통유리위에 나무격자를 올린거다. 깨면 된다. 수건을 적셔 유리에 대고 목욕의자로 쳤다. 유리는 질겼지만 결국 화장실 반대방향으로 깨지며 날아갔다. 놀라 달려온 철수를 멀리 쫓고, 속옷을 입다가, 유리를 털다가 물기 마른 얼굴에 화장수 급히 바르다가, 어느새 유리를 밟는 철수에게 고함치며 유리조각을 쓸어내고 몇 시간을 우왕좌왕 했다.
서서히 상태가 나빠져가는 것을 그대로 놔두었던게 문젠가? 유리문이 아니라 나무문이었으면 꼼짝못하고 몇시간이고 갇혀있어야 했을 것이다. 전구가 예고없이 수명을 다하면 나홀로 어둠 속에 몇시간이었을 것이다. 고쳐야 할 것은것은 문고리인데, 하이킥의 나문희여사처럼 핸드폰을 목에 걸 생각이나 하고 있고 목욕탕에 드라이버나 챙기고 있다. 이거 기피인가 고집인가.
3월 말 산행 중에 무릎이 시큰거려 산 꼭대기 오르기를 포기하고 중간에 내려왔다. 4월 초 일주일동안 제주 올레를 150키로 이상 걸었다. 무리가 아닐까 생각하였으나 올레는 대부분 평지이고 무릎 보호대 차고 등산 지팡이 두개에 몸무게를 나누었으니 괜찮을 거라고 무릎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욕심을 부렸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무릎에 문제가 생긴걸 알겠다. 오른 쪽으로 디디면 오른 쪽이 아프고 왼 쪽을 쓰면 왼 쪽이 아프다. 계단을 뻣정다리로 오르고 내려가다가 계속 가도 될까 묻고 무릎이 내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인다. 이제와서 어쩌라고~ 하고 내 몸이 내게 짜증내는듯 하다. 준비없는데 욕심과 미련이 합친 결과다.
신문을 바닥에 펼쳐놓고 보는 버릇이 있다. 구부리고 쪼그려 앉는 자세로 신문을 다 읽고 나면 허리가 뻐근하다. 안좋은 자세다. 엊그제 구부리고 신문을 읽다가 일어서려는데 허리가 갑자기 아프다. 움직일 수가 없다. 침대에 누워 덜 아픈 자세를 취해보려는데, 당췌 움직여지지 않는다. 밭에서 김 메다가 허리 굳은 할머니처럼 구부린채 움직였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급한대로 물파스에 핫팩하고 시간 지나면 풀리겠지. 며칠 지났고, 아팠던 건 좋아졌다. 오늘, 신문을 바닥에 펼치고 다시 그 자세를 하고 있는거라, 얼른 자세를 바꾸었다. 몸의 습관, 몸의 고집이다.
에구구, 이런 일들이 어떻게 한 달 사이에 연짱 생기는지. 반성할테니 좀 일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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