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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흥정은 붙이란다지만

몇이 모여 밥 먹을 식당을 정하려는데, 그 중 하나가 어느 브로그가 추천하는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가보니 식당은 멋졌다. 음식도 그 브로거가 추천하는 것으로 시켰다. 음식도 훌륭했다. 좋은 식당 많이 알고 잘 평가한다고 하여 나도 그 브로그 이름을 외워놓았다가  어디서 먹는 게 좋을지 막연할 때 몇 번 찾아보았다. 브로그는 광고로 화면이 어지럽기는 하나 여러 음식점, 커피숖, 디저트, 술집 등 자세하게 소개해 놓았기에 볼 만했다. 걸려있는 사진마다 멋졌다. 브로그 주인의 다른 여러가지 취미도 모두 고급하다....그런데 보다 보니 글이 부자연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거의 매일 호텔, 고급 레스토랑에 와인, 샴페인에 코스요리 먹으러 다니는데 이 수준의 식당에서 밥 먹다가 요리마다 사진을 찍는다? 먹을 때마다 글 올린다? 그러다가 "먹으러" 이웃나라 다녀오고 취미생활에 시간쓰고...취미를 위한 기기가 한두푼짜리가 아닌데 자주 사들이고...  젊은 사람인데, 일은 언제 하지? 하고 생각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뭐를 샀고 고급 식당에서 뭐를 먹었다고 남 앞에서 자랑하는 건 차원 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소비를 자랑하는 브로그가 많다. 유명하다는 젊은 여성 브로그를 보니 몇 백만원이상 나가는 핸드백을 색색이 지니고 포장지와 상자뿐만 아니라 영수증까지 사진 찍어 올렸다. 아기 유모차는 얼마 짜리고 아기 돐은 어떤 장소에서 했고 쇼핑차 외국 어디를 다녀왔다...그런 이야기와 사진으로 가득했다. 그 소비를 들여다 보다 나도 샀고 좋다고 댓글 다는 사람도 많았다. 부러워요, 예뻐요 하며 숭앙한다고 할까.  두어 번 구경했는데 고급 가구, 물건에 비싼 나들이에 미모까지 갖춘 주인녀를 부러워 할 만 했다. 그런데 어디를 봐도 생활도 살다보면 마주치게 마련인 고민도 생각도 보이지 않았다. 쑈케이스로 보이는 브로그와 좋아요, 예뻐요, 부러워요 댓글에서는 보여주기 위해 소비하는 듯한 비어있음과 허황한 화려함에 넋놓고 타인의 취향과 시선에 의존하는 따라심리가 보였다. 

익명은 사람을 대담하게 만들기도 하고 뻔뻔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성으로 억제하던 것을 얼굴을 내놓지 않으니 자랑거리 쑈SHOW하고 역시 익명이니 흉내내고 싶어하는 속내를 편히 드러내는 거다. 현실관계 없는 타인들 사이에 화려함을 연출하고 그것에 쏠리는 심리는 뭘까. 독립성이 미성숙한 아이에게는 인물이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있다. 건강하지 않은 애착관계에서는 분리불안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하게 비어있음을 화려함으로 덮는 그런 브로그와 이웃인 듯 흥미와 화제를 나르며 관계감을 느끼고, 브로그를 따라하여 내재된 분리불안을 희석하는 건 아닐까.

무리가 형성되면 역학 관계와 영향력이 생기는 게 사회 아니겠는가. 소비자의 균형잡힌 평가글이라면 정보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쌓이면 신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자의 파워브로거 사기 사건을 보니 신뢰와 영향력을 이용한 장사였다. 숭앙하는 듯한 댓글을 동원하여 브로거를 이끄는 자로 만드니 브로그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의존하고 따르는 자가 되었다. 방문자에게 부정확한 정보로 무책임한 구매를 이끌었다. 그 중 한가지가 인체에 위험한 깨끄미인 거다. 제조자와 브로거 사이의 커미션, 리베이트 등 불법 거래, 은닉, 탈세 이런 것들이야 실망스럽다해도 뒤지면 나오겠지만 더 큰 충격은 아마도 칭찬평가글과 공동구매가 실은 친절 가면을 쓴 마케팅이었고 커미션 사업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점, 익명 사회에서 금전적 이득 없이 봉사한다는 것은 허구일 수 있다는 점일 거다.

내가 보았던 브로거가 돈 받고 식당 음식을 좋게 써 준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거의 매일 일인당 기십만원 짜리 술과 코스를 먹고 거의 매일 포스팅을 하는 건 보통 사람의 일상의 한 부분이라기 보다 그 일로 먹고 사는 業으로 보인다. 고가 장남감, 오디오 기기 교환글 등도 파워브로거 사기 사건을 알고 나니 광고글이 아닐까 의심된다. 샤넬백 무슨 백 자랑으로 사치의 전사회화(?)를 이끌던 새댁이 소개하던 돐, 생일 파티, 파티 의상 등도 특정 업체 소개글에 지나지 않는가 싶다. 과하면 넘친다고, 깨끄미로 터질 게 터졌다. 파워브로그 쪽이나 휩쓸려 공구하던 소비자 쪽이나 잘 된 일이다. 파워블로거에게 관계감 대신 경계감을 느끼며 냉정한 눈길을 보내니 파블로서는 자승자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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