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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길들여 진다는 것 2

 

 2010/04/05 19:34

90년대에 필리핀을 드나들 일이 많았다. 대개 마닐라와 주변 도시였는데, 도시는 매연과 쓰레기에 찌들었고 변두리는 쓰레기에 덮이고 좁은 강, 검게 썩어 고여 있었다. 마닐라의 삐까번쩍한 고층건물들 사이사이에 있는 고급 드나들다 보면 그곳 부유층의 결혼식을 곁눈으로 보게 된다. 결혼식장의 화려함, 하객들의 차림이 엄청나다. 그들을 태우고 온 차를 보면 세상의 돈은 다 모인 듯하다. 기사, 도어맨들의 상전과 고객에 대한 깍듯함은 고용되어 서비스하는 그것이 아니라 master와 servant의 상하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에어컨이 싱싱 돌아가는 벗어나  검은 선팅 번쩍이는 차들이 달리는 마닐라 거리에는 회색 매연 속에 찌들은 마스크를 쓰고 한 줌의 사탕과 물을 파는  맨발의 소년들이 자라고 배워야 하는 나이에 배우지 못하고 거리에서 그날의 밥을 벌어야하니 그들의 나아질 수가 없다. 그들의  도시는 속이 보이지 않게 검게 선팅한 안팎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들은 같은 사회안에서 서로 만나지 않게 돌아가는 궤도를 산다.

 

시내 중심을 조금 벗어나면 허름한 가옥들, 판자촌을 만난다. 썩은 개울물에 나무를 박아 집 바닥을 함석이나 합판으로 지붕을 얹은 집들이다. 태풍이 잦은 필리핀에서 바닥이 약하고 집은 비바람에 쉽게 허물어져 떠내려간다. 쓰레기 덮힌 개울물은 범람하고 아이들은 고통을 겪은 며칠 후 다시 기둥을 개울 언저리에 박고 집을 고생을 한다. 그 집 앞에서 사람들은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고 기타를 웃는다. 우리의 삶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고통에 자신을 내놓고 아무런 요구하지도 추구하지도 않는다. 다른 수준의 삶이 자신에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고통을 고통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마비되어있다.

 

이야기 나누면 다정하고 친절하고 명랑한 친구들인데 그들은 상대가 자신보다 지위와 금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면 상대를 master로 여긴다. master는 봉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지배자다. 지독한 공포는 인식을 거부하거나 마비시킨다. 내가 이들은 동료이거나 갑과 을의 관계였는데 토론하거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지시를 수용할 준비를 취한다. 부자는 섬겨야 되고 힘센자는 옳다고 여기도록 세뇌되어있는

 

16세기 이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행동의 빼앗겼고 그것은 사고의 자유를 말려갔고 행동할 용기를 씨말리는 악순환이 되었다. 법이고 식민지인들은 법 밖에서 살았다. 아들의 아들의 몇십 대를 수탈당하며 이어진 삶의 배경과 궤도는 바뀌지 않았고  소수를 제외하고는 궤도 탈출은 않고 살았다. 그 소수는 지배자에 의하여 처참하게 죽었음은 물론이다. 식민지 식민지의 재산과 권력를 빼앗는 것이며 그 중 핵심은 혼을 빼앗는 필리핀은 혼을 빼앗겼고 오랜 세월 높은 벽으로 구조화된 사회에서 도전과 시도하려는 정신의 근육은 실처럼 가늘어졌다. 얼굴 까칠하고 마른 소년들에게 남겨진 호세Jose, 로사리오 Rosario같은 스페인 이름이다. 그들에게는 회복할 이름이 없다.

 

요즘의 우리 사회가 필리핀 모습에 겹쳐보인다. 권력의 부패가 넘쳐나도 쥐던 놈이 그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판단 능력의 마비를 느낀다. 돈을 가진자들 끼리 부정한 거래로 알짜는 다 흩어가고 쭉정이만 남겨놓아도 정의를 따지지 못하는 행동의 마비를 본다. 행동해 보아야 모난 돌이 맞는다 배웠기에  세끼 밥에 내 자식 공부만 가르치면 만족하고 다른 무관심해지는 비루한 정신을 본다.

