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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박 노해 사진전, 라 광야 - 빛으로 쓴 詩

 2010/01/24 17:00

갤러리 입구에 걸린 사진이 말을 건다.

몇 천년 전부터 여기서 살아왔어요. 저 뒤의 너른 들판은 우리를 먹였고 우리가 돌아가 뼈를 묻을 곳이에요. 그 앞을 우리의 할애비의 할애비처럼 오래된 책을 낭송하며 걸어요.

 

 갤러리를 찿으며 충무로 골목을 걸으며 가볍게 주고받던 우리들 목소리는 사진 앞에서 잦아들었다.

 내가 평원을 걸으며 그곳 새봄의 공기를 마시는듯했다.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손으로 고른듯 단정한 밭은 경건하다. 오래되고 소박한 삶의 방식은 그러나, 지켜내기 힘들다.

 

쿠르드 어린이 사진. 이 아이들은, '무쟈라드'(red card)다. 시리아 정부가 쿠르드인에게 발급하는 붉은 색의색의 무국적자 신분 증명서 무자라드. 이 신분으로는 여행도 대학도 취업도 할 수 없고 차도 전답도 소유권도 인정되지 않는 사회적 죽음의 Red Card다.


무려 30만명이 무자라드다.  아이들은 황무지의 돌덩어리처럼 내굴리며 자란다.

어린 뼈하나 여물지 않은 나이에 세상이 그들을 사라지라고 어둠속으로 밀어넣는걸 알아버린다.

작은 몸뚱이는 밤의 어둠 속에 숨죽이며 모국어로 노래하고 춤춘다.

나는 이 사진을 오래 들여다 보았다.

가슴에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눈물이 났다.

 지상에서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 공연. 한밤 중, 번득이는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흐린 불빛속에 벌어진 쿠르드 아이들의 전통 공연. 단 한명의 관객인 나를 앞에 두고 감춰둔 전통 복장을 꺼내 입고 금지된 모국어로 노래하고 춤추눈 시리아 사막의 무릎 꺽인 어린 낙타들.


 알 자지라 평원의 양치는 청년들. 광활한 황금의 대지. 그러나 지금은 빼앗긴 땅.

 

햋빛이 따뜻해도 웅크리고 앉았는 젊은 심장에 모래바람이 불거다. 안고 살아야하는 절망감에 분노할 힘도 빼앗긴 굽은 등. 가슴이 메어온다. 눈물을 슬쩍 닦고 아닌 척 사진을 본다. 슬퍼도 매일 빵을 굽는 어미, 이스라엘 공습에 가족을 다 잃은 열세살 팔레스타인 소녀 표정...자꾸 눈물이 흘렀다. 갤러리 구석, 벽을 마주보고 울었다. 아마도 다 울고 나야 나머지 사진을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안내 테이블에 있던 직원이 휴지를 건네준다. 매일 몇 분이 눈물을 비치세요한다.  

수천년 살아온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쿠르드, 레바논. 험한 눈길 깊은 산에 쫓겨들어간, 나라없어 모국어를 말 할수 없는 쿠르드.  그들이 거기 있음을 기억해주자. 그곳이 그들의 땅이었음을 기억해주자.

그들의 뼈속 깊은 슬픔을 느끼며.

 

(작은 글씨는 박노해 시인의 글)

http://www.ra-wildern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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