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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김홍도의 풍속화와 박수근

 70년대 초에 어느 화가의 그림 전시회에 갔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미술 교과서에 나온 그림이외에는 인쇄 조악한 화첩이나 보았을 뿐 화랑에서 그림을 본 기억이 없다. 친구 손에 이끌려 갔던지라 나는 무심하게 그림을 보고 있었다. 한 점 한 점 보고 있자니 물감을 칠하고 말리고 덧칠했을 시간이 우툴두툴 흙처럼 굳은 화면이 눈에 들어 왔다. 아기 업고 엄마 기다리는 소녀, 함지 이고 장사 오가는 여인네, 좌판을 펼치고 쭈그려 앉아 아마도 소리없이 손님 기다리는 장터의 사내들. 보고 있자니 가슴에 물기가 돋았다. 그들은 모두 얼굴이 없고 고개 숙이고 있고 등을 보이고 있고 아무 소리 없는 회색의 공기 속에 흙바닥에 앉아 있었다. 쪼그리고 앉은 차가운 흙바닥. 얇은 고무신. 내가 찬 공기 속을 걷는 듯 했다. 소리없는, 익명의, 기다림에, 쓸쓸함에 눈물이 나왔다. 그림 걸린 벽의 모서리를 마주하고 혼자 눈물을 흘렸다. 


 그 화가의 이름은 박수근이었다. 뭐가 뭉클했고 왜 눈물이 났을까? 가끔 속으로 묻다가 덮었다. 이후 박수근 그림을 보고 해설도 읽었다. 이미 느낀 그림을 굳이 '이해'하려 했던 거다. 


 박물관 강의 시간에 김홍도 그림들을 보았다. 전시실 안에 홀로 존재하지 않고 포장지로 상품 도안으로 상업화되어 우리 생활 안에 들어온, 그래서 지나치던 그림을 큰 화면으로 보니 새로웠다. 어쩐 일인지 박수근의 그림이 떠올랐다. 10대의 마지막 해에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그림 속 비밀이 저 200년 된 된 그림 속에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박물관 전시실에서 김홍도의 그림을 찬찬히 보았다. 전시실 벽 모니터에 펼쳐지는 김홍도의 그림을 보았다. 그림도 그림 속의 사람들도 친숙하다. 인터넷에서 김홍도의 그림을 찾아보았다. 그의 그림에는 남녀, 여러 계층, 여러 직업, 넓은 연령층의 사람들이 나온다. 벼 타작하는 농부들, 그 앞에 자리 펴고 모로 누워 담배피는 양반, 무거운 등짐지고 산비탈 길 오르느라 허리가 휘는 하인, 그 앞에 말 타고 산 오르는 양반, 나무 지게 내려놓고 모여 고누놀이하는 소년들, 그 앞에 곰방대 물고 누웠는 사내, 지붕에 기와를 올리는 인부들옆에 서서 뭔가 훈수 두는 듯한 사내, 힘 겨루고 있는 씨름꾼을 둘러 싸고 왁자지껄 둘러앉은 사내들, 서당 바닥에 둘러 앉은 소년들과 훈장, 흥이 오른 춤꾼을 들러 싸고 앉아 소리와 박을 맞추고 있는 악사들, 개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빨래하는 아낙들과 머리카락 다듬고 있는 엄마 옆에 매달린 벌거숭이 아이, 아마도 농부들인듯 새참을 먹는 사내들, 그들을 등지고 그들처럼 바닥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 그 옆에 앉은 소년. 활을 배우는 이, 자세를 잡아 주는 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활을 조정하는 이. 사내는 지고 여인은 아이 업고 머리에 이고. 장에 나서는 걸까.


 삶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왁자지껄 소리가 나기도 하고 손뼉에 박자 맞추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이랴 이랴 말 몰고 소 모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새참에 배 그득해져 꺼르륵  트림 냄새가 나기도 하고 길쌈하는 젊은 여인 옆에 아이 업고 섰는 시모와 어린 아들에게서는 재촉하는 한 마디가 들리는 듯도 하다. 참으로 생기있다. 

