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때 방학 한달을 내내 놀다가 뒤돌아 보고 나름 뜻깊은 일들은 일기장에 써야겠다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모르겠는 기분이다. 간만에 모니터를 마주하니 그렇다. 친구와 오래간만에 만나면 무슨 말로 시작하는게 좋을지 두서없고 요점없이 이야기가 엉키듯하는데, 뭐냐, 브로그와 사귀나.
박스에 있는거, 바닥에 놓인 거 다 자리 찾아주었고 뭐가 어디있는지 휘딱휘닥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사는 끝났다. 온 집안을 킁킁거리며 낮설고 불안해 하던 철수도 자기 집, 자기 밥그릇 자리와 용변 볼 곳을 익혔다. 목욕탕 타일바닥 찾아 응가하는 거 보면 신통방통하다. 어딘가 파묻혀 아직 나오지 않은 몇가지가 있는데 구두 한 짝씩 두어켤레, 에스프레소 내려먹는 간장종지만한 커피 용기, 대걸레 자루...신발이 어디 가고프면 짝을 이루어 갈 것이지. 회전 대걸레는 자주 쓰던 건데, 어디로 갔단 말이냐. 안나왔지만 모르고 있는 것도 많다. 그런 것들은 나와도 안나와도 그만인, 사고 쌓고 옮기고 지니느라 힘만 빼게 했을 그런 것들일 거다.
미쳤지 내가 저걸 왜 샀나하며 째려보던 중국의자 두개는 이웃 나라에서 온 장과 복도 끝에서 아시아분위기를 내고 있다. 여행그림 두개를 마주 보게 했다. 벽과 그림의 색이 잘 어울린다.
오기 전에 책을 꽤 버렸는데, 책꽂이가 좁다. 읽은 소설은 남 주고 폰트 작은 세로읽기 책들은 버려야 할까 책장을 늘려야 할까 생각하며 가구점 몇군데를 돌았으나 자연스러운 게 없다. 드라마 속 회장님 서재에 나올 책장은 잘 생겼지만 금박 전집이나 "보호"하겠고 선반형 책장은 대개 합성목이다. 그래서 본연의 의무에 충실한 시장골목 간이 가구점 출신의 나무책꽂이는 수명이 연장 되었다. 책에는 시간과 미련이 담겨 아이들도 자기 책은 버리지 못하게 한다. 나는 허영까지 담기에 버리기 참 어렵다. 친구가 놀러와 앉았고 나는 책을 정리하는데 그 친구가 젊을 때 여행하며 내게 보낸 엽서 몇 장이 나왔다. 엽서를 반기며 친구는 그 여행지에서 보고 놀았던 거를 기억한다. 컴터와 아이폰에 밀려 먼지 뒤집에 쓰고 있던 구형 cdp를 책사이에 넣고 스피커는 책장 꼭대기에 올리고 라디오를 켜니 소리가 그럴사하다.
큰 애가 전기 스위치, 전등을 손보았다. 전구 나간 것, 껌뻑이던 것, 갓 없이 백열등 알몸이 눈부시던 것 모두 바꾸고 직부등 몇 개를 센서등으로 바꾸고 욕실등을 바꾸었다. 형광등 하나 가는 것도 어설펐던 솜씨라 처음에 안정기 하나 가는 걸 큰 공사하듯 아 ciba, 아 증말 소리 해가며 쩔쩔매더니 등 몇개 교체해나가면서 요령도 생기고 피복 벗기는 솜씨도 늘어 전기 더 손 볼 데 없냐고 찾아다닌다. 사이사이 뉘집아들인지 참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오리지날 달려있던 수도꼭지가 헐었다. 나는 고쳐쓰고 싶은데 작은 애는 화장실을 전부 리모델링하자 하고 큰 애는 부분교체하자고 한다. 젊을 수록 다 털어내고 버리고 새것을 들이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건가. 큰 애가 수도 꼭지와 U trap을 고치겠다고 뜯었다. 사모님, 뭐 음료수 좀 없어요? 의기양양하게 농담해가며 수전, 배관들을 풀고 재조립을 했는데, 오래 된 것이라 손대기 전만 못하다. 결국 큰 애는 화장실 바닥에 세면기, 수도꼭지와 파이프들을 널부러뜨리고 만세불렀다. 일에 달려들은 것이 신통해서 큰 애를 동생 앞에서 대놓고 칭찬해 주었다. 결국 화장실은 전부 바꾸기로 했다.
오래 된 주택이라 이사를 마친 게 일의 끝이 아니라 일의 시작인 듯하다. 빈티지가 원래 그런 거다. 그냥 보면 멀쩡한데 꼼꼼이 들여다 보고 사용해 보면 시간과 사람에 살이 닳아 헐거워 지고 녹아나간 자리가 드러난다. 사람 손으로 메꾸고 다듬고 덮어주어야 한다. 지난 추위에 가스비를 걱정하다가 단열 궁리했고 이제는 커튼과 창호를 궁리한다. 아는 거 없으니 배워가며 손 쓸 거 태산. 추위는 누구러졌으니 급한 것부터 차근차근 한가지씩 하자. 그래야 브로그도 하고, 자주 봐야 대화를 이어가지. 역시 오랜 만에 말 트니까 이 소리 저 소리 왔다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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