 

1910년 부터 지난 중 36년을 남의 지배아래 살았던 우리에게 일본의 고약한 지배와 수탈은 충격과 깨우침, 그런 세상을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각오를 세기게 고결하나 허약한 영혼은 자결로 침략에 항거하고 질긴 저항의 영혼은 나라 떠돌면서 나라 회복에 인생을 걸었다. 그 반대 쪽에 일본으로 부터 받고 땅과 사업 권리 조각을 받는 이들이 있었다. 역사가 우리를 식민기간은 360년 아닌 36년 만에 끝났으나 그때의 세도가와 빌붙어 먹던 일본의 수탈을 시혜라고 우긴다. 그들은 군림하는 침략자를 master라고 여기는 식민지 t mind 소유자들이다. 힘센 자는 무엇을 하던 간에 힘이 세니 옳다고 기회제일주의자들이다. 친일파들, 그 중에서 박정희, 조선일보가 부문별 대표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센자의 그늘 아래 긴다는 거다. 그들에게 공공을 위한 가치, 국민은 일본이 대세라고 생각하면 그들에게 붙고 군부가 강자이면 그들의 눈치를 본다. 그때 그때 달라지는 가장 센자를 칭송하고 그들의 탐욕과 부당한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방법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세습한다.  

 

국민은 그들에게 '계몽'되고 세뇌되어 왔다. 그래도 배운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 옳을 것이고 가장 많이 읽는 신문이니 진실일 거라고 믿는다. 어리석어 그리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 믿기에 어리석어지는 것이다. 가부장제 전통 사회에서 나라의 어른이니 옳을 것이라 믿지않고 의문을 표하고 거스리는 자는 고얀 놈으로 엄히 다스려졌고, 윗 대, 상층부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목을 걸어야 했다. 강자는 자신의 잘못과 해악을 다듬고 포장하여 '옳은 것'인듯 유통시킨다. 개인의 판단과 선택을 장려하지 않는 가부장제 전통에서 잘못 된 것도 다수가 믿으면 진실인 듯 유통되고, 소수의 진실은 다르기 때문에 틀리다는 해괴한 논리로 진실의 유통은 제한된다.

 

우리는 1961년부터 군부의 지배를 받았다. 군부 세력의 끝에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정부까지 계산하면 공교롭게도 일제 시기와 같은36년이다. 스스로 세우지 못한 국민이 군부 쿠데타, 독재, 유신의 장기 집권하에서 집회, 언론의 자유를 빼앗겨도 밥 먹고 수출하고 경제 성장 한다는 명분으로 상처 투성이로 버려두었다. 남학생은 기억도 생생한 교련복을 입고 '교육 군사 받았고 여학생은  교실에서 부상자 싸메는 삼각건 접는 법을  연습했다. 국내 여의봉인 '국가안보'라는 위협은 교육아닌 '군사훈련'을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시켰다. 국민에게 흘리게 하며 군부가 다시 들어서도 국민은 살인의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유통은 차단당했고 진실은  위협당했다.  사각지대의 인권은 물론 대낮의 큰길에서 인권이 권력은 늘 공화당, 민정당, 한나라당이 쥐었다. 다른 권력 구조와 분배와 가능하다는, 다르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을 많은 국민은 상상하지 못한다. 상상하지 세뇌되었고 마비되었기 때문에.

 

국면이 엉키면 흘리는 국가안보 북풍작전의 뿌리는 1945년부터 1960 사이의 이승만을 통한 미국의 지배에 있다. 소련과의 대치상태에서 중남미,동유럽, 중서유럽(이태리)등에서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기위한 온갖 노력을 경주하던 남한은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미국은 친미,반공하겠다는 정부는 정당성을 묻지도 따지지도 지원하였고 민주주의, 인권을 짖밟는 온갖 만행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덮어주었다.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반공을 국시로 정했던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전문으로 하는 단체가 조직되고 반공을 전문으로 하는 인사가 사회 저명인사로 집회에 초청되고 지원받고 대접 받았다. 학생들이 동원되고 일사불란하게 군복과 선그라스류가 대형 반공 쑈는 국민을 국가 안보 제일, 반공 제일로 길들였다. 선그라스에 미국기 흔드는 가스통 영감들은 그 때의 잔재이다.

