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국서 사는 아들 며느리 손녀가 왔다고 자랑겸 인사겸 해서 밥이나 먹자고 친구가 저녁 초대를 했다. 친구 아들은 우리 집 큰애와 같은 또래여서 어릴 때 어울려 놀았는데 소년기 이후에는 보지 못하였다. 엄마와 헤어진 아버지따라 미국서 살다가 독립하였기 때문이다. 찬구는 다행이 미국 출장이 잦고 여행도 자유로워 아들의 생활과 독립을 도와줄 수 있었다.
몇 해전, 친구와 만나기로 대충 약속한 후, 날짜와 시간을 정하려고 전화했더니, 친구가 "나, 며칠 후면 할머니 될 거 같아. 지금 미국 가려고, 공항가는 길이야" 라고 하였다. 친구 아들의 결혼 소식을 들은 바 없는데 아기 이야기부터 들은 것이었다. 친구는 여러 마디 하지 않았다. 친구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었으나 여러 마디 하지 않았어도 여러 가지 마음이리라 짐작했다. 나는 친구 아들아이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라기 보다 제 엄마를 씁쓸하고 황망한 느낌을 갖게 하였던 점이 기껍지 않았다. 이런 마음은 한국서 자식 키우고 결혼시키는 보통 엄마의 기대와 순서가 바뀐 삶에 대한 수용성이 없기 때문인가 싶다. 손녀 출산을 보고 친구는 돌아왔다. 아들, 며느리에 대한 친구의 토막이야기에서는 쓴맛이 났다. 해가 지나고 손녀는 무럭무럭 자라 할머니 마음을 빼앗은 듯 했다. 친구는 손녀 사진도 보여주고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자랑이 늘어졌다. 사진 속의 아기는 사랑스러웠다. 여러 말 하고 싶지 않았던 할머니 마음을 손녀가 다 풀어준 모양이었다.
저녁 초대에 누가 함께 자리하는지 형식이 어떤 건지 몰라 뭐 필요한 거 없니? 하고 물었더니 아, 그냥 밥이나 먹자고, 신경쓰지마, 친구들 몇만 불렀어. 결혼식도 인사도 안했으니 어쩌면 사촌이나 이모가 오실 수도 있어... 했다. 결혼식을 내 맘대로 정의하면 친지들 앞에서 우리는 가족입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이고 친지들은 잘 살아라 하고 축하해 주는 자리이다. 나는 결혼식이라고 생각하고 진지한 시간이라는 의미로 옷도 고르고 젊잖은 장식도 챙겼다. 그런데, 부조금 봉투에 축 결혼이라고 쓰니 내 마음을 다 담은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뭐지? 생각을 골라보니 혼자서 30년을 당당하게 살고 가족들을 거두고 직업적으로 많은 사람의 모범이 되는 자리를 쌓아 올린 친구를 응원하고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언제나 당당하고 멋진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썼다.
친구의 고등학교 동기 두엇과 대학 동기 둘이 이쪽 자리에 앉고 디귿자로 돌아가며 저쪽 테이블에 가족들이 앉았다. 새 식구를 반기는 웃음이 들렸다. 식사가 끝날 무렵 친구가 아들, 며느리, 손녀를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켰다. 세식구 모두 행복한 웃음 가득했고 테이블에 앉은 우리에게도 웃음이 번졌다. 대학때 보고 처음 본 친구의 오빠가 우리 자리로 와 집안의 어른으로 인사를 청했다. 나는 이렇게 얼굴 보고 함께 밥 먹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도 이렇게 함께 모이니 뿌듯하고 보기 좋고 동생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다음날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녀는 와 주어서 고맙다며 함께 밥 먹는다는 것이 평범한 그러나 중요한 복이네 라고 했다. 그렇고 말고. 애들 마주앉아 함께 밥 먹으며 웃으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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