 

그림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이름이 다르고 소중한 존재라서 김홍도는 그들 각각에게 모두 다른 표정을 주었다. 우물가에서 물 떠주는 아낙을 곁눈질 하는 사내, 아이 업고 머리에 한 짐 이고 나서는 아내를 바라보는 사내, 씨름꾼 주변 무리들이 제각각 응원하는 표정, 진흙을 이기고 기와를 올려 던지고 지붕 위에서 기량을 뽑내는 사내들의 몸짓. 김홍도는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는 자신이 그들 중 하나인 듯 그들을 보았기에 인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생생한 표정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살아있는 표정은 김홍도의 그가 그렸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그림에는 원근이 없다. 중국과 일본 그림을 접했던 그가 원근법을 인지했을 수 있겠으나 그는 거리와 조망에 맞춰 인물들을 배치하지 않았다. 인물은 모두 비슷한 크기로 그려졌다. 훈장, 양반이 중요하다고 더 크게 그리지 않았다. (훈장은 어른이라서 아이들보다 크게 그렸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도 그들을 겹치게 하지 않고 각각 인물에서 비슷한 크기의 공간을 주었다. 씨름판의 둘러앉은 군중처럼 뒷모습을 그려야 할 경우에도 옆 얼굴의 표정으로 익명을 면하게 하였다. 그의 마음 속에 표정이나 소리를 생략해도 상관없는 존재는 없다. 인물들이 그의 마음에 가깝고 그들에 대한 관심이 균질해 그는 각각에게 비슷한 크기와 공간 속에 살아있게 만들었던 거라고 생각된다. 그것을 나는 마음 심자 심근법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의 그림에는 배경이 없다. 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가옥, 골목과 같은 구도도 없다. 인물이 중요한 탓이다. 그림 전체에서 공간이 드러나지 않으나 인물의 표정과 옷자락, 다른 인물과의 관계에서 개별 인물은 입체감을 갖는다. 


 박수근의 그림을 찾아보았다.

 축적된 시간을 느끼게 하는 담갈색, 황갈색의 박수근 그림 바탕은 흙 벽, 거친 베 바닥을 연상시키는데, 김홍도의 누르스름한 바탕색, 인물들이 입었음직한 의복 질감과 소박함에서 닮아 있다. 인물로 수렴하느라 색도 배경도 가하지 않은 김홍도의 그림과 극히 가는 선으로 단순화 시킨 박수근의 인물, 나무, 생략된 배경은 회화적 장식없음, 단순성에서 닮아있다.


 거칠거칠한 바탕에 인물들은 가는 외곽선으로 평면화되어 대개 수평으로 열지어 있다. 박수근의 그림에도 배경이 없다. 원근법도 없다. 김홍도가 심근법(마음이 정하는 거리와 크기대로 그린다는)으로 인물을 평면 배치하였다면 박수근은 압착하여 돌판에 파 넣은 듯 평면적이다. 


 김홍도와 박수근 그림의 가장 큰 공통점은 그들이 그린 대상일 것이다. 김홍도가 그린 울고 웃고 일하던 장삼이사는 1950년대 박수근에게 와서는 쓸쓸하고 가난한 수많은 박수근이 되었다. 김홍도가 그들 속에 하나인 듯 그들을 그렸던 것처럼 박수근도 그의 삶과 다르지 않은 그들의 삶을 그렸다. 박수근의 인물에는 표정이 없다. 대개 뒷모습에 옆모습이고 정면이라도 표정은 생략되어 있다. 그의 그림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시간을 담고 있다. 김홍도가 표정과 동작을 그리는 것으로 활기를 불어넣었다면 박수근은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묵음의 회갈색 공기 속에 담아냈다.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고 박수근을 떠올리게 했던 다른 한가지는 인물들의 자세였다. 박수근의 인물들은 흙 바닥 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빨래를 하거나 나물을 캐거나 (장터에서) 손님을 기다릴 때도 바닥에 뭐 한장 깔고 앉거나 쪼그려 앉아있다. 김홍도의 그림 속 인물들도 흙바닥, 실내(버선으로 보아)맨바닥에 앉아 새참을 먹기도, 춤, 씨름을 구경하기도, 서당에서 공부하기도 한다. 그들 모두 땅과 맨 살로 닿아있다. 박수근은 아이 업은 인물을 많이 그렸다. 동생 업은 어린 누이, 함지박 지고 아기 업고 장에 나서는 엄마, 아기 업고 장터에 앉은 엄마는 그의 그림에 주인공이다. 그들의 자세는 가족, 보살핌, 기다림과 동시에 삶의 고단함을 느끼게 한다. 함지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 동생 업은 누이의 기다림이 가난으로 부터 가족을 지켜 냈으리라. 김홍도 그림에도 아기업거나 보살피는 어머니, 할머니가 등장한다. 아비가 농사일하듯 어미, 할미는 아기 돌보며 길쌈하며 새참을 먹이며 가족을 지켜 냈으리라.

  
 두 화가의 그림에는 우리가 살아왔던 모습이 담겨있다.  문화가 꽃피던 정조때의 김홍도와 전쟁 후 피폐한 시기의 박수근의 삶의 배경은 달랐어도  종이와 캔버스가 다르고 물감이 달랐어도 그들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려냈던 점은 닮아있다.  가장 큰 공통점은 '우리의 삶을 담다'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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