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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누가 용서를 말하니

  학교 때 친구 넷이 술 한잔하자고 만났다.
학년을 달리하며 A와 B가 친구, B와 C가 친구가 되어서 A와 C는 알고 지내는 사이다. 친구들이 자랑하면 부러워했고 걱정하면 위로 했고 함께 했던 일 꺼내면 웃었고 혼자 겪은 일 풀어내면 제가끔 방안을 제시했다. 나이 들어가며 이루고 잃으며 겪을 거 겪었기 때문이다. 어리고 청춘이었을 때 누가 춥고 어렵게 살았는지 말 나누지 않았다. 듣게 되면 아는 거고 모른다고 캐지 않았다. 그 때 환경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고 보통 우리들 삶에 있어 이후의 30년이 온전히 자기의 선택과 노력과 책임임을 알기 때문일 거다. 대게는. 그래도 더러는 남의 옛날을 들여다보고 싶은 나이 덜 찬 마음이 올라오나보다.  

 자식 둘을 다 잘 키웠고 내로라 하는 직업에 아파트 값 높은 동네에서 사는 A가 옛날 이야기를 했다. 
홀어머니가 행상으로 어렵게 키운 그는 서울 밖 변두리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오래 걸려 통학했다. 가장 멀리서 다녀도 지각않던 그는 책상에 붙은 듯 공부했고 성적이 뛰어났다. 키가 작아 교실 맨 앞줄에 앉았던 A에게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다. 그 애 집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숨어 쳐다보곤 했었다. 
 "나는 누구 좋아하지도 못했어. 아니, 드러내지 못했지... " 
가난한 엄마의 유일한 행복인 공부 잘하는 아들. 호소 받아줄 친구 없는 꼬마, 고급 주택가 사이 그 아이네 집. 연속극 같은데, 정말 그랬다.

 "걔네 집 번지수 지금도 기억해 28-33..." 숨겼던 짝사랑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 속 문신을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 들으며  각자 기억을 더듬는 듯 한데, C가 남에겐 아무 의미없는 숫자에 무슨 의미라도 있는양 
 "28-33 번지..." 따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A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애 다니던 학원을 알았어. 그 애 학원 끝내고 나오기 기다리다가 늦었어. 집에 가는 차가 끊어졌지. 멀리 살았거든." C가 물었다.
 "너 그 때 어느 동네 살았는데?" 
  A는 잠깐, 숨을 들이켰다가 가볍게 동네 이름을 말하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금도 지하철로 한시간  가야하는 그 동네는 큰 비가 오면 잠겨 그는 진흙에 젖은 발로 2-3 교시에 온 적도 있다. 

 A는 어느 날 시내에서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다. 학생들이 많이 오가던 종로서적 근처였다. 어머니는 장사하던 모습 그대로 바쁜 걸음으로 만나기로 했던 상점 앞으로 왔다. 그는 어머니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연히 어머니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치 않았다고 했다. 그 때 마침 좋아하던 아이가 친구와 지나가는데 그래서 나는....하고A가 이야기 하는데, C가 묻는다.
 "어머니가 무슨 장사하셨는데?"
A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답을 할까 하는 표정이기보다 이야기를 그만두고 싶은 표정이었다.
 "너는 꼭 그런 거 묻더라." C에게 대답하고 A는 얼굴을 돌렸다. C는 내가 뭐? 하는 표정이었다. B가 얼른
 "됐어, 누구 연애 안 한 사람 있나 허허허허" 빈 웃음으로 마무리 했다.

 화장실에서 C가 물었다.
 "걔 왜 그래? 왜 얘기 하다 말고 화를 내?"
 "글쎄 허허허 A가 화 낼 수 있지,,, 화 낸 건 아니고.... 허허허"  B가 답했다.
C가 인심쓰듯 말했다.
 "내가 용서한다. 봐줘야지"
B가 말했다.
 "용서를 니가 하는 거니?
C는 못 알아 들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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