 

각 시대의 국민 길들이기는 참 오래 흔적을 남긴다.

 

학생들, 어린이들은 교과서에서 민주주의, 인권, 공정한 룰을 배운다. 그러나 그것은 뿐 그들에게 과외, 점수, 줄세우기, 탈락하면 죽음이라고 협박하고 연예 프로와 게임을 들려준다. 청소년들은 죽도록 달리기 하거나 연예프로에 몰입하도록 유도된다. 잘 기득권자들의 국민 장악 전략이다. 이러면 권력은 일사불란하게 유지되고 세습된다.

 

지난 2월에 전 국민의 87.5%가 부자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는 기사가

부자가 되기 어려워진 원인으로 39.7%가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기회 감소'를,

32.1%가 '부모 경제력의 대물림을, 16.3%가 부적절한 제도'를 꼽았다.

20-30대의 젊은 응답자들은 부모 경제력의 대물림을, 고연령층은 성공 기회의 감소를,

소득이 낮을수록 '부적절한 조세제도'를 큰 원인으로 응답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경제적 노력과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태어날 때 물고나오는 숟가락 색깔에서 결정된다고  있다니 그 세대가 겪고 있는 갑갑함이 느껴진다. 고연령층은 자신과 주변의 체험했으나 젊은층은 성공 경험 없이 경제력의 세습을 빈번히 보았고 따라 까마득한 거리를 알기에 절망적인 답변이 나왔다고 본다. 힘 없는 부모에게서 성공 기회가 드믈다고 생각하는 청장년들이 무슨 힘으로 버티고 시도하고 도전할

 

경제적 계층 구조가 공고해지고 계층간 간격이 붙으며 멀어지고 있다. 열 중 아홉의 국민이 마닐라 고급 호텔, 막아서 가까이 다가 갈 수도 없는 벽을 느낀다는 거다.  필리핀과 극단적인 빈부격차?  포기하는 인생들의 증가?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도 서울역, 을지로 입구역, 종로 3가에 떠도는 인생들이 늘어가는 걸 보면 왔다고 할 수 도 있다.  자본주의는 가진 것에 따른 계급사회다. 그 계층은 노력과 기여에 따라 진입과 탈락이 가능해야 한다. 노력도 불가한 계층에게는 보호막이 쳐져야 한다. 그게 안된다면 우리나라가  필리핀, 인도네시아, 제도있는 인디아와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지난 100년 간, 다른 세력으로 부터 30-40년 씩 길들여져 왔고 그 시대의 지배가 남긴 추악한 상흔을 지금껏 깨끗이 지우지 못하였다. 동시에 국민 스스로  깨우치고 극복해 여기까지 왔다. 지난 2년 반, 괴물의 활개치는 시대에 살고있다고 느낀다. 자본만이 자본을 키우고 거대 자본이 시장의 룰을 결정하고 조작하는 경제 시스템은 삶의 비용을 올리고 있다. 늘어나는 나라 빚, 올라가는 대학 등록금, 자율고, 특목고 확대, 의보 민영화로 의료비 증가, 하다못해 인천 공항 매각으로 공항사용료, 주차료까지 올라갈거다. 비용뿐 아니라 결정권이 사용자로서의 국민에게서 개별 소유자, 기업으로 옮겨간다는 거다.  언론은 군력의 대변인이 되었고 권력 비판적 집회는 불법이라 하고 노동조합은 탄압받고 개인의 선택은 '내 편'이 아니면  까발려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길들여져 포기하고 주어진 삶의 환경에 갇혀, 떠내려간 집터에 앉아있는 마닐라 가장처럼 시간이나 죽일 것인가?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야하는지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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