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비에 갇혔다. 잠깐 비가 멈추면 밤에도 열기가 올라왔다. 며칠 걷지 못해 나갈까 말까 망서리다 자정 다 되어 작은애와 철수와 나섰다. 강변이 토사물로 덮여 홍대쪽으로 걸었다. 토요일 밤은 홍대 주변은 날씨에 관계없이 젊은이들로 붐빈다. 몇 몇 집은 손님들로 그득하고 몇 몇 집은 불빛만 그득하다. 큰 길은 차들로 열기 가득하고 골목길은 음식점, 술집 냄새에 소음으로 끈끈하고 후덥지근하다. 여기 저기 젊은이들이 뭉쳐 서 있고 빗물 들이치지 않은 나무데크에는 맥주병 쥔 아이들이 앉거나 누워 있다. 정원수 어둠 아래 조용했던 주택은 다 환골하고 탈태하여 접객업소로 바뀌었다. 번잡하다. 조용히 산책할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 오랜 만에 거리로 나온 철수는 아무나 귀엽다고 쓰다듬으면 꼬리를 흔든다.
습기와 땀으로 온 몸이 끈끈해 졌다. 한 시간 쯤 걷다가 집 쪽으로 돌아섰다. 극동방송 담을 따라 걷는데 둔탁한 무엇이 퍽!하고 맞는 소리, 으아아하는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렸다. 걸음믈 멈추는데 또 퍽!하는 소리. 가던 길을 돌아서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극동방송 옆의 낮게 경사진 막다른 골목. 자동차 사이 어둠 속에서 늘씬한 젊은 사내가 보따리처럼 주저앉은 젊은이에게 발길질 했던 거다. 한 젊은이가 서있고 그 아래 시멘트 바닥에 뚱뚱한 젊은이가 머리를 웅크리고 앉아있다. 나는 얼른 철수를 끌던 끈을 작은애에게 넘겨주고 골목 안 몇 걸음 올라 어둠 속 두 남자 사이에 껴들었다.
"때리지마! 때리지마!" 내가 갑자기 팔벌리고 둘 가운데 서니 발길질 하려던 젊은이가 뭐지?하는 자세로 나를 보더니 허리를 세우고 나에게
"이모님, 저 나쁜 놈 아니거든요. 저, 저놈하고 여기 같은 대학 다녔고요...저 직장 멀쩡한 놈이고요...이모님...저 나쁜 놈 아니고요.......이런 수는 없는 거예요... "
숨 끊어쉬며 발길질 사연을 설명한다. 내용이야 모르겠고 거기서 내가 판단할 일도 아니고, 보니 젊은이는 키가 늘씬하고 얼굴도 반듯하게 생겼다. 머리카락이 땀으로 뺨에 붙었고 목으로 땀이 흐른다. 주저앉은 젊은이 등에 대고,
"야이새꺄, 너 그래서 나하고 친한 척 그랬니... 그따위로 살지마..... 남의돈으로 니가... 내 돈은 새꺄 공껀줄 아니..."
발길질하던 젊은이가 보따리 뭉치처럼 웅크리고 매맞은 머리통을 감싸쥔 등짝에 대고 씨근덕 거린다. 웅크리고 맞던 젊은이는 아무 댓구를 하지 않는다.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있을 뿐 고개도 들지 않는다.
다시 분이 솟구치는듯 발길질 자세를 잡기에 나는 맞던이 가까이 서서 팔을 벌렸다. 나를 치진 않겠지....생각하며. 땅바닥에는 지갑이 떨어져있고 아이폰도 웃옷과 가방도 나뒹굴고 있다. 나는 지갑과 전화기가 웅크린이 것인듯 하여 그의 앞에 놓으며,
"이거 봐, 이거 챙기고, 잘못한 거면 사과하고 오해면 해명하고 얼른 자리를 떠나..."
라고 했지만 그는 웅크리고 있을 뿐 아무 반응도 없다. 발길질 하던 젊은이는 땅에 떨어져있던 저고리를 웅크린 등 위로 팍 던지며
"야이새까 이모님이 너에게 선물한 줄 알아 이모님 아니면 새꺄 니버릇 ...." 뭐라고 하며 가방을 짊어지고 어둠 밖으로 나갔다. 골목 안에서 그가 가는 큰 길 쪽을 보니 주변의 젊은이 몇이 골목입구에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얼굴 액면가 꽤 나가는 내가 싸움 가운데 끼어들어 말리는데, 젊은이들은 구경만 하다니... 내가 맞기라도 하면 그들이 말릴라는가. 작은애도 그 중 하나다.
집으로 걸으며 "엄마가 오지랍 떨었니?" 하고 물었더니, "아니 잘했어. 엄마가 아니면 말리는 사람도 없을 거고 말리지 못했을 거야".한다. "근데 그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아". "발길질?" "응". "맞는 놈이 변명을 못하는 거 보니 못할 짓을 했는지도 모르지..." "학교 함께 다녔다는데. 맞는 게 약자지만 약자라서 옳다할 수 없잖아".
약자然하는 악한자. 공적공간으로 끌고 나올 수 없는 해악질, 공적공간으로 끌고 나와도 법적, 사회적 판단을 왜곡하는 factor들. 그 factor들은 대개 돈, 권력이다. 그 해악에 대한 개인적 응징. 어떤 것을 폭력이라고 불러야 할까. 더 큰 폭력과 작은 폭력으로 보아야 할까. 後폭력을 불러오는 先폭력이 있다. 의도적 폭력과 우발적 폭력도 있다. 습하고 뜨겁고 끈끈하고 생각도 불투명한 밤이다. 어제 일기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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