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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아시아 리얼리즘 Realism in Asian Art

2010/08/25 01:33

덕수궁 미술관에서 Realism in Asia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있다. 더위에 나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함께 보자고 몇이 모이게 되어 일요일 아침에  나섰다. 매표소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는데....오전부터 볓이 뜨겁다. 11시에 대한문 앞에서 수문장 교대 행사를 하는구나....  어린이 동반 가족, 외국인등 많은 사람들이 땡볓을 마다않고 교대 의식을 사진기에 담는다.  

경복궁과 덕수궁에 각각 수문장 교대식이 주  6일 연출되는데, 관람객을 꽤 모은다 한다. 경복궁 수문장은 조선 초기의 모습이고 덕수궁은 영정조 때의 복식과 행사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 사진을 찾아보니 경복궁 수문장의 복장은 중국, 고려의 복식과 닮아있고 그에 비해 덕수궁 수문장의 복식은 근대(?)적으로 보인다.  

50-60명은 될 수문대원들이 땡볓에 복장을 껴입고 대한문 앞 공간에 열지어 있다. 개인 복장 위에 군인복장을 덧입고 허리를 묶고 긴 장화를 신었다.  알록달록 화려한 복장의 대열을 자세히 보니 키도, 표정도,  나이도 각각이다. 어린 20대부터 한 40대까지 보인다. 얼굴마다 땀이 줄줄 흐른다. 피곤하고 뜨겁고 땀이 흘러 몇몇은 눈을 찡그리고 섰다. 덕수궁 수문장들은 전체가 60-70명으로 서울시가 행사를 맏긴 외주 기획사 소속이고 경복궁 수문장들은 문화재청 관할이라고 한다. 문화재청의 외주 거래처 소속이라는 말이겠다. 기사에 나온 급여를 보니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들에게 씻을 수 있는 공간과 설비가 제공되는지 궁금해졌다.  오늘 같은 날 땡볓과 소금에 절은채 땀냄새 풍기며 집으로 돌아가야한다면, 그건 서글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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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러나라는 서양과 접하면서 회화에 서양 미술의 시선과 기법을 도입하게 된다.

대개의 동양화가 작가의 시선과 판단에 의하여 대상물이 생략, 강조, 압축되었는데 비해 김홍도(1745-?), 신윤복(1758-?)의 풍속화는 대상자체의 디테일에 충실하다. 회화의 대상이 전통적인 꽃, 나무, 새, 산수에서 보통사람들의 삶, 풍속, 감정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로 산수화 속 배치꺼리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전면에 서게 된 것이었다. 대개의 동양화가 여백 뿐  배경 구조가 없는 데 비해 신윤복의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가옥, 골목 등 구조물 속에 존재한다. 횡종으로 구도를 잡은 처마, 마루, 기둥들은 균형이 안정되고 아름다워 몽드리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색이 다양하고 화려하게 쓰이고 濃淡으로 거리가  드러나기도 한다. 골목의 斜線, 인물 배치의 앞뒤 등으로 원근이 드러난다. 이런 그림들은 전통적인 기예의 玩賞거리에서 당시의 가옥, 감정, 복색등 일상적 삶의 구성요소등을 보여주는 기록의 가치를 추가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청의 실사구시, 조선의 실학파 부상 등에서 드러나는 서양 과학과 신철학(?)의 도입, 열하일기와 같은 여행기 등장, 천주교 도입, 확산이 큰 덩어리에서 함께한다. 백성이 대상에서 주인공으로 (다소나마) 부상하는 배경에 서양회화 기법이 더해진 결과가 신윤복, 김홍도의 풍속화가 아닐까한다. 

우리나라는 1900년대 초 일본으로 간 유학생들을 통하여 서양 회화가 도입되었다. 요즘말로 직수입이 아니라 경유수입이다. 당연히 일본의 유행 서양화풍의 영향을 받았다.  

