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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박노해 사진들-빛은 때를 타지 않는다

2010/10/21 03:07

나쁜 책을 읽고 가슴에 오물이 찬 듯 했다. (읽어야만 했쓰...ㅠㅠㅠ) 가래라도 밷으면 될까. 어쩔 줄 모르겠다. 작년  -라 광야-사진전을 본  감동을 기대하며 세종문화회관 박노해 사진전으로 향했다. 

번에도 사진이 마음을 조용히 흔든다. 작가의 시선, 이라기 보다 그들 사이에 그들처럼, 그들의 그림자처럼 스며들어 그들의 외침과 고통과 기쁨과 평화와 전통을... 사랑으로 담는 그의 카메라가 놀라웠다. 따뜻한 카메라.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 오지 속에서 한계를 자신을 낳아준 땅으로 알고 생명을 지키고 존재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사진들과 지난 번 라 광야 때의 사진 몇 점이 걸려있었다. 사진이 경건한 詩다. 그의 글은 사진에 깊이를 더한다. 라 광야의 "무릎 꺽인 어린 낙타" 와 쿠르드인 가족 사진을 보니 보니 다시 가슴이 아파왔다. 가슴을 누르며 사진을 하나하나 보는데, 또 눈물이 난다. 인간이 인간에게 준 고통, 역사 속 페이지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힘들어서인가? 그 두 사진은 나에게 무언가 호소하는 듯하다.  

8시30분 마감에 가까워지니 박 노해 시인 옆에 기다리는 사람이 줄어든다. 기다렸다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청했다. 위험하고 거칠고 깊은 곳에 가서 우리가 알고 느껴야 하는 삶들을 전해 줌에  감사하다고... 그는 일어나서 악수 청하는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싼다. 그의 손이 부드럽다. 5년 쯤 후에 다시 전시회를 기획 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동안 아쉬울 테니 가끔 지난 사진도 보여달라고 청했다. 나이가 50이 넘었을터인데, 거칠은 곳을 10년씩 다닌 사람, 눈이 맑기 짝이 없다. 

신기한 일이다. 사진을 보고 나니 조금 전까지 가슴에 가득찼던 오물감- 그 책을 쓴 이의 음험한 의도, 허위, 불순한 유도에 대한 분노 등-이 사라졌다. 가슴이 빛에 씻겨 정결해 진 듯하다. 이리도 평화롭고 고마운 마음일 수가 없다

노을녘에 종려나무 심는 사람
Man planting a palm tree at sunset Sudan, 2008.

누비아 사막에 석양이 물들면 하루 일을 마치고 종려나무를 심는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치면 말라 죽고 다시 심으면 또 말라 죽어가도 수단 사람들은 날마다 모래둑을 북돋고 나일 강물을 길어다 종려나무를 심어간다. 사막의 수행자처럼.

에티오피아의 아침을 여는 ‘분나 세레모니'
The Ethiopian morning starts with a ‘   Bunna Ceremony’, Ethiopia, 2008.

에티오피아의 모든 아침은 집집마다 향기 그윽한 ‘분나 세레모니’(커피의례)로 시작된다. 무쇠판에 커피콩을 볶고 나무절구에 빻아서 천천히 끓여내는 것은 젊은 어머니가 주재한다. 할머니는 볶은 보리를 나눠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 잔은 우애의 잔. 두 번째 잔은 평화의 잔. 세 번째 잔은 축복의 잔. 가족들은 세 잔의 분나를 마시고 포옹을 나누며 해 뜨는 대지의 일터로 떠난다.

내일은 둥글다
Tomorrow is round, Sudan,206 

아침 해가 떠오르면 엄마는 일터로 나가고 아빠 없는 다섯 형제는 축구를 하며 논다. 흙먼지 날리는 빈민가의 작은 공터지만 아이들은 공 하나만 있으면 배고픔도 슬픔도 스스로 이겨낸다. 공은 둥글고 내일은 둥글기에.

 안데스 고원의 들녘
fields of the Andean highlands, Peru, 2010.

안데스 고원에 건기가 시작되면 수확을 하는 원주민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연노랑빛 귀리와 진노랑빛 보리 연초록빛 알팔파와 진초록빛 따루이 적갈색빛 끼누아로 눈부시게 빛나는 들녘은 대지를 화폭 삼아 노동으로 그려낸 거장의 작품만 같다.

걷는 독서
Reading whilst walking Syria, 2008.

근대의 묵독 이전의 낭송 전통으로 걷는 독서. 눈 덮인 자그로스 산맥을 달려온 바람은 맑다. 그는 지금 자신의 두 발로 대지에 입 맞추며 오래된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선조들의 복장과 걸음과 음정 그대로.

 

 

 

 

 

 

 

  


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
A secret performance, the saddest on Earth,  Syria 2008.

한밤중, 번득이는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흐린 불빛 속에 벌어진 쿠르드 아이들의 전통공연. 단 한 명의 관객인 나를 앞에 두고 감춰둔 전통복장을 꺼내 입고 금지된 모국어로 노래하고 춤추는 시리아 사막의 무릎 꺾인 어린 낙타들.

내 똑딱이 사진은 차마 올릴 수 없다. ㅠㅠㅠ 하나만 올리자.

변색된 사진이 마치 오십년 전 백년 전 아버지, 할아버지의 고된 금,은 캐던 시절을 보는 듯하다.

얼마전 칠레 광부 33명이 구출되었다. 미디어는 33명 광부들의 생환만을 다루었다. 그들이 왜 그리 깊이 들어가야 하는지 왜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바깥 세상이 황금으로 번쩍여도 그들은 곡괭이 들고 더 깊이 깊이 삶이 희박한 곳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이곳은 페루  까미 광산 입구. 박노해 시인은 그곳에 들어갔던 경험을 말한다.

http://www.likethem.kr/board/bbs/board.php?bo_table=na_board&wr_id=781&page=0

 

 

박노해 사진전 홈피 http://www.likethe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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