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웃으면서 영화 봤다. 앞의 한 10분을 놓쳤다. 영화는 재미있고 빠리 배경 풍광 좋고 연기 맛깔나고 간간히 웃게 만든다. 우디 알렌 영화를 보다 보면 하하하 웃기도하지만 그 보다는 숨긴 거 들킨 기분으로 ㅋㅋㅋ하게 된다.
소설가 지망생 질과 약혼자 이네스는 파리에 여행왔다. 친구 폴 커플을 우연히 파리에서 만난다. 폴은 함께 파리를 구경하자고 청한다. 베르사이유궁에서 폴은 일행에게 베르사이유에 대해 해설. 보고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폴의 썰을 듣는 시간이 되었다. 이네스는 폴의 지식에 감탄하고 폴의 애인은 폴이 자랑스럽다. 끝도 없이 설명을 이어가는 폴이 멋져 폴의 애인은 궁전보다 폴을 사진 찍는다. 관광의 중심이 바뀌었다고 할까. 여기서 웃음. 질은 그가 싫다. 어쩐지 가짜 지식인같다...고 생각한다.
폴은 로댕 조각 앞에서는 로댕에 대해서 모네 그림 앞에서는 모네에 대해서 지식을 늘어 놓는다. 빠져 듣는 이네스에게 폴의 애인은 폴은 로댕전문가죠, 모네 전문가죠라고 소개한다. 폴의 지식은 일반적으로 다 알려진 거거나 보통 관광객에게는 쓸데 없이 자세한, 지식을 위한 지식이거나 한 부분 틀렸거나 하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자신감을 겸손 코스프레 하며 if I am not mistaken 소리를 달고 산다. 여기서 웃음.
가이드가 폴에게 그게 아니구요... 틀린 점을 집어준다. 내가 틀리다니, 나를 숭앙하는 일행 앞에서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 폴은 가이드가 틀렸다고 우긴다. 질이 나선다. 폴의 입버릇 if I am not mistaken을 슬쩍 흉내내며 내가 로뎅 자서전을 봐서 아는데, 폴이 잘못 알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기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고 출처까지 밝히니 폴은 움찔한다. 여기서 웃음.
아네스는 이번에는 약혼자 질에게 감탄한다. 오, 자기, 언제 로댕 자서전을 읽었어? 멋져. 라고 하자 읽긴 내가 뭐하러 자서전 같은 걸 읽냐? 그냥 해 본 소리라고 한다. 여기서 웃음.
넷은 와인 시음회에 간다. 해 질녁 파리를 내려다 보는 호텔 옥상. 호화돋는다. 누군가 (장인인가 폴인가) 나는 원래 절대적으로 프랑스 와인만 마시는데 오늘은 켈리포니아 와인도 먹지. 여기는 나빠밸리에서 머니까. 여기서 웃음.
극장에서 사람들이 웃었던 장면들 중 몇이다. 우디 알렌의 영화에는 강박적으로 말의 유희를 부리는 지식인이 등장하여 웃음을 주는데 여기서는 지식으로 난체하는 폴이 그 역할이다. 허세에 넘어가 사랑으로 착각하다 현실에 부딛어 흔들리는 상대역도 세트로 등장하는데, 폴의 썰에 넘어가는 애인과 약혼자가 그렇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 언제가 경험했던 것을 떠올리며 관객은 ㅋㅋㅋ 한다. 나 자신이기도 하다.
사는 게 내가 마음 정한대로 되는 게 아니니 절대적으로 어쩐다고 말하기 쉽잖다. 와인 정도를 절대적으로 어떤 것만 마신다는 건 허세이기 쉽고 '절대'를 남발하는 건 인생에 대해 뭘 잘 모르기 때문일 거다. 나름 거창한 원칙을 허접한 이유로 깨는 (나빠밸리가 멀기 때문에 켈리포니아 와인을 마신다는. 그럼 미국서는 프랑스가 멀기때문에 프랑스 와인만을 마셨다는 거네. 귀해서 귀하기 보다 먼 데서 와서 귀하다 생각하는 장인/폴. ㅋㅋㅋ) 거창함과 허접함의 콘트라스트가 ㅋㅋㅋ 웃게 한다. 눈 앞의 이익에(와인 마실 기회)에 자랑스레 밝혔던 원칙을 버리는 뻔히 속보이는 쫀쫀한 아전인수도 ㅋㅋㅋ 웃게 한다.
소설을 구상하며 파리를 즐기고 싶은 질은 약혼자, 부유한 장모와 골동 가구점에 들어간다. 질은 문학,예술이 만개했던 과거의 파리를 느끼는데, 장모는 골동품 의자가 싸다고 사라고 한다. 장모에게 골동품은 과거의 흔적이기보다 가격을 메기고 사고 팔 거리다. 살지 않았던 과거가 질에게는 낭만이고 꿈이다. 헐리우드에 각본을 써주며 돈 잘 벌지만 순수 소설가로 살고 싶고 영감을 찾아 파리 골목을 걷는 질을 장인은 뭔가 빠진 놈, 모자란 놈이라고 생각한다. 밤의 행방이 의심스러워 탐정을 붙인다. 탐정도 질 따라 과거로 쫓아 들어 왔다가 현실에서 실종된다. ㅋㅋㅋ
파티, 춤, 고급 식당을 즐기는 현실적인 이네스는 폴 커플과 어울리고 질은 피저랄드, 피카소, 헤밍웨이, 거투르드 스타인, 달리가 살던 시대를 들락거리게 된다. 동경하는 작가들과의 대화, 파티에서 만난 피카소의 여자 아드리아나에게 매혹된 질은 그 시대를 살고 싶어한다. 질은 그녀와 파리의 밤길을 산책하다 더 먼 과거 벨 에포크로 거슬러 갔다. 고갱, 마티스, 로트렉은 아드리아나의 매력에 빠져 작업을 걸고, 작업 들어온 걸 느낀 그녀는 늘 벨 에포크를 그렸었다며 그녀의 현실 1920년대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유혹과 사랑이 있다면 과거도 좋아라.
관객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는 층위 다양한 속물성과 시간에 대한 다른 선택, 그 이유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ㅋㅋㅋ. 우디 알렌의 상상력 돋는 작품이다. 그는 나이 먹지 않는 거 같다.
'즐거운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밤, 음악회 (0) | 2012.09.07 |
---|---|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0) | 2012.08.25 |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0) | 2012.08.14 |
여름 마당 (0) | 2012.08.10 |
조카 (0) | 2012.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