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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옛날 여름 이야기

2010/08/11 07:13

태풍이라는데, 바람 센 굵은 비 한 두시간 내리더니 그친다. 그나마 식은 바람이 불어 좀 살겠다. 비가 들이치거나 말거나 창문을 다 열어놓고 현관문까지 열어놓았다. 날이 너무 뜨거우면 채소들도 늘어지고 녹는다. 강가 크레인에 올라간 사람들도 열기에 걱정된다. 비바람이 너무 세면 그것대로 걱정이지만. 그래도 비가 좀 더 내려 땅과  열기를 식혀주었으면... 하루 종일 바람을 쐬도 실내 온도는 내려가지 않는다. 벽이고가구고  공간 깊이 열기를 품고있는가보다. 

어릴 때 기억인데, 모시입는 계절은 한여름이니 7,8월이겠는데, 이렇게 덥지는 않았었다. 마루에서 엄마와 작은 엄마가 할머니 모시 치마를 이쪽 저쪽 끝을 잡고 숯 올린 다리미로 다렸다. 풀을 메겨 밟고(다듬이질 했던가?) 편편해진 모시를 다려서 매끈하게 하는 거였다. 숯을 펴서 다리미에 담고 모시 치마치마 네 귀퉁이 각 잡아서 다리려면 두사람이 필요하다. 모시 저고리는 큰 개발바닥보다 조금 큰 인두로 다린다. 깨끼 저고리.

깃, 섶을 구석구석 판판하게 다리려면 인두가 다리미보다 나았다. 인두는 타는 숯 사이에 달궜다가 대야의 물에 담가 치익 소리 내는 걸고 온도를 보는 듯 했다. 그렇게 다려놓으면 할머니는 저고리 딱 만져보고는, 풀이 세다! 풀이 약하다! 한마디하고는 물에 던져 넣었다. 아이고 할머니, 왜 그러셨어요. 그 때 내가 좀 더 컸다면, 들이받았을듯하다. 불효라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그러는거 아니거등요 하며.  

손 많이 가지만  엄마는  모시치마 저고리를  좋아해서  매해 여름 옥색이나 그런 시원한 색으로 바꿔가며 챙겨입었다. 제대로 저고리 모양은 아무래도 외부용이고, 집안에서 입기 편한 반 저고리도 있었다. (남자의 잠뱅이 비슷) 모시를 입으면 멋장이였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엄마는 세모시 치마저고리를 이만큼 시원한게 없다며 꼼꼼히 다루었다. 엄마가 며느리를 본 시절에는 모시처럼 엉금한 통풍되는 화학섬유가 많이 나왔다. 그런 것들의 이름중 하나가 깔깔이? 카사리? 구김이 가지않아 다리미질로 부터 해방된 원단도 있었다. 데도롱.  

그래도 이름있는 자리에 갈 때는때는 모시를 빳빳하게 챙겨입고 나섰는데, 엄마 연배의 어른들은 모시를 떨쳐입은 엄마에게 어쩜 이리 고우세요하고 찬탄했던 거 같다. 엄마는 내게도 남녀 모시 한 벌씩 챙겨주었는데, 입을 줄도 모르고, 입을 일 도 없었고, 이젠 입으면 골동품 대접을 받지나 않을까. 모시는 접어두면 부러진다 해서 돌돌말아 재운지 삼십년이 넘었다. 

엄마가 늙어가면서 세모시는 물론이요, 중모시도 만지기 귀찮아했다. 집에서 오빠나 아빠가 입어 낡은 런닝싸쓰로 여름을 났다. 반드시 낡아서 손수건처럼 얇아진 런닝이어야 한다. 흰 런닝을 적셔 맨 몸에 그냥 걸치면 샤쓰는마르면서 시원하다.  엄마는 브라쟈 모르는 (없던)세대라 맨 몸에 젖은 샤쓰를 그냥 입으면 등이고 가슴이고 샤쓰가 붙는다. 그땐 엄마의 그런 차림을  질색했다. 지금은 육남매를 키워낸 엄마의 쳐진 가슴이 그립다.

여름이 옛날보다 더 더워지기도 했지만, 나갔다 들어오면, 좀 꿈지럭거리면 땀이 찬다. 그 때마다 샤쓰 갈아입고 빨래꺼리 만드는데, 그럴 게 아니라 헌 난닝구 (엄마가 부르는 이름) 적셔서 입어볼까.  유원지 물가에서 젖은젖은 샤쓰 입고 노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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