 서세동점의 정도에 따라 아시아 지역마다 서양 회화의 유입 정도, 토착미술과의 접합양태는 다르다. 이미 1800년대 후반에 서양 낭만주의 화풍을 깊이있게 담고 있기도 하고 지역 전통 기법에 서양회화 방식을 접합시키기도 하고  동양화적 배경에 리얼리즘적 인물을 넣는 등 다양하다. 아시아인의 풍습, 신체 비율과 동떨어진 채 서양 낭만주의 화풍과 모델을 흉내내기도 하고 서양 귀족 가족 초상화 구도에 아시아인의 얼굴을 올린 그림도 있다.  

일본. 다카하시 유이치 1872년. 시선의 냉정함과 표현의 정밀함이 뛰어난 그림이다. 모델이 서열 높은 일본 기생이다. 과거의 초상화는 귀족등 높은 신분을 그려왔던 것에 비해  대상이 기생으로 (귀족아닌) 바뀌었다는는 점이 근대 그림의 한 특징이 아닌가 한다.

 일본. 아카마츠 린사쿠 1901년.

위의 그림이 작가의 냉정한 시선을 드러낸다면 아래 그림은 보통사람들의 삶의 한가운데에서 그들과 호흡을 함께 하고 있는 듯한 작가의 품는 시선이 느껴진다. 옷을 껴입고 담요를 두르는 계절에 간신이 짚신바닥만을 맨발이 시리게 느껴진다. 보통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순간을 관찰하고 묘사해 낸 점이 리얼리즘의 본질을 잘 담고있다.

 이 그림은 도미에의 (Honore Daumier 1808-1879)의 삼등열차(1863-1866)를 연상시킨다. 군중, 고단한 삶, 열차라는 이동 공간의  유사점 외에 희망, 기대, 피곤, 상념에 젖은 군중 속 무명의 사람들의 개별적 표정을 담았다는 점이 공통이다.




인도네시아. 라덴 살레 Raden Saleh 1874년작.

이 그림을 보고 인도네시아 畵力(?)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본 그림들. 갤러리를 찾기도 만만찮았다. 열대의 영향으로 강렬하나  섬세한 감성을 담을 수 없는 색감, 표현의 미숙, 거칠음, 바틱을 연상시키는 단조로움등으로  판단을 마감했는데, 130년 전에 그려진 이 그림으로 전의 판단은 접어야겠다. 이 그림은 아름답고 놀랍다.

구도는 서양 거장 화가들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나 사실적이고 치밀한 묘사, 숲의 깊이, 습기까지 담아 생명을 불어넣은 솜씨는 그것들과 수준을 함께하는 듯하다. 정글 위의 빛은 숲에 신비로운 기운을 드리운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없으면 이런 그림을 그리지 못할 듯하다.

  한국. 배운성 1930-1935년 사이. 자신이 집사로 일하던 갑부의 아들 유학길에 동행, 일본, 독일서 그림을 공부하였고 파리에서 화가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기억과 상상의 조합으로 그린 듯하다. 댓돌아래이니 마당에 가족들이 서있는 건데,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마당이 대리석일리도 없고 나무짝으로 마감했을 리도 없는데, 독일, 벨기에등에서 본 서양화의 차용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창에 원근 소실점이 있으나 가족들 배치, 비율은 원근감보다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아이들의 자세나 위치, 개의 등장은 부자연스럽다. 개의 등장도 개나 고양이를 그려넣는 서양가족 그림에서 차용한 듯 싶다. 왼편에 서있는 남자가 작가라고 한다.

어린 아이, 아래 세대에게는 밝은 색의 옷을 입힌데 비해 어른들은 모두 흰 옷을 입고있다. 마루색과 뒷창을 통한 풍경이 사실적인 것으로 보아 옷 색깔도 사실일 듯한데, 재미있는 색의 차이이다.

 필리핀. 페르난도 아모르솔로 1924년.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생각하며 보는데, 몇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것때문에 이 그림은 사실적이라기 보다 작가의 "개념"을 화판에 옮긴게 아닌가 싶었다.

