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03 00:46
겨울 찬 바람을 쐬면 눈물이 났다. 미루다가 안과에 다녀왔다. 눈 찌르는 속눈썹을 몇 개 뽑히고 물약을 받아왔다. 재작년에 왼 쪽 눈에 먼지가 어른거려 검진 받았더니 혼탁이 생긴 거라 했다. 오늘 갔던 병원에서는 오른 쪽에 혼탁이 더 있다고 한다. 내가 왼 쪽의 혼탁은 알고 있었지만 오른 쪽은 몰랐다고 했더니 의사 말이 왼 쪽은 갑자기 진하게 생겨서 느꼈지만 오른 쪽은 서서히 진행되었기에 눈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라 한다. 갑자기 생긴 것은 인식했는데 서서히 다가온 것은 더 중해도 모르고 있었다니. 종이가 물에 젖듯 서서히 온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던, 그러니까 인식해야 할 때 인식하지 못하면 때를 놓치는거다.
오는 길에 택시를 탔다. 기사가 천안함 사고에 대해 말을 꺼내더니 화를 낸다. 군인들이 잘못 했다는 거다.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정보를 통합하여 규명하니 군인 잘못이다 또는 배 관리 문제다 또는 외부이유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군함에서 뭔가가 터졌다는 것, 그걸 몰랐다는 것, 요즘 레이다 등 장비가 얼마나 좋은 데 사고 날 걸 미리 파악 못하였느냐는 거였다. 군기가 빠져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올마이티 군대였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나라는 독재를 해야한다고 한다. 정치한다고 왈가왈부 하는 거 시끄럽고 독재해서 강력하게 미는 게 우리나라에게 맞다는 거였다. 옆 얼굴로 나이가 60이 넘어 보였다. 말 섞고 싶지 않아 아무 대답 않고 내렸다.
그가 독재를 알고 말한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의 젊은 시절의 군대는 (60년대 중반) 권력 탄생의 중심이었고 군대 조직의 사회적 존재감은 지금 사회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군 내의 단순 반복의 건조한 세뇌로 머리 속을 단순화 시켜 규율과 훈련은 강하고 인권보다 명령의 합리성보다 하방성이 강조되는 시절이기다. 그가 독재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이 군에 있었을 시절의 일사불란하게 위에서 내려오는 힘, 겁 바짝들은, '빠지지 않은' '까라면 까야되는' 그래서 자신 같은 사람들도 남을 부릴 수 있었던 체제를 이야기하는 거라고 짐작한다.
내 짐작이 어떻든 간에, 60 중반의 서울 시내를 달리는 택시기사의 우리나라는 독재가 낫다는 말은 나를 잠깐 동안 절망시켰다. 온갖 미디어 속에서 도시생활을 하면 인식과 판단이 매일 좌우상하로 움직이게 마련인데, 그에게서는 자신의 존재감이 극대화 되었던 어느 싯점에서 인식이 정지하고 판단이 마비되었음을 느끼게 했다.
재작년 (2008)에 가까운 사람들 끼리 모여 앉은 자리에서 듣고 놀랬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촛불이 한창이던 6월 중순이었다. 그는 1960년대에 일류 공대를 나와 국내 최대의 건설회사, 철강회사에서 젊은 시절부터 일했는데, 경제 성장기에 철강, 건설 분야에서 일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큰 사람이다. 직업적 기여와 자신이 엘리트라는 대한 자부심으로 마음이 가득차서 인생에 필요한 다른 가치는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학교 점수만 잘 받으면 다른 잘못은 모두 용서한다. 일류대학 가는 거 제일로 쳐주고, 내로라 하는 직장에 들어가서 뼈 빠지게 일하면 나라는 굴러가게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은 "촛불이 저리 기승인데, 이명박이가 확 밀어버릴 줄 알았는데, 못 밀어버리더라"는 거였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이명박의 성향이 확 밀어버리는 성향이라 밀어 버릴 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확 밀어버려야 되는데 안 밀어서 답답하다는 이야기였다.
생각컨데, 젊은 시절 그가 지냈던 환경은 기울기가 한 쪽으로 치우쳤을 것이다. 그에게 조국 건설을 통한 성장이 최우선이라는 경주용 말에게 씌우는 안대가 씌어져 있었을 것이다. 주어지는 일을 쎄빠지게 하는 것이것이 최고의 善이고 방향성이나 방법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도록 몰아쳐졌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추구해야하는 다른 가치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과 안목을 키울키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의문이 없는 삶의 편안함에 길들여졌을 것이다. 자신이 몰두했던 조직의 양적 성장, 물질적 성취를 추구할 때 조직에서 유통시키던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게되었을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 시절시절 다른 가치를 성찰할 수 없도록, 방향성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없도록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을 것이다. 문제 해결에 바쳐진 피와 땀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참여자의 피와 땀에 대한 대한 대접과 참여자 vs 조직간의 보상 시스템이 정당하였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육신을 위한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지고 잉여가 넘쳐나고 필요가 욕망으로 넘어간 지 오래되었는데 그래서 거대한 욕망을 제어할 공정한 제어 룰을 섬세하게 세우고 집행하여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주입된 가치에 길들여진 시각, 인권, 참여권, 자기 선택권등의 가치 추구 행위는 방해이고 억제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균형을 결핍한 시각은 심히 걱정된다. 그런 시각은 폭력을 동반하기도 한다.
새끼 고양이를 세로줄만 쳐진 방에서 기르다 꺼내면 가로 줄을 인식하지 못한다. 세로줄에 반응하는 신경 세포만 형성되고 가로줄에 반응하는 신경 세포는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기 고양이의 한 쪽 눈을 수술용 실로 꿰메어 가리면 가려진 눈으로 들어오는 대상에 반응하던 신경세포가 없어지고 다른쪽 눈의 세포도 약화되어 어느 쪽의 입력에도 반응하지 않는 무능력한 세포가 되어버린다. 하드웨어인 안구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나 소프트웨어인 반응 프로세스-피질이 무능력해졌기 때문이다. 반면 성숙한 고양이는 동일한 눈가리기 실험을 하면 눈 가리개를 떼어내도 양쪽눈으로 입력 되는 것에 반응한다. 새끼고양이는 성장환경에 길들여지고 성숙한 고양이는 일시적 환경 제약에도제약에도 반응 프로세스를 유지한다.
고양이의 뇌세포는 생물학 이야기이고, 인간의 아니 저 위의 젊은 할아버지들의 판단 프로세스는 돌아올 수 있을까? 프로세스에 돌릴 대상이 입력될 수 있을까? 세로줄 방에서 자란 고양이가 가로줄을 인식하지 못하듯 인식 스펙트럼이 제한된 인간이 입력하여야 할 대상을 포착할 수나 있을까? 쥐와 쥐의 무리들의 끝없는 돌격 앞으로, 아니면 말고, 그도 아니면 그건 오해야 식의 파렴치 행적을 볼 때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그나마 돌고있는 판단 프로세스도 해괴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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