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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합정동 블랙홀


허리가 아프다. 집 공사하는 동안 잡역부 자청하고 무거운 거 옮기다 무리했는가 보다. 간간이 아프다 말다해서 그려다 괜찮아지려니 하고 무시했는데, 이번에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니 안되겠다. 머리도 다듬을 겸 전에 살던 동네 미장원과 한의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허리 인대가 늘어났다고 2주일 동안 치료받고 그 동안 운동하지 말고 누워 지내야 한단다. 걷는 것도 안되요 물으니 근육 뭉친 건 2-3일 풀면 되는데 인대 늘어진 건 휴식으로 원상복구 시켜야 한다고, 천하의 박지성도 인대 늘어나면 벤취에서 쉽니다 한다.

침 맞고 뜸 뜨고 전기치료 받으니 허리가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좀 살아났다고 상수동에서 합정동 로타리 지나 망원시장으로 걸었다. 합정동 로타리에 마포엘지 자이던가 주상복합 단지가 거의 다 지어져 몇은 입주한 듯 보이고 맞은 편 망원동 주택들은 헐렸다. 헐린 터를 둘러친 담에 영업권 보장하라, 재벌만을 위한 건설을 반대한다....그런 프랭카드가 펄럭인다.

엘지자이 주상복합 단지는 지역 평균 높이보다 몇 배 높다. 건물 덩치와 높이가 위압적이다. 합정동은 70-80년대 지어진 주택이 많고 고층건물이 적어 하늘이 열린 느낌이었는데, 동네와 어울리잖는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시야를 가린다. 지나갈 때마다 땅 면적에 비해 건축 연면적이 넓다 싶고 건물 높이가 유달리 높아 용적률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된다. 재벌 건설회사와 한나라당 구청장. 그들의 내력으로 보아 타당한 의심이다.

망원시장 상인들 몇이 홈프러스 입점 결사반대라고 프린트 된 연두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뭐지? 싶어 시장 골목을 죽 걸어보니 홈프러스 입점 반대 조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밤 늦어 파장인데 어물전에 굴이 많이 남았다. 남은 굴을 다 떨이했다. 굴 담는 좌판 주인에게 어디에 홈프러스가 들어오나요? 물었다. 합정동 자이 건물 3개층에 홈프러스 들어와요. 헐........... 그럼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망원동과 합정동은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 망원시장은 깨끗하게 현대화 되었고 상인들 매너 좋고 물건 관리도 깨끗해서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보통사람들이 주거니 받거니 팔고 사며 생활하는 터전인데 대형마트가 들어선다니. 저 큰 건물에 3개층이라면 종합몰 수준일 터인데, 시장 주변으로 잇대어있는 조금조금한 상점들과 좌판, 값 헐찍한 영세 음식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최소 몇천명의 생계와 생활이 이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곳인데. 그 앞에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열리다니. 나도 모르게 그럼 여기 시장은 어떻게 하라고요 소리가 나왔다. 내 옆에서 낙지를 사가던 아주머니가 아니 왜 외국기업이 돈쓸어가게 냅둬! 한다. 낙지 파는 이는 이마트, 롯데도 다 마찮가지에요, 뒤에서 물로 좌판을 씻어내던 남자는 우리보고 다 죽으라는 소리죠 한다.   

시장 골목을 나와 큰 길 건널목에 서니 민주통합당 정청래 선거 사무실이라고 큰 간판이 보인다. 늦은 시간인데 젊은 보좌관? 운동원? 몇이 반긴다. 정청래 후보에게 홈프러스 입점한다는데, 이 동네 어쩌나요? 물었다. 한나라당이 ssm법 질질 끌었잖아요. 걔들 시간 벌어주고, 그 사이 ssm법 강화되기 전에 신청서를 냈어요. 거기서 1키로메타 떨어져...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니 법적으로는 참...말을 맺지 못한다. 어쨌든 그 앞에 살려달라 하고 누워버리는 수 밖에요...한다.

건물을 나와 건널목 맞은편을 보니 한나라당-새누리당 후보 사무실이다. 들어가 어떤 생각인지, 나중에 딴 짓 하더라도 표를 구해야하는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볼까 하다가 국민을 개털로 아는데, 지금 말로야 뭔 소리 못하겠나. 말 섞기도 싫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왔다.

미련하게 무거운 줄 알면서 굴과 과일 몇가지를 사서 을러멨다. 오는 길 내내 그곳 삶의 물기가 아무 안전판 없이 블랙홀로 빨려들어갈 생각을 하니 무거운 장보따리보다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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