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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타인의 땅 - 멕시코 영화제

 


2009/09/03 03:10
 

미란다는 자신의 오래된 조상인 아밀라 할머니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할머니는 일기장에 자신의 집안이 가지고 있던 재산과 땅을 모두 빼앗기고 텍사스에서 추방되었던 이야기를 세세하게 기록하였다. 미란다는 가족이 겪은 역사를 알기 위해 미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는 미란다 조상의 땅을 뺏고 할머니를 탐하던 집안의 자식. 그들의 관계는 비극.

과거와 현실의 이야기를 오가며 한 가정의 역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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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 이야기가 밀도있게 교차되다가 곁가지를 치기도 하고하고 억지로 연결고리를 만든 듯한 면이 있다. 멋지게 보이려는 허세도 느껴진다. 색은 좀 칙칙하고 그러나 그런 것까지 포함한 멕시코를 보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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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밀라는 가문이 오래 살고있던 텍사스에서 남편과 아름다운 집과 멋진 농장을 일구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잃기도 했고, 조상들도 묻었다.

멕시코가1845년 미국에 합병된 텍사스와  국경조약을 맺은  다음날 그들은 텍사스 정부로부터 그 땅에서 퇴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아밀라의 가족은 무력적인 텍사스 정부에게 (또는 힘을 가진 정복자쪽의 개인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대대로 일군가족의 역사와 재산을 뒤에 남기고 묘비석만을 싣고 새로 그어진 국경으로 가다가 폭우를 만난다. 강물은 불 밤이 깊었으나 국경 초소의 텍사스 군이 두려워 가족은 강물을 건너야 했다. 말과 마차와 묘비석을 강물에 잃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녀의 가족이 떠난 후 텍사스 장교는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 퇴거명령서는 농장이 탐나서 자신이 위조한 것이라고 밝힌다. 

아밀라는 텍사스를 떠날 때부터의 일을 기록했다. 일기와 오고간 편지가  손녀 딸 미란다에게 발견되고, 미란다는 가문과 땅을 찾으러 샌 안토니오를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한다. 그곳에서 미란다 만나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물은 아밀라를 추방시킨 장교의 자손이며 현재 농장의 소유자.

그는 미란다와 결혼하려다 거부당하자 자신이 법적주인이라고 주장한다. 미란다는 그에게 총으로 쏜 뒤 그의 녹음된 고백을 경찰과 기자 앞에서 들려주려고 하려다가 경찰의 총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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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기던 시절의 고통은 생생하나 그 시절 멕시코 정부에 대한 후세의 느낌, 빼앗긴 역사에 대한 회오, 주인행세하는 자에 대한 분노, 응징하려는 힘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딸이 불법 입국자로 미국에서 추방되어 추후 미국으로 갈 때 문제가 생길 것이 가장 큰 걱정일 뿐. 동생은 언니편도 아버지 편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다.

과거에 내 것이었으나 저항할 수도 회복할 수도 없는 땅이라는 시선이 기본으로 깔려있고 저항했다가(밀입국) 비자가 거부되는 불이익에 대한 걱정이 아버지를 통하여 드러난다. 미란다의 땅을 찿으려는 노력도 남녀간의 흥미, 연애에 희석된다는 느낌이다. 

아밀라와 장교사이의 편지를 전달하던 아밀라의 집안의 노예 인디안이 아밀라가  편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장교에 의해 살해되고 그 인디안의 동물 문신이 있는 등가죽이 아밀라에게 전해진다. 그 가죽은 편지사이에 끼워져 손녀딸들에게 발견되는데, 극 중 어느 누구도 그 인디안의 죽음에 동정도 슬픔도 표하지 않는다. 필시 그들의 선조였을 인디안이 스페니시 멕시칸이 아닌 노동을 제공했던, 목숨이 지배자에게 달린 노예였을 뿐이라는 시선이 드러난다.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이 (또는 멕시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누구로 보는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인디언 피부색의 아밀라와 남편은 세대가 내려오면서 금발의 손녀딸로 바뀐다. 스페인어를 쓰는 그녀는 미국에서 만난 멕시코 출생의출생의 노인이 스페인어를 쓰는 것으로 자신과 한 뿌리임을 확인하고 옛 땅을 찿는데 도움을 받는다. 

16세기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쌓인 지배자 스페인의 문화적 언어적 퇴적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보고있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이는 뿌리를 "그 땅, 그 땅의 언어" 가 아니라 스페인(라틴)에 두고 있다는거다.

뿌리를 스페인에 두고 있는 아밀라가 미국에 빼앗긴 땅은 스페인에 의해 지배되기 이전에는 인디언의 땅이었다는 것은것은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침탈당한 것은 이야기하나 자신의 침탈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중적 자세가 보인다.

촘스키는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에서 멕시코의 유명한 환경단체 대표 호메로 아리드지스 Homero Aridjis의 말을 전한다.

"멕시코는 세 번째 정복에 신음하고 있다. 처음은 무력에 정복당했고, 두 번째는 정신적 정복이었고, 세 번째는 경제적 (1994년 북미자유무역 협정 NAFTA) 정복이다 " 

500년 가까운 식민지역사는 삶의 틀인 언어와 문화를 교체했고 자신의 정체성을 "배운대로" 받아들이게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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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로서는 좀 궁금하고 따로 좀 공부해야겠다. 라틴아메리카라는 말은 1830년 프랑스가 중남미에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인데, 언어적 문화적 구별이다.

이 이름에는 1430년 이전의 중, 남미 대륙의 존재와 역사는 포함되어있지 않다.

 인디오 원주민을 포함한 인구 구성, 원주민 문화,그 땅의 역사를 담고 있지 않다.  

근자에 일부가 이름을 달리 부르기도 하나 오래동안 스스로를 과거 지배자가 붙여준 이름 latin 아메리카라고 부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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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출신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에서 라틴 여성의여성의 강한 모성, 가정, 가문을 끌고 나가는 불굴의 의지, 지치지 않는 모험심을모험심을 강하게 느껴졌는데, 이 영화에서도 아버지, 남편에 비하여 가문의 딸, 자식의 어미로서 자신이 일군 것을 포기하지 않고, 뿌리를 찿으려 모험하는 의지의 여성을 보여준다.보여준다. 작품의 우연한 공통점인지 중남미 여성의 특질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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