스페인 통치하의 필리핀 농부는 매우 고단한 삶을 살고있었다. 뜨거운 태양아래 농사는 힘들다.  그러나 노동의 복장과 자세는 우아하고 반 쯤 노는 분위기다. 논의 한가운데 양산쓰고 기타치는 사람이 있다. 왼 쪽의 여자는 관능적으로 어깨를 드러내고 날씬한 허리를 뽑내고 있다. 그리스 대리석 조각처럼 8등신의 아름다운 신체균형이다. 현실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다. 작가는 농사현장을 모르거나, 노동은 이렇면 좋겠다고 꿈꾸는 거든가, 농사는 이런거야 라고 농사 밖의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그려주는 거거나....그렇고 보니 한가운데 푸른 언덕위에 잘 지은 하얀 교회가 있다. 농가 하나 없이 밭이 저 멀리 펼쳐져 있는데, 생뚱맞게 나홀로 하얀 교회라니. 교회가 實在이던 작가의 상상으로 그려넣은 것이던 농부의 삶과 유리된  교회이거나 자연, 신, 인간, 노동의 작가 상상 속의 조화를 그린 듯 싶다.

 그에 비하여, 같은 필리핀. 비센테 마난살라 1949년. 

2차 대전이 끝난 싯점. 파괴와 복구의 고통속에 있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특징인 노동자, 농민의 고단한 삶이 큰 테마로 등장한다. 개인을 드러내는 얼굴은 없다. 긴장된 근육으로 노동만 보인다. 근육, 체형은 그리스 조각의 프로포션을 느끼게 한다. 주제는 러시아의 일리아 레핀 그림을 연상시킨다.

 일리야 레핀 IIya Repin (1844-1930)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사람들.  

 베트남 응루엔기어찌 Nguyen Gia Tri  Landscape of Vietnam 1940년

멀리 있는 산과 중앙 아래의 지붕, 가까이 있는 식물들을 세련되게 배치하였다. 대상의 생략과 세밀한 확대가 자유롭다. 베트남 전통 매체인 옻칠로 색을 넣고 마감하였다.


 말레이지아. 라이퐁 모이 1967년작.

전면에 배치한 굵은 매듭, 거친 손, 소박하다못해 아슬아슬한 신발. 긴 노동의 시간을 보냈을 늙은 얼굴은 단단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눈빛이 살아있다. 옆 바구니 속의 물병과 들통을 보니 그들도 우리처럼 새참을 먹는지.

 중국. 우원화. 1971년작. 구리광산의 첨병.

1966년 시작된 프로레타리아 문화혁명시기. 그림은 노동자의 국가 사업에 목숨을 바치며 한계와 투쟁하는 삶을 영웅화 시키는 매체로 사용된다. 중국 여성 노동자가 폭우속에 전봇대에 매달려 전기 작업을 하며 웃는 그림이 있는데 옮겨 올 수가 없다. 폭우 속 전기 작업...위험, 목숨, 그러나 헌신하라!! 영웅화 작업. 예술의 역할이 극장의 간판과 그닥 다르지 않다.

 필리핀 레나토 아블란 1982년. 세가지 테마를 한 화폭에 병치하였다. 독재자 마르코스의에 의하여 내몰리는 민중의의  죽음과 고난을 고발하며, 민중의 행동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종구 1984년. 체제가 조성하는 허위와 그림자를 비판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이 그림은 쌀자루 종이 위에 유화. 광주 비엔날레에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1970년대 정부의 계몽의 대상으로 살았던 농부의 피곤한 얼굴, 깊은 주름, 고단한 농사일 끝에 굵은 핏줄로 남은 회의...농부의 가슴에 붙인 편지...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전시회는 그림을 보는 즐거움과 그림의 외부와의 접촉과 영향에 따른 변화, 각 지역, 국가(?)별로 자생적 스타일을 형성하는 흐름을 읽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동시에, 각각 다른 운명을 타고 흘러간 듯한 아시아 각국이 그러나 큰 흐름에 있어 본질적으로 닮은 궤적을 밟았고 공통된 각성에 다다르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물론 각성의 人的총량과 각성이후의 움직임이 회화의 예술적 깊이, 독자성, 사회에서의 가치를 결정할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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