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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베니스에서의 죽음

타지우는 내 옛날 애인 이름이다. 토마스 만의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오는 미소년 이름에서 따왔다.
그가 내 애인이었을 때 내가 그를 속으로 그렇게 부르기는 했지만 자신이 그렇게 불렸던 것을 아는 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첫 모습에 반했다. 오똑한 코에 아름다운 얼굴, 반갑게 활짝 웃으면 꽃이 터지는 듯했고 말을 걸면 소녀처럼 부끄럽게 웃었다. 자기보다 키 큰 친구들 어깨에 손을 얹고 걷는 그에게서 큰 척하는 소년이 보였다. 타지우는 판단에 신중하며 아는 것만을 말한다고 그의 친구가 말했다. 개념과 철학의 세계를 헛발질하며 추측과 오류 사이를 헤메던 젊은 시절에 눈으로 본 것, 손에 쥔 사실에 대해서만 말한다는 그는 큰 매력이었다. 모두 안다고 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벌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가 "나는 그거 잘 모르겠는데", 무언가에 대해 단정하는 친구들 말에 "글쎄, 확인하고 이야기하자"라고 하는 그를 보면 내가 하려던 말이 내 속으로 돌아왔다. 그는 내가 확신하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읽은 지 사십년도 넘어 소설 속 사소한 내용은 거의 잊었으나 주인공 예술가가 타지우의 아름다움에 끌려 열정과 갈망에 고통스러워하며 베니스 골목을 걷는 타지우를 뒤따라 가고 그러나 이성과 도덕으로 자제하며 거리를 유지하고 골목 어디선가 가슴 아파하며 홀로 죽음을 맞이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나는 그 둘을 따라 베니스를 상상 속에 걸었다.

루키노 비스콘티가 토마스 만의 예술관에 대한 철학적 소설인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영화에 담았다. 소설은 1912년작  영화는 1971년작이다. 언어에 의존하는 철학을 영상으로 닮기란 어렵다. 
베니스 거리 풍경, 그 시절의 복색, 귀족들의 생활, 여행과 고급 호텔에서의 일상 모습 등 영화는 소설과 다른 보는 재미가 있었다. 오래된 필름이라 질이 좋지는 않았다

주인공 아센바하는 대중으로부터 존경받는 성공한 작가이다. 그는 초시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 형식미, 절제, 이성적인 것을 예술의 에센스라고 믿고, 자연, 육체, 감성, 아름다움 등 소멸하는 것을 비정신적인 또는 이성의 결여라고 믿는다. 믿는 것과 달리,  상반되는 두 세계가 작가 자신 안에 대립하기도 한다. 그는 이성적 자제력으로 감성적, 육체적인것, 관능적인 것을 관찰할 뿐 그것을 살고 사랑하지는 않았다. 아름다운 소년 타지우를 우연히 만나면서 그가 믿어왔던 형이상학적인 가치, 정신에 치우친 지금까지의 삶이 흔들린다. 그의 삶의 내면은 억제된 감정으로 마르고 텅 비어 있다. 소멸하는 한시적인 생명, 어린 육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그의 관능에 불꽃을 타닥 타닥 일으키고 동경과 갈증이 해일처럼 파괴적으로 밀려와 내면에 넘친다. 그것은 황홀하고 고통스럽게 그를 잠식한다. 그가 지향하고 살아왔던 형이상학적인 것, 절제, 이성은 감각, 관능, 살아있고 만질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화해하지 않고 넘치는 열정을 냉각시키지 못한다. 예술가로서의 아센바하는 고통속에 파괴되고 생명 아센바하는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보고 나서 극장 바로 앞의 레스토랑 부엌 272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은 비었고 웨이터는 친절하게 몇 번이고 내 식탁을 챙겼다. 고기가 썩 훌륭하지는 않지만 수프, 샐러드, 후식이 좋다. 감상이 휘발하기 전에 조용히 정리하며 시간을 갖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조용히 숨겨 놓은 내 단골 레스토랑이다. 

 



집에 돌아와 소설을 찾으니 없다. 그 대신 토마스 만 작가론이 잡혔

다.

 

송동준 편, 최순봉, 김철자, 안삼환.
문학과 지성사. 1977년발행. 
들추어 읽어 본다. 누렇게 바랜 종이 냄새가 시큼하다.

깨알같은 메모가 여기 저기 적혔다. 읽었던가. 까마득 하다. 그 때 젊은 나이, 매일 현란하게 바뀌는 세상에 눈을 빼앗기던 때, 독일 작가의 각진 이원적 세계관의 갈등과 고통스런 통합을 얼마나 이해 하였을까. 

오래된 책을 끼고 있는 이유는 뭘까. 책을 펼치면 감동이 되살아오고 인연과 추억이 정물화 배경처럼 펼쳐질 거 같아서일까? 그 때 기억이 먼지처럼 다 사라진 지금, 생각해 보니, 지나간 그 때 뭐를 궁금해 하고 뭐를 가슴에 담고 살았는지... 되집어 보려는 마음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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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과 도덕으로 삶과 예술을 이루어 온 그가 타지우를 가까이 할 수 있었을까. 아센바하가 타지우를 가까이 하였으면 그의 세계의 二原은 균형을 이루고 삶에 핏기가 돌고 무게를 덜었을까.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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