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 없습니다.>>
힘을 독식한 자가 진실을 틀어 쥐고 무고한 이를 핍박할 때 사람들은 이 말에서 분노깔린 위로를 찾는다.
사람들은 목마름과 분노의 감옥에 갇혀 늦게 오는 진실을 기다린다. 진실이 늦으면 늦을 수록 고통스럽다.
진실은 그것이 드러나야 할 때 드러나야 진실의 빛을 발한다. 더 늦게 오는 진실은 허무하다.
정연주 kbs 전사장이 대법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연주가 무죄인 줄 알고도 기소했을 검찰은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어 가둬놓고 4년이란 시간을 벌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게임의 룰을 바꾸는 시간이었고 자기네들 선수들과 심판으로 운동장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들이 하고자 하던 거 다 했다.
정봉주를 가두었다. 선수도 심판도 모두 그들의 하수인. 지들에게 대들고 약한 놈을 잡아 넣는다. 입 막는게 목적이니 왜 잡아넣냐 따져봐야 돌아오는 답 없다. 같은 말을 했어도 힘 센놈은 건드리지 못한다.
노회찬도 피선거권 박탈의 감옥에 갇혔다. 운동장에서 아무 때나 휘슬불고 레드카드 올리는이가 매수된 심판인지 아닌지 관객이 알아야 하는데, 보면 보이는데, 심판들은 삼성으로부터 떡 먹은 내 이름 알아도 올리지 마라. 내 이름 올리면 온동장서 못 뛴다, 자격정지!!!! 시킨다.
한명숙은 항소심서 무죄판결 받았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고, 그들의 하수인 검찰은 기소 꺼리 되건 말건 몇 년 곯리고 보자는 거다. 피디수첩도 마찮가지. 입을 막고 기를 죽였으니 그들은 목적을 득했다.
곽노현의 구속기소는 어처구니 없다. 돈이 목적이거나 무언가의 댓가라고 인식할 뿐인 그들의 수준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삶의 수단으로서의 돈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계에 처한 사람을 살리고 보자는 선의를 이해한다해도 그들의 하수인 검찰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검찰은 진실을 담당하지 않으니.
당사자는 곯고, 한가지 색 유니폼 선수들과 심판들이 운동장을 채우고 그들끼리의 저열한 게임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떠나고 소수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고, 신은 알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소심하게 위로한다. 선수들 씨 마르고 관객은 운동장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 달성. 아니, 그들에게 이런 정치전략적 목표가 있기나 했나? 관객의 표값 삥 뜯는 인마이포켓 목표만 있는 거 아닌가.
진실은 왜 늦게 드러나나.
이건 인디아나 존스의 보물처럼 지난한 길을 거쳐야 찾아지는 게 아니다. 이건 늘 우리들 속에 있다. 그러나 배경과 상황에 따라 우리들은 이것을 인식 밖으로 배제하거나 감추거나 모른 척한다. 진실이 가변적인 것이 아니라 인식과 해석과 평가가 가변적인 것이다. 권력의 지형과 風速에 따라 지성과 양심이 숨죽이는 사이 조작된 어떤 것이 '진실로 포장'되어 뿌려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권리가 나의 이익에 반할 때 사람들은 사실도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재개발과 세입자, 용산참사의 원인이고 화물차 기사들의 파업의 이유다. 종이신문과 테레비 모두 파업때문에 산업과 수출에 손실이 막대하다는 뉴스만 띄운다. 그들은 산업성장과 수출증가를 화물차 기사들의 생명과 권리보다 우선시 한다. 노동자들이 왜 목숨걸고 파업하는가를 비추지 않는다. 왜 젊은 노동자가 그 공장에서 계속 죽어나가는 가를 비추지 않는다. 네버 네버. 양심이 작동하지 않고 다자간의 권리 균형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만의 이익추구, 잘못된 선택, 늦은 인식이 진실을 지체했다. 우리들 사이의 관계와 비교와 역학과 비루함이 진실을 지체했다.
강자의 이익과 권리만 보호하는 구조속에 살고 있기에 우리들은 모두 강자가 되려한다. (자본, 정치)권력자의 인식과 이익에 따라 게임의 룰을 바꿔 강자의 이익과 권리를 강화하는 탓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등, 일류대, 스펙, 대기업 되려하고 권력을 주무르는 자리에 손을 뻣으려 한다. 무한경쟁, 신자유주의의 꼬리에라도 매달리려고 사는 꼴이다. 선택은 두가지. 피곤하거나 죽음이거나. 많이 쩔었고 많이 죽었다. 밀려 내려가던 우리들이 빼앗긴 권리를 인식했다. 권리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져야한다는 것도 인식했다. 인식의 자리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진실이 보이는 거다. 그런데 우리의 인식은 항시적인가? 나의 인식은 그들의 인식과 같다할 수 있는가? 그래서 아직도 보지 못하는 진실, 감춰진 진실...늦도록 안오는 진실도 있겠다. 별 셋에 빛나는 극강한 자의 황금 금고 속에 감춰진 진실같은 거 말이다.
