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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딸네 아파트 짐 정리

아이가 출근한 월요일. 12월 11일.
서울에서나 여기서나 아이가 방 바닥, 책상 위에 물건을 흩뿌리고 사는 건 똑같네. 6인용 식탁 넓이의 책상 위에 화장품, 책, 노트북, 잡동사니 한가득.
회사가 제공하는 거실 하나 방 두개짜리 아파트에 방 하나는 안쓰고 있다. 그 방에 대형 트렁크 세개 다 펼쳐진 체 당장 안입는 옷, 쟁여 온 화장품 등이 섞여 있다. 서울로 돌아오고 싶을만큼 우울한 한달이었으니 짐을 가지런히 정리할 생각이 없었겠지. 책, 노트 등은 꽂아놓고 짐은 종류별로 빈 서랍 등에 옮겨 놓고 트렁크는 비우고 세워 놓는다. 빈 내 트렁크도 나란히 세워 놓는다.
무기력하면 질서가 무너진다. 새로운 환경, 공간에서 우울해 지면 스스로 질서를 세울 수 없다. 역으로 사소한 일상이라도 순서를 정하고 사물의 질서를 세우고 지키려 하면 탈우울할 수 있을 거 같다.

가구, 냉장고, 부엌 살림이 다 있다고 해 모두 이사짐에 부치고 내가 들고 온 건 없었는데, 찬장을 보니 접시 몇 장에 다 벗겨진 후라이판과 냄비 두 개. 뚜껑도 없어서 아이는 후라이판으로 냄비 뚜껑삼아 밥을 지어 놓았다. 할 기운도 없고 해 먹을 도구도 없었던 한 달을 대충 누룽지와 컵라면으로 지냈을듯 하다.
싱크대 아래 작은 물방울이 또 옥 또 옥 떨어진다. 없는 걸레 대신 휴지심, 골판지 등으로 물을 빨아들이게 하고 회사 담당자에게 알리라고 톡을 보냈다.
회사 인사팀에 하우징 (아마도 해외에서 오가는 직원들 거주 편의 봐 주는 부서인듯) 담당자-에이젼트-아파트 소유 회사 등을 거쳐야 하는지 12월이라 휴가자가 많아 그런지 일주일이 지났어도 배관공이 온다는 연락이 없다. 느리다. 일 할 사람이 없어 수배가 어려울 수도. 있어도 주 36시간이니 방문 시간 잡기가 하세월일 수도. 하기야 “일 할 사람 부족”이 기차 운행 취소 사유로 고지 될 정도였으니.

밤에 하노버 시내를 걸어 봤다. 크리스마스 등이 도시에 생기를 주고 있다. 사람들이 불빛 아래 웃으며 모이고 걷는다.
방향도 모르는채 아이따라 걸어본다. 달고 뜨거운 와인을 마시고 크리스마스 임시 점포의 물건들을 구경했다.
전 날 저녁에도 된장국 끓여 먹었는데 날이 춥춥하니 계속 뜨거운 국물을 찾게 된다. 주인이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 라멘집은 만원이다.
이웃 좌석이 듬성듬성 비어있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쌀국수를 먹었다.
많지 않은 손님에 종업원은 바쁘지 않은데 서비스는 느리다. 음식도 메뉴얼대로 ‘처리’해 낸듯. 어떤 집이 성공할 집인지 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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