힘을 독식한 자가 진실을 틀어 쥐고 무고한 이를 핍박할 때 사람들은 이 말에서 분노깔린 위로를 찾는다.
사람들은 목마름과 분노의 감옥에 갇혀 늦게 오는 진실을 기다린다. 진실이 늦으면 늦을 수록 고통스럽다.
진실은 그것이 드러나야 할 때 드러나야 진실의 빛을 발한다. 더 늦게 오는 진실은 허무하다.
정연주 kbs 전사장이 대법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연주가 무죄인 줄 알고도 기소했을 검찰은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어 가둬놓고 4년이란 시간을 벌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게임의 룰을 바꾸는 시간이었고 자기네들 선수들과 심판으로 운동장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들이 하고자 하던 거 다 했다.
정봉주를 가두었다. 선수도 심판도 모두 그들의 하수인. 지들에게 대들고 약한 놈을 잡아 넣는다. 입 막는게 목적이니 왜 잡아넣냐 따져봐야 돌아오는 답 없다. 같은 말을 했어도 힘 센놈은 건드리지 못한다.
노회찬도 피선거권 박탈의 감옥에 갇혔다. 운동장에서 아무 때나 휘슬불고 레드카드 올리는이가 매수된 심판인지 아닌지 관객이 알아야 하는데, 보면 보이는데, 심판들은 삼성으로부터 떡 먹은 내 이름 알아도 올리지 마라. 내 이름 올리면 온동장서 못 뛴다, 자격정지!!!! 시킨다.
한명숙은 항소심서 무죄판결 받았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고, 그들의 하수인 검찰은 기소 꺼리 되건 말건 몇 년 곯리고 보자는 거다. 피디수첩도 마찮가지. 입을 막고 기를 죽였으니 그들은 목적을 득했다.
곽노현의 구속기소는 어처구니 없다. 돈이 목적이거나 무언가의 댓가라고 인식할 뿐인 그들의 수준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삶의 수단으로서의 돈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계에 처한 사람을 살리고 보자는 선의를 이해한다해도 그들의 하수인 검찰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검찰은 진실을 담당하지 않으니.
당사자는 곯고, 한가지 색 유니폼 선수들과 심판들이 운동장을 채우고 그들끼리의 저열한 게임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떠나고 소수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고, 신은 알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소심하게 위로한다. 선수들 씨 마르고 관객은 운동장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 달성. 아니, 그들에게 이런 정치전략적 목표가 있기나 했나? 관객의 표값 삥 뜯는 인마이포켓 목표만 있는 거 아닌가.
진실은 왜 늦게 드러나나.
이건 인디아나 존스의 보물처럼 지난한 길을 거쳐야 찾아지는 게 아니다. 이건 늘 우리들 속에 있다. 그러나 배경과 상황에 따라 우리들은 이것을 인식 밖으로 배제하거나 감추거나 모른 척한다. 진실이 가변적인 것이 아니라 인식과 해석과 평가가 가변적인 것이다. 권력의 지형과 風速에 따라 지성과 양심이 숨죽이는 사이 조작된 어떤 것이 '진실로 포장'되어 뿌려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권리가 나의 이익에 반할 때 사람들은 사실도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재개발과 세입자, 용산참사의 원인이고 화물차 기사들의 파업의 이유다. 종이신문과 테레비 모두 파업때문에 산업과 수출에 손실이 막대하다는 뉴스만 띄운다. 그들은 산업성장과 수출증가를 화물차 기사들의 생명과 권리보다 우선시 한다. 노동자들이 왜 목숨걸고 파업하는가를 비추지 않는다. 왜 젊은 노동자가 그 공장에서 계속 죽어나가는 가를 비추지 않는다. 네버 네버. 양심이 작동하지 않고 다자간의 권리 균형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만의 이익추구, 잘못된 선택, 늦은 인식이 진실을 지체했다. 우리들 사이의 관계와 비교와 역학과 비루함이 진실을 지체했다.
강자의 이익과 권리만 보호하는 구조속에 살고 있기에 우리들은 모두 강자가 되려한다. (자본, 정치)권력자의 인식과 이익에 따라 게임의 룰을 바꿔 강자의 이익과 권리를 강화하는 탓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등, 일류대, 스펙, 대기업 되려하고 권력을 주무르는 자리에 손을 뻣으려 한다. 무한경쟁, 신자유주의의 꼬리에라도 매달리려고 사는 꼴이다. 선택은 두가지. 피곤하거나 죽음이거나. 많이 쩔었고 많이 죽었다. 밀려 내려가던 우리들이 빼앗긴 권리를 인식했다. 권리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져야한다는 것도 인식했다. 인식의 자리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진실이 보이는 거다. 그런데 우리의 인식은 항시적인가? 나의 인식은 그들의 인식과 같다할 수 있는가? 그래서 아직도 보지 못하는 진실, 감춰진 진실...늦도록 안오는 진실도 있겠다. 별 셋에 빛나는 극강한 자의 황금 금고 속에 감춰진 